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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평점 :
생(生)이란 얼마나 비루한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 한바탕 잘 놀았소, 고마웠고. 그럼
안녕히”
(로맹 가리의 유서 中에서)
영화 같은 삶이었다. 로맹 가리의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태어나 프랑스 파리에서 권총 자살로 마감한 인생은 작가의 인생치고 꽤나 기이하다. 그는 전쟁 영웅이었고, 스타
작가였으며, 외교관이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두 편의 영화를 찍기도 했고 24세 연하의 여배우 진 세버그와 세기의 사랑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를 유명하게 했던 사건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을 통해 4편의 소설을 발표하고, 1975년 <자기 앞의 생>으로 두 번째
공쿠르 상을 받은 일이었다. 로맹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한 인물이라는 사실은 1980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후 그가 남긴 위의 유서를 통해서
밝혀졌다. 그리하여 평론계의 편견에 보란 듯이 조롱하며, 전무후무할, 일생에 두 번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가가 되었다.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이하 에밀 아자르)는 스무권의 작품을
통해서 “진정한 관심사는 인간의 존엄성이며
인간의 권리” (<인간의 문제> p.19) 임을 드러낸다. 로맹 가리에게 소외, 인권, 소수자, 불평등 등 인간이
처한 부당한 권리의 문제는 중요한 화두였다. 평생 동안 경멸했던 민족주의, 제국주의, 식민주의는 그의 소설을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
되었다.
“내가 예술이나 문학의 몫으로 생각하는
유일하게 성스러운 의무는 진짜 가치들을 쫓는 것이네. 작가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하네” (p.129)
라고 마지막 작품 <밤은
고요하리라>에서 작가의 소신을 밝히기도 한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내놓은 첫 작품 <자기 앞의 생>은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자기 앞의 생>은 아랍계 소년 ‘모모’와 창녀의 아이들을
맡아서 키우는 유태인 ‘로자 아줌마’의 사랑과 우정을 그리고 있다. ‘모모’는 세 살 때 부모에게 버림받아 ‘로자 아줌마’ 밑에서 자라고 그녀를
도와 다른 창녀의 아이들도 돌보게 된다. ‘로자 아줌마’가 점점 노쇠해지고 뇌혈증을 앓자, 반대로 그녀를 돌보게 된다. 그 와중에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주변인들은 인종과 국적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지혜롭고 경험 많은 아랍계 ‘하밀 할아버지’,
로자 아줌마와 아이들의 건강을 돌봐주던 의사 ‘카츠 선생님’, 숲에서 몸을 팔지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던 여장 남자인 ‘롤라 아줌마’, 카메룬
출신의 흑인 청소부로 독특한 즐거움을 주던 ‘왈룸바 씨’, 모모를 기다려주고 도와주는 ‘나딘 양’ 등이 등장한다. 다소 불우해보일 수 있는
상황들이 펼쳐지지만 ‘모모’의 유머와 재치, 주변인들의 따뜻한 시선으로 소설은 마냥 슬프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p.12)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어릴
때부터 생(生)이라는 것은 한없이 남루하고, 행복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린 모모에게 ‘사랑’은 중요한 화두였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모모는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는 로자 아줌마를 돌보면서 자신이 사랑했던 이는 그녀임을 깨닫는다. 그는 불우한 환경과 힘겨운 삶 속에서 로자
아줌마와의 사랑과 우정에 의지한다. 로자 아줌마 뿐만이 아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그의 이웃들도 사랑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의
이웃들은 최근 대두되고 있는 유사가족처럼 볼 수도 있으며, 가족의 해체 위기를 안고 있는 새로운 공동체의 대안이라는 측면에서 현대인들에게 따뜻한
울림을 준다.
“아랍인이건 유태인이건 여기에서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p.223)
친아버지 유세프 카디르 씨가 위탁 아이 중
모세를 자신의 아들 모모로 착각하고 로자 아줌마에게 따지자, 로자 아줌마는 이렇게 대응한다. 모모와 로자 아줌마 사이의 인종과 종교를 초월한
우정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분쟁 해결의 실마리처럼 보인다. 이 뿐 아니라 모모는 종교, 인종, 직업, 나이 등을 초월해 사랑한다. 여장 남자
롤라 아줌마에 대해서도 누구보다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사람이라 긍정하며, 성소수자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하밀 할아버지는 아프리카에서
대우받는 노인이 되었을 것이라며 세대 간의 문제까지 사랑으로 초월한다. 이 밖에 등장하는 주변인들, 심지어 우산인형 아르튀르까지 모모는 일반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과 다르게 생각한다. 이것이 모모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종교를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고, 나이를 초월하며,
심지어 생물의 양태까지 초월한다. 모모는
“감정을 쏟을 가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르튀르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래서 내가 몹시 걱정했기
때문이다” (p.307) 라고 말한다.
모모가 사랑하는 방식은 존재의 방식이 아닌, 감정의 쏟을 ‘사랑’ 이라는 가치에 있다.
“사랑해야 한다” (p.307)
인생이 때론 남루하고, 비참하고,
냉혹하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내 앞에 놓인 냉혹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고민한다. 이 소설은 그 답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인생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사랑하는 일’ 이다. 주변 사람들과 서로 의지하며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깨달아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소설은 말한다. 비루한 삶 속에서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랑’은 생(生)을 아름답게 한다. 종교·인종·세대 간의 분쟁, 성소수자들에 대한 시선,
심지어 안락사의 문제까지 이 소설은 그 답을 알고 있다. 에밀 아자르와 모모가 꿈꾸는 ‘자기 앞의 생(生)’은 이것이라 말한다.
“사랑해야 한다”는 단언 앞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생(生)을 꿈꾸게 될 것이다.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p.12)
"아랍인이건 유태인이건 여기에서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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