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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근대 망령으로부터의 탈주, 동아시아의 멋진 반란을 위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헤이그에서 분신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이준 열사가 한때 친일 행각을 한 적이 있다면? 강한 애국심을 바탕으로 신라의 통일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화랑들에게서 동성애적인 성적 취향이 보인다면?
   역사 교과서의 내용만 충실히 학습해왔다면 생전 처음 듣는, 어찌보면 발칙하달 수도 있는 물음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인 박노자 교수의 설명을 따라가다보면 그와 같은 주장이 충분히 근거있는 것이며 다만 우리가 몰랐던, 내지는 알려고 하지 않았던 역사의 다른 반쪽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의 여러 면모를 들추어보고 있는 책이다. 유교적 좌파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사상가 황종희와 그의 공(公) 사상을 통해서는 기존 우파들의 담론인 아시아적 가치를 부인하고 참된 유교적 가치를 재설정하고 있으며 이미 근세에 ‘열린 개인주의’를 추구했던 이지선생에게서는 개인주의가 결코 서구만의 가치가 아님을 보이고 있다. 또한 ‘국적’이라는 개념은 극히 최근에 형성된 것으로 특히 유신정권의 군사주의적 분위기에서 강화되었다는 점을 직시하고 스포츠가 애국주의, 군사주의, 적자생존 등으로 왜곡됨에 따라 발생하는 화려함 이면의 어두운 그늘을 환기시킴으로써 가볍게 지나치기 쉬운 일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저자가 찾고자 한 것은 기존의 권력, 가치에 대한 반란과 동아시아가 연대할 수 있는 국제주의의 싹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와 같은 가치는 동아시아란 지역적 커뮤니티를 묶는 하나의 코드일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주체적 인간으로서 새롭게 지향해야 할 ‘반란자적 모습’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다.

   총 5개의 장과 장마다 10여개씩의 소주제가 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주제가 다양한만큼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할 필요성이 있다.
   첫째로 계급과 성(Gender)이 뒤섞여있는 경우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균형잡힌 관점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4부에서는 화랑들의 동성애, 여성에게까지 내면화된 남성적 욕구에 따른 미의 기준, 국제결혼을 바라보는 고정관념의 시선, 20세기 초 신여성들의 여성해방 노력 등을 다루며 남성 우월주의, 가부장적 독재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문제는 어떤 역사적 사실에 있어 계급과 성의 관점에서 각각 달리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 경우 어느 한쪽을 소홀히 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4부 아홉 번째 주제인 -여걸들의 자유분방도 기억하라-를 보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역사 서술에서 여성은 거의 배제되어 왔다는 점, 여성을 주체적 개인보다는 단순한 희생자 내지 피동자로 보는 해석이 주를 이뤘다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유관순에 대한 예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면이 있다.
   유관순의 고향 친구들에게는 골목대장으로 기억에 남아있지만 역사에는 일인에게 고통받고 장렬하게 죽은 민족 수난의 상징으로만 남았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 가운데 어린시절의 모습까지 알고 있는 경우는 몇이나 될까? 이를테면 동시대에 살았던 안중근, 윤봉길 의사와 같은 인물의 어린시절은 알려져 있는가? 다른 많은 항일투쟁가들과 마찬가지로 유관순은 매우 짧고 극적인 삶을 살았다. 3.1운동시 앞장서 일제에 저항하고 고문에 굴하지 않고 감옥에서 사망한 것은 가벼운 표현이 될지 모르나 말하자면 그의 삶의 하이라이트같은 것이였다. 그것은 비단 유관순이 여성이여서가 아니라 그가 우리 기억에 남게 된 결정적 이유가 3.1운동과 순국이였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또한 유관순의 이미지가 고통받고 장렬히 죽은 것이라고 하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여자임에도’ 꿋꿋이 고문에 항거하다가 죽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가녀린 여성의 이미지가 아니라 씩식한 여장부의 이미지라는 뜻이다.
   여성의 활동을 규제하는 악법을 다 지키기만한 것이 아니라는 서술도 같은 맥락에서 백성들의 일상 생활을 규제하는 기타의 법들은 철저히 지켜졌는가란 반문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사찰 왕래를 금하는 법이 여자들에 의해 지켜지지 않는 측면도 있겠지만 국가의 통제가 미치기 어려운 부분에 놓여있어서일 수도 있고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성이 상대적으로 차별과 배제를 당해왔기에 앞으로의 역사 이해에 있어 성의 측면에서의 접근이 좀더 활발해져야 할거라고 생각하지만 여타의 것들과의 균형을 잡는 문제가 중요할 거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국가, 민족과 계급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는 곧 국가라는 단위의 필요성, 의의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느냐란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하는데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동아시아에서 국경을 비롯한 온갖 경계선을 극복하고자 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3장의 네 번째 주제인 -애국 계몽 운동은 애국이었나-를 읽어보면 교과서에서 민족의 항일 운동의 일환으로 배워온 애국 계몽 운동의 다른 면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인적 구성에 있어 애국 계몽 운동의 지도자 대다수는 통감부 권력층과 일정 부분 타협을 했던 부르주아, 지주, 관료층이였다. 그들은 국권이 일제에 넘어가는 현실에 분개했다는 점에서 애국자였다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교육과 식산흥업 등 실력양성에 힘쓰고 그런 연후에 독립을 모색하자는 일제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였는데 이것은 신흥 지배계급으로써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맞아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미국과의 FTA 비준을 둘러싼 논란에서도 드러났듯 한 국가, 민족 안에서도 사회적 지위 등에 따른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고 이는 자본이 세계화됨에 따라 점점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3장의 다섯 번째 주제에서는 1930년대 공산주의 사상가 김명식을 언급하고 있다. 피지배자의 이해관계에 대한 관심없이 자본가 위주의 민족의 미래를 말함은 극히 폭력적인 방식이라는 그의 논리는 이같은 계급, 민족 간 갈등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국가와 계급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어느 한쪽을 위해선 다른 한쪽이 희생되어야만 하는가? 여기에 답하기 쉽지 않은 것이 대다수 피지배자의 이해관계를 간과할 수 없는 것만큼 더 나은 이익을 추구한다는 자본의 속성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부 다섯 번째 주제인 -민족자본이라는 말이 우습다-에서 저자 또한 인정하고 있듯이 ‘이윤 추구 과정에서 국가나 민족의 경계선을 쉽게 넘나드는 것’은 자본의 본질로써 인위적으로 어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의 선에서 조화와 타협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국가라는 단위가 없는 완전한 연대가 불가능하다면 노동자 또는 피지배자의 이해관계를 보호해줄 단위는 국가가 되야 하지 않을까? 국가를 넘어선 차원에서 NGO 등을 통한 연대, 감시 등 다른 방안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좀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문제임이 분명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실과 이상 내지는 목적과 결과가 다를 때 가치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1장 아홉 번째 -유교적 휴머니즘의 마지막 불꽃-에서 다루고 있는 강유위의 경우를 보자. 강유위는 현실 정치에서 ‘유산계급의 계량주의’ 노선을 대표했을 뿐 아니라 차차 보수화해 군벌과 관계를 맺는 등 급진파 및 온건파에 의해서 ‘완고당’ 으로 배척받았다. 그럼에도 저자는 강유위의 태생적 한계와 별도로 현실과 이상을 철저히 구분하고 이상적 차원에서 폭력이 없는 대동의 시대를 지향했던 점을 높이 평가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유교적 휴머니즘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사상을 통해 동아시아적 사회주의의 싹이 트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이다.
   물론 현실과 이상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며 오히려 그런 경우가 더 일반적일 수 있다. 대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현실에서의 행동이 이상과 어긋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고 자신을 억제하고 기다려야 하는 때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는 강유위의 행적은 그가 진정으로 대동사회를 희구했는지를 의심케 하는 것이다. 개혁이 좌절된 후 혁명가들과 갈등을 빚는 등 보수적인 행태는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세력을 갖고서 뜻하는 바를 시도할 수 있었을 무술년의 변법 또한 민중적 성격은 결여됐다. 그의 이상이 폭력없는 대동사회에 있었다면 전 생애를 통틀어 조금이라도 이상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하지 않을까?
   실현 불가능하더라도 진정 옳다고 생각하는 이상을 지니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며 그것 자체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로 사람, 사안에 따라 주관적으로 흐르기가 쉽다. 이 책의 저자만 하더라도 3장의 이준 열사를 다루고 있는 주제에서 민영환의 친미 노선에 대해 의도는 좋지만 필연적으로 실패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지만 강유위에 대해 그의 이상이 그것마저 없는 오늘의 보수주의자들 기준에서 보면 충분히 가치있는 것이라며 높이 평가를 할 수 있다면 민영환에 대해서도 실패 여부를 떠나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나름의 길을 모색했던 의도 자체에 더 중점을 두어 평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문제를 간과할 수 없는 것은 현실과 이상, 목적과 결과가 어떤 행위, 사상에 있어서 변명을 제공하는 쪽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한국 사회의 화두인 성장과 분배 논란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거니와 양쪽을 고르게 비중을 두어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또한 추구해야 할 관점일 것이다.

   저자의 다른 글이 그러하듯 이 책에서 또한 미쳐 알지 못했던, 생각해보지 못했던 주제들을 접하게 된다. 기존에 안다고 생각했던 것의 이면을 본다는 것은 다소 불편할 수도 있고 자칫 거부감마저 들 수도 있는 것이지만 새로운 지식을, 관점을 알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값진 일이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던 것을 언급하자면 동아시아란 지역 설정의 당위성이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지역 문명이 역사적으로 많은 경우에 차별과 배제의 방편으로 이용됐기 때문에 그것을 언급하기 두렵다고 했다. 그럼에도 동아시아를 언급하는 것은 기존 문명, 문화에 대한 의문제기와 비판, 반성을 통해 새롭게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동질성, 가치를 발견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책 전체를 통하여 저자가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권력에 대한 도전, 기존 가치에 대한 반란’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가치의 발견을 통해 또한 동아시아인 전체의 유대와 연대를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해방, 민중의 진실한 평화를 바라고 있는 것인데 이와 같은 것이 굳이 동아시아라는 틀로써 추구되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와의 접점을 탐구했던 일본의 진보적인 승려들을 ‘너무도 동아시아적인’ 종교인들이라 했지만 동아시아적이라는 말은 매우 추상적인 단어일 뿐이다. 지역의 특수한 문화를 찾기보다는 오히려 피지배층의 연대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라면 동아시아에 국한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이 책에서 설명되고 있는 내용들의 거의 대부분이 한중일 삼국에 한정된 것이기 때문에 동아시아가 삼국뿐이냐는 지적을 제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단지 편의에 의한 지역 설정 수준을 넘어서 어떤 당위를 갖고 있는지 설득력이 부족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의 반란자적 정체성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그것을 통해 궁극적으로 주체적인 개인으로서의 자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일독을 할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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