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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가 놓인 방 ㅣ 소설, 향
이승우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4월
평점 :
p.20 이별 후에 어떤 물건들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물로 작용한다. 물건들은 어떤 시간을 상기시키고 그 시간 속에서 함께했던 어떤 사람, 어떤 사연, 어떤 약속을 불러낸다. 물건은 시간이 고스란히 보존되어있는 화석이다. 그러니까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물건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p.42 그 순간에 세상은 현저하게 축소되었다. 그 땅에, 이 세상에, 당신과 그녀 말고 다른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세상은 두 사람만 사는 공간이 된다. 그들이 어디 있든 마찬가지다. 연인들은 최초의 하늘과 땅을 가진 에덴의 연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세상에 단 두 사람만 거주하는 양 느끼고 말하고 행동한다. 연인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그저 배경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연인은 연인 말고는 다른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사랑은 세상을 축소시키는 기술이다.
p.91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더이상 당신이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기다리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의 자유는 차압당한다.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수상한 이승우 작가의 중편소설.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소설인지, 또는 연애소설인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려 있다. 처음에 표지를 봤을 때는 추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난 지금 다시 보니 굉장히 매력적이다. 푸른 물과 노란 달은 이 글을 관통하는 주제와 닿아있는 매개체이다. 이미 끝나 버린 결혼 생활. 지난 인연을 놓지 못하는 아내, 새로운 연을 시작하는 남편. 아무도 이 허울뿐인 결혼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맞불륜’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폄하하기에는 어느 하나 진정이 아닌 것이 없다. 얇아서 휴대하며 읽기 좋은 책이지만, 집중력을 요하는 글이므로 한 번에 진득하게 완독하길 추천한다. 그저 연애소설인지, 또는 인간에 대한 탐구인지 심오하고 사색적이다. “사랑은 오해에서 시작된다.” 당신의 사랑은 오해로부터 비롯되었는가? 이 책은 당신에게 연애소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