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이 없는 삶이라도
김해서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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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박연준 시인이 극찬했다는 김해서 작가의 첫 산문집이다. 저자는 인터뷰, 에세이, 제품 및 콘텐츠 설명 등 다양한 글로 먹고 사는 프리랜스 에디터, 일명 글쟁이. 이 세상 모든 글을 사랑하지만 글재주는 없는 독자로서는, 글로 먹고 산다는 건 꽤나 낭만적이다.

 

슬픔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슬픔을 믿어주면서, 우리는 곁에 있다.”

슬픔을 애써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용감하게 슬퍼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아는 것 중 가장 근사한 것을 시로 꼽는 사람, 언제나 감내할 수 있을 만큼 불편해보려는 사람. 그런 사람이 쓰는 글은 어떤지 궁금했다.

 

목차는 세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시와 슬픔 사이, 슬픔과 나 사이, 그리고 나와 당신 사이. 슬픔 당신, 작가의 사유는 세 다리를 건너 나에게로 쏟아진다. 그의 유년 시절에 박혀있는 아픔과 잇따른 등단의 실패에서 피어난 슬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것을 발견할 줄 아는 온기 가득한 시선. 작가는 오랫동안 시인이라는 꿈을 꿔 왔기에 등단되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하고 슬럼프를 겪기도 한다. 하지만 등단은 하나의 루트일 뿐, 시를 쓰고 있다면 그는 이미 그 자체로 시인이다. 댓글시인 제페토처럼.

 

전에 시인이 쓴 산문집을 읽었을 때 꼭 이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문장들이 대리석에 유리구슬 굴러가듯 유려하면서도 동시에 화사하다. 문장을 꾸며내려고 조잡한 미사여구를 덕지덕지 붙인 것이 아니라, 마치 온전한 상태의 아름다운 문장들을 하나하나 발굴해내는 느낌이다. 꼭 들어맞는 탁월한 단어 선택과 기발한 은유로 이루어진 글자를 눈에 담다 보면 과연 문학은 보통의 감수성으로는 발 들이지 못할 분야라는 생각이 든다.

 

때론 죽음의 순간에 떠올릴 가장 행복한 풍경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여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 원더풀 라이프

나의 마지막 순간에 떠올릴 기억은 어떤 것이 될까.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는지 찾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순간이 너무 많아서 그중에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오늘도 나는 행복을 연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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