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시대 윌북 클래식 첫사랑 컬렉션
이디스 워튼 지음, 김율희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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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 직후 19세기의 뉴욕 상류층을 배경으로

허상과 실상, 무지와 위선, 열정과 사랑을 해부한 문제작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가져서는 안 되었던 순수의 시대

20세기 여성 최초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디스 워튼의 대표작 

 

윌북 첫사랑컬렉션으로 만나 본 네 권의 책 모두 좋았지만, 그중 단연코 최애 작품인 <순수의 시대>. 책도, 영화도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다. 특히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영화는 그야말로 완벽에 가깝다. 태어나기 몇 년 전 작품인데도 시대극이라 그런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고 캐스팅부터 영상미, 연출까지 그냥 다 찰떡!! 넷플릭스에 있으니 꼭 보세요!!

 

순수의 시대지만 순수함과는 거리가 먼 아이러니한 제목 또한 인상깊다. 피상적으로 보면 남자 주인공이 아내의 사촌언니와 바람을 피는 막장드라마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인 19세기 뉴욕 상류층과 사교계를 깊숙이 살펴보면 어느 하나 안타깝지 않은 인물이 없다. 애틋하고도 강렬한 삼각관계 로맨스는 이야기의 핵심이자 주 갈등 원인이지만, 각 등장인물이 상징하는 바를 알아가는 것도 의미 있다.

 

메이 웰랜드는 현실에 완벽하게 순응하며 그 시대의 전통적인 여성상을 수호하는 전형적인 참한인물이라 볼 수 있다. 그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면서도 뚝심 있게 가정을 지키는 외유내강이다. 반면 메이와 대척점에 있는 엘런은 다양한 외국 경험을 바탕으로 자유분방한 매력을 뽐낸다.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뿐. 타인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멋있었다.


마지막으로 뉴랜드 아처는 원래 메이와 같은, 보수적이고 견고한 울타리 안에 머물렀으나 엘런에게 빠지면서 점점 사상이 변하는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다. 관습과 명예를 강요하는 폐쇄적인 상류층의 삶에 저항하며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좇지만 끝내 현실과 타협하고 만다. 세상이 발칙한여인으로 단정짓는 엘런과 대비하여 메이는 순수하게 그려지지만, 어쩌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충실했던 뉴랜드가 가장 순수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숨막히는 전통과 관습을 탈피하고 빛나는 자유를 꿈꾸던, 20세기 여성으로서 보기 드문 진취적인 작가 이디스 워튼.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고 미국 문단의 거장이 되었지만, 그녀의 이름이 정략결혼 후 이혼한 남편의 성씨인 워튼으로 남아 있는 건 아직도 아이러니다. 길이 남을 명작 순수의 시대, 고전 입문용으로 강력 추천합니다!

 

 

윌북 첫사랑 컬렉션의 장점

1.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예쁘고 심플한 디자인

2. 고전 특유의 번역체를 탈피한, 시대에 맞는 깔끔한 문장

3.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세기의 첫사랑 명작 4편으로 구성



p.72  올렌스카 백작 부인의 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확고히 자리 잡았던 신념이 흔들렸고 그의 머릿속을 위험하게 표류했다. “여자들은 자유로워야 합니다…… 우리 남자들만큼이나라는 그의 외침은 그가 속한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기기로 모두가 합의한 문제의 뿌리를 공격했다. ‘참한여자들은 제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더라도 그가 말한 종류의 자유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아처 자신처럼 관대한 남자들은 (뜨거운 논쟁을 거쳐) 한층 더 기사도적인 태도로 여자들에게 그 자유를 허용해줄 용의가 있었다. 그런 말뿐인 관대함은 사실 모든 것을 속박하며, 사람들을 낡은 행동 방식에 구속하는 냉혹한 관습을 눈속임하고 위장하는 방편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자기 아내가 그랬다면 교회와 국가의 온갖 비난이 쏟아지길 빌어 마땅하다고 여겼을 행위를 두고, 약혼자의 사촌으로서 옹호하기로 맹세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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