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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노동 - 가정, 병원, 시설, 임종의 침상 곁에서, 돌봄과 관계와 몸의 이야기
매들린 번팅 지음, 김승진 옮김 / 반비 / 2022년 10월
평점 :
사랑의 노동. 사랑이 필요한 노동이란 무엇일까? 세상에 이 노동과 무관한 사람은 없으며,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온 생애에 걸쳐 제공하거나 받게 되는 것, 바로 ‘돌봄’이다. 돌봄은 필수불가결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너무나 당연시되고 평가절하되어왔다. 또한 돌봄노동자로 규정되는 건 보통 여성이라는 점에서 페미니즘과도 연관이 있다. 이처럼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돌봄노동의 가치와 중요성을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저자인 영국의 저술가 매들린 번팅은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 5년 간의 취재를 거쳐 이 책을 집필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동안 수면 아래 있었던 돌봄노동 문제는 팬데믹으로 인해 관심이 급증하며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이번 팬데믹은 우리가 다른 이들의 돌봄에 얼마나 의존하는지, 돌봄노동이 얼마나 귀한지 몸소 깨닫게 해주었다. 또한 팬데믹 동안 돌봄노동과 ‘필수적인’이라는 단어가 같이 사용되는 빈도를 보면 돌봄을 받을 수 없는 환경에 처한다는 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돌봄노동이 왜 그동안 저평가되었을까? 먼저, 그저 ‘간병인’으로 치부하며 돌봄노동 종사자를 하찮게 여기는 사회적 시선에 문제가 있다. 돌봄노동은 사명감이 없으면 하기 힘든 숭고한 일이고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지만, 그저 육체노동으로 취급받아왔다. 또한 일상적이고 주로 가정 내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가시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돌봄노동은 더 이상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점점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의 지속적인 돌봄 구조를 구축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저출생, 독거노인 등 다양한 사회 문제가 돌봄노동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돌봄노동의 위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과잉노동, 낮은 보수, 인력 부족, 열악한 노동 조건, 사회적 무관심 등 바로잡아야 할 것이 많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상업적 개념으로 바라보는 태도도 지양해야 한다. 신뢰와 헌신을 바탕으로 하는 돌봄은 단순노동이 아닌 감정의 교감으로,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다. 진심과 인간애가 결핍된 지나친 상업화는 돌봄의 질을 훼손하며 학대로 변질될 수 있으므로, 돌봄노동의 상품화는 인력난에 대한 해결방안이 아니다. 이는 윤리와 연대를 통해 조명해야 하며, 국가는 돌봄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정책적 차원에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볼륨도 있는 터라 한 편의 논문을 읽은 기분이다. 번역체이다 보니 쉬이 읽히진 않았지만, 돌봄노동의 현실을 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한 챕터가 끝날 때마다 단어를 설명한 부분이 인상 깊었다. 사전적 의미를 명시함으로써 본질에 주목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고전 『리어왕』을 ‘돌봄의 부재’라는 주제로 성찰한 것 또한 신선한 접근이라 기억에 남는다. 세상에 돌봄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돌봄노동이 가치를 인정받고 제대로 자리잡는 그 날까지, 우리 모두 관심을 가지고 촉구해야 할 것이다. 이 사회를 위해, 미래를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