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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지내요", "잘 지내지" 같은 말들은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진심을 알아채긴 힘든 말인 것 같습니다. 너무나 흔하게 주고 받아서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렸달까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제목에 대해 생각해보니 '어떻게 지내요'는 무심하지만 가장 온기 어린 말이었습니다.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일보다 더 힘든 것이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사랑했던 사람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일이다.'(38p.) 이 소설을 가장 잘 나타내는 부분은 이 문장일 것 같습니다. '늙어가는 것'이라고 표현했지만 이를 '죽어가는 것'으로 넓혀 생각하며, 친구를 바라보는 화자에게 더욱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어떻게 지내요'의 화자는 담담하면서도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가끔은 친구의 버거운 부탁도 들어줄 정도로 과감한 면도 있죠. 화자의 삶에 대한 태도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무슨 일이 있건 삶은 이어진다. 엉망의 삶, 부당한 삶,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 삶. 내가 처리해야 하는.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212p.) 삶은 제가 선택하여 받은 것이 아니지만, 삶을 이루는 것은 제가 한 선택들이고 또한 제가 처리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어떻게 지내요'는 '어린왕자'와 같이 시간이 흐른 뒤 읽었을 때 더욱 얻는 것이 많아지는 책 같습니다.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고싶은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소장할 가치가 있는 소설입니다.
<책속으로>
92p. 아, 저기 봐! 친구가 말했다. 병원 창밖으로 눈이 내리고 있었고, 해가 막 떨어진 참이라 눈이 노을에 물들어 분홍빛이었다. 분홍색 눈송이라니. 친구가 말했다. 뭐, 죽기 전에 저런 것도 봤네.
122p.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 Quet est ton tourment?
150p.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적어도 둘이 있지만, 떠날 때는 오로지 혼자라고 누군가 말한 적이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럼에도 모든 인간 경험을 통틀어 가장 고독한 경험으로, 우리를 결속하기보다는 떼어 놓는다. 타자화되다. 죽어가는 사람보다 더 그런 사람이 누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