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 -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관점을 배우다
강은주 지음 / 이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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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수많은 학생들에게 인생강의로 꼽힌 인기 교양수업인 <여성과 예술>을 정리한 책으로, 미술사와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습니다. 책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미술사 속 페미니즘을 바라봅니다. 첫 번째는 미술사 속 여성 예술가의 위치입니다. 미술가였던 여성의 존재, 그들의 기여도 그리고 주류 미술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이유를 파헤쳐봅니다. 두 번째는 미술에서 재현된 여성의 이미지입니다. 작품 속 성별에 따른 역할 배분과 지배-피지배 관계 설정, 시선의 문제 등을 논의합니다.

 

먼저 그림자에 가려졌던 여성 미술가를 살펴보겠습니다. 틴토레토의 딸 마리에타 로부스티는 뛰어난 화가였으나 그녀의 작품은 오랜 시간 동안 그녀가 아닌 아버지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졌습니다. 그 이유는 황당하게도, 그림이 훌륭한 수작이었기 때문. 여성은 그런 그림을 그리지 못했을 거라 판단한 겁니다. 또한 많은 예술가들은 마리에타를 독립적인 화가로 보지 않고, 그저 아버지 틴토레토의 예술적 뮤즈로 묘사했다고 합니다.

 

젠더 이데올로기는 작가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작품 속에 그려지는 남성은 주로 그림의 중앙에 늠름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데 반해 여성은 그림의 끄트머리에 존재감 없게 표현됩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여성의 몸을 소재로 한 누드화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 또한 남녀 사이의 지배 관계를 적나라하게 나타냅니다. 남성 관람자에 의해 상품화된 누드화는 남성의 시각을 대변함으로써 여성을 인격을 지닌 개인이 아닌 그저 욕망의 대상이자 보여지는 도구로 간주합니다.

 

미술 작품 속 여성의 이미지에는 그 시대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여성은 순종적인 아내, 가정적인 어머니 등 수동적인 여성상으로 묘사되다가 파괴적인 이미지를 지닌 관능적인 팜므파탈이 되기도 합니다. 또 악의 근원(이브)이었다가 한없이 거룩하고 성스럽게(성모 마리아) 그려지기도 하지요. 이쯤 되면, 젠더이데올로기 강화에 이바지하지 않는 작품을 찾는 게 쉬울 정도입니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미술사적으로 중요하게 평가받는 작품 중에서도 페미니즘 관점에서 재해석할 여지가 있는 그림이 많으니까요.

 

챕터의 끝에는 본문에 작게 수록되었던 작품들이 다시 크게 프린트되어 있는데, 찬찬히 그리고 디테일하게 뜯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독자를 배려하는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미술사 속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신선한 접근이라 유익하면서도 흥미진진했고요. 1권에서는 19세기까지를 다뤘고, 이어지는 2권은 20세기부터 현대미술을 조명한다고 합니다. 예술을 사랑하신다면, 강력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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