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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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야기는 러시아의 한 귀족 사교계에서 시작한다. 드루베츠카야 공작부인은 자신의 외아들을 근위대에 넣기 위해 바실리 공작에게 애원하고 야회에 모인 사람들은 나폴레옹과 앙기앵 공의 처형에 대해 논하면서 그들의 작은 세계를 침투하는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안드레이와 피예르, 그리고 나타샤를 주축으로  셀 수 없는 인물들이 나오고 전쟁의 시대에서 각자의 선택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살아간다. 

 

 피예르와 안드레이는 여러모로 대칭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이는 소설의 첫부분인 안나 파블로브나의 연회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여제 시대때 고관으로 활동한 베주호프 백작의 아들로서 명문가의 혈통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뚱뚱하고 묵직한 몸집의 피예르는 외적으로도 매력적이지 않으며 더욱이 백작의 서자, 즉 적자로 인정 받지 못하는 사생아라는 신분은 그의 사교계에서의 매력을 더욱 반감시킨다. 때문에 야회 주최자인 안나 파블로브나는 살롱의 가장 낮은 계급의 인사로 그를 맞이하고 그가 무례한 행동을 할까 두려워하며 감시한다. 반면에 안드레이는 이미 작위를 물려받은  젊은 공작으로서 자신이 만족하지 못할지언정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으며 동시에 그 자신의 외견도 훌륭하고 귀족적이다. 그는 야회에서 앙기앵공을 처형한 나폴레옹을 칭송하여 곤란을 겪고 있는 피예르를 두둔하고 옹호하며 논란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외모와 사교계의 영향력이 극과 극인 이 두 사람은 친구이며 시대의 영웅 '나폴레옹'을 동경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결국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전쟁터로 향한다.


" 이  드높고 끝없는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은 전혀 다르다. 왜 나는 전에 이 드높은 하늘을 보지 못했을끼? 그러나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렇다! 모두 허무하다. 모두 거짓이다. 이 끝없는 하늘 외에는. 그러나 이 하늘마저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정적과 평안 외에는.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사령관의 부관으로서 전쟁에 참여한 안드레이는 오히려 전쟁속에서 활기를 되찾는다. 러시아 군에게 위험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그는 과거 툴롱에서의 나폴레옹처럼 오히려 그 자신이 그런 아군을 구출하는 사명을 받은 영웅을 꿈꾸나 전장의 실상과 마주하고 기대와 동떨어진 현실에 우울해한다. 그는 오랫동안 툴롱, 그가 영웅이 되어 얻을 승리에 대해 열망하고 고대했으나 결국 부상을 입고 전장의 한복판에서 쓰러진 채 오직 머리 위의 드높은 하늘을 보며 전쟁의 허무와 거짓에 대해 깨닫는다. 프랑스의 포로가 된 안드레이는 이전까지 그가 영웅으로 추앙했던 나폴레옹의 눈을 보며 위대함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그의 마음을 온통 불태웠던 오만과 허영된 공명심을 내려놓고서 과거의 조용했던 생활과 평온한 가정의 행복을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하고싶지 않은 사람들이 결행한 무서운 살인을 본 순간부터 피예르의 마음 속에서는 모든 것을 지탱하고 살아 있다고 여겨지게 하던 용수철이 갑자기 빠져나가 모든 것이 무의미한 쓰레깃더미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 자신은 뚜렷이 의식하진 못했지만 세상의 개선에 대한 믿음도, 인간도, 자신의 영혼도, 신도 붕괴되어버렸다.


 군인으로 곧바로 전장으로 향한 안드레이와 달리 개인으로서 늦은 전장을 경험한다. 유언장의 개봉과 동시에 갑작스레 적자로 인정 받아 부친의 막대한 유산을 얻게된 피예르는 화제의 중심에 서게되고 귀족들은 예전의 얼굴을 바꾸어 그를 환영한다. 그 중에도 특히 바실리 백작은 그의 딸인 옐렌과 그를 결혼시켜 그에게 돈을 빌리려는 획책을 도모하고 피예르는 오로지 교묘한 상황과 옐렌의 미모에 이끌려 그녀와 결혼한다. 그러나 그의 끝없이 펼쳐질 것 같은 장미빛 미래는 아내의 부정한 소문에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스쳐간다. 비탄과 증오에 잠식된 그는 격분하여 그 소문의 상대자인 돌로호프에게 결투를 청하고 피예르는 그를 쏘는 것에 성공하여 승리하지만 곧 후회한다. 그는 아내의 정부를 죽인 것에 괴로워하며 아내에 대한 미움과 그 자신의 기만에 대해 고뇌하다 그녀를 떠난다. 그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사랑과 미움, 삶과 죽음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던지며 프리메이슨의 형제단에 가담하나 곧 그에도 실망하고 보르디노 전장으로 향한다. 그는 실제 전장의 참혹함, 쏟아지는 총탄과 포화 속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고 그 모든 것들에 압도당한다. 지금까지 우상시해왔던 나폴레옹에 대해 분노를 느껴 그를 암살하려 마음 먹지만 결국 모스크바에서 방화범으로 체포되어 수용소에 포로로 수감되게 된다. 그 수용소에서 선량한 농민 플라톤 카라타예프와 만난 피예르는 러시아 민중의 힘을 느낀다.


 잎이 지고 떨어지듯 들뜬 젊은 열정은 전쟁의 포화 속에 으스러지고 오만했던 안드레이와 우둔했던 피예르는 그들이 영웅으로 숭배하던 나폴레옹과 전장에의 명예가 그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설은 이 두 사람을 통해 나폴레옹과 플라톤 카라파예프를 대비하면서 나폴레옹을 무조건적인 악으로서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영웅으로 추앙되고 전쟁의 승리자로서 명예를 얻을려는 행위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전쟁의 참혹성과 허무함을 설파한다. 

 

  두 사람이 전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면 나타샤는 전쟁 속에서도 일그러지지 않는 평화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녀는 어린시절 보리스와의 풋사랑을 하기도하고 어느 순간 절대 결혼하지 않고 무용가가 될 것이라며 호언장담하기도 하는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주는 발랄하고 철없는 소녀이다. 천성적으로 활발한 그녀의 영혼은 안드레이와 아나톨, 그리고 다시 피예르와 사랑을 하면서 성숙하고 충만한 영혼으로 피어난다. 안드레이가 전쟁에서 돌아오는 순간 운명은 얄궂게도 그가 이전까지 쫒아왔던 허영된 전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그의 소중했던 가정을 되찾으려하자 그에게서 아내를 앗아간다. 그는 돌일킬수 없는 죄에 슬퍼하며 아무것도 없는 삶을 살아가려하나 곧 나타샤와 만나게되고 쾌활하고 생기있는 그녀를 통해 생의 희망을 느끼고 동시에 사랑에 빠진다. 나타샤 또한 여러 연회에서 그와 만나며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안드레이의 아버지가 시작하는 연인들에게 명한 일년간의 유예는 아직 무르고 순진하기 그지없는 나타샤로 하여금 동요하게 만든다. 초조한 마음은 감상적인 마음으로 이어지고 결국 그녀는 아나톨의 유혹에 흔들려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와 사랑의 도피를 하려다 실패한다.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안드레이와 나타샤, 두 연인은 깨어진다. 이때까지의 나탸샤는 그저 미성숙한 영혼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부평초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이후 피난길에서 부상으로 죽어가는 안드레이를 외면하지 않고 용기있는 선택으로 그를 찾아간다. 그에게 간절한 용서를 빌면서 진심으로 간호하는 나타샤는 그전과는 다른 성숙한 영혼으로 변모하고 그녀는 사랑과 기도로서 안드레이를 마지막까지 배웅하고 안드레이는 그런 그녀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깨달으며 진실된 용서를 한다. 그리고 나타샤는 다시 만난 피예르와 함께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의 새로운 시작을 한다. 새롭고 좋은 것,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의 행복을 위하여 나타샤는 풍만한 생명력으로 아이들 낳고 화목한 가정을, 새로운 평화를 이룬다. 

 

 처절하고 비참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곳을 살아가는 인간이 있다. 그리고 시대의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끝없이 선택을 한다. <전쟁과 평화>는 그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사시이다.  백작부인이 그녀의 친구인 안나 미하일로브나에게 돈을 건네며 서로를 끌어안고 돈에 구애받는 현실에 그리고 서로의 지나간 청춘과 우정을 떠올리며 울고, 자신을 무시하고 차별했던 아버지로 벗어난 것에 기쁨과 동시에 자기혐오를 느끼던 마리야는 자신을 구출해준 니콜라이와 사랑에 빠지며, 죽어가는 안드레이와 재회한 나타샤는 용서와 화해 속에서 따뜻한 이별을 하고 피예르와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낳아 기른다. 이처럼 사람은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선택하고 지나간 선택에 울기도 하며 그 선택들의 갈림길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 새로이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전쟁이 스쳐지나간 상처 위로 아픔을 딛고 또다시 평화를 이루어내며 살아간다.

 

 러시아 문학에는 다수의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의 다양한 삶의 지향점을 보여주는데 <전쟁과 평화>도 그 예이다. 첫장에서부터 시작되는 이름들의 나열에 책을 덮어 도망가거나 문장이 길어 지루하고 어렵다는 이유로 <전쟁과 평화>뿐만 아니라 러시아 문학 자체를 기피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나 한장 한장 사람들의 물결에 따라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가여운 공포증은 부지불식간에 해결되고 책 속의 흐름에 빠져 그들의 '삶'을 읽어낼 수 있다. 고정된 인물이 아니라 살아숨쉬며 변화하고 약동하는 인물의 면면이다. 일명 나폴레옹 전투라 불려지는 1805년의 아우스터리츠 전투부터 1812년의 조국전쟁을 거쳐 1820년까지의 거의 15년에 걸친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매몰된 인간 개개인을 주목함으로서 역으로 당대 러시아와 시대의 고통,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의 의미를 담아내었다. 나는 그래서 오늘도 또다시 <전쟁과 평화>의 페이지를 넘기며  그들의 충만한 영혼의 기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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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공작님의 스캔들 1권 공작님의 스캔들 1
커피콩 / 문릿노블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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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가 여주를 너무 날름 결혼해서 데려가는게 아닌가 싶어요 ㅋㅋㅋㅋ 남주는 의욕만만인데 여주는 모르는게 귀엽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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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색과정(色跨情) 색과정(色跨情) 1
홍서혜 / 문릿노블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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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 키워드가 마음에 들어 구매했는데 생각보다 더 재밌게 읽었어요. 단편이지만 꽉찬 내용에 만족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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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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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부족한 일자리와 인구로 해가 지날 수록 점점 사라져가는 도시 베어타운. 옛 영화를 되새기게하는 아이스링크, 유일하게 사랑받는 스포츠 아이스 하키.그들은 도시 재건을 꿈꾸며 청소년 팀의 준결승전에 사활을 걸고 희망을 품는다. 때문에 베어타운의 하키는 그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도시에 활기를 불어주고 자존심을 세워주기도 하며 나아가 미래의 희망이었다. '탕-탕-탕-탕.' 아침에 들리는 하키 소리를 들으며 베어타운 사람들은 미소 짓는다. 추위를 물리치고 어둠을 밝힐 모닥불, 그들이 하이츠에 살건 베어타운 중심가에 살건 할로에 살건, 베어타운에 사는 누구나의 희망. 코치들은 긴장감에 토악질을 해대고 소년들의 어깨엔 기대가 내려앉는다. 소설은 중반까지 하이츠와 할로, 중심가를 가로지르며 베어타운에 자리잡은 하키의 뿌리를 끝없이 보여준다. 로비와 페테르, 각자의 선택으로 바뀐 운명을 통해 보여지기도 한다. 하키를 선택하느냐, 포기하느냐에 의해  양극단으로 나눠진 삶을 살아가는 두사람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기도 하며 하키팀의 코치로서 서로 다른 길을 추구하는 수네와 다비드를 통해 보여지기도 한다. "천장은 높고 벽은 두껍다." 하키의 승패가 곧 도시가 생존과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일생을 하키에 바치고 아이들이 선수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치려한 수네지만 공공의 목표를 위해 해고되고 그 자리는 승리에 집착하는 이사진들에의해 승리만을 위한 훈련을 시키는 코치 다비드에게 돌아간다. '문화, 가치, 공동체'. 베어타운은 하키타운이다. 그 가운데 '그 일'이 일어난다.


하키타운의 에이스를 신고하고자 결심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마야는 여기는 하키타운이라며 모두에게 알리지 않기로 다짐하지만 아나의 설득과 창밖을 지나가는 세 여자아이를 보고서 마음을 바꾸어 케빈을 신고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청소년팀 결승전의 패배였다. 그 원인이 에이스의 부재였던 아니던 마을의 희망은 꺾였고 사람들은 희생양이 필요했다. 때문에 안데르손 가족들은 친절하고 다정한 이웃들의 가려진 얼굴을 마주보게 된다. 베어타운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곰이 살고 있다.


어려운 문제, 단순한 해답. 공동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들의 총합이다.


여기서 소름끼치는 문장 하나가 대두한다. 순간 머리속으로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갔고 불길한 예감은 맞았다. 다음 순간 베어타운 사람들은 선택을 한다. 그들은 페테르를 추방하려한다. 베어타운 사람들의 마음 속엔 곰이 살고 있다. 그들은 눈을 가린 채 마치 겨울잠을 자고 있는 동굴을 습격당한 곰처럼 마야의 가족들에게 분노를 쏟아낸다. 오히려 피해자인 마야를 탓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잔인하게 일그러진 사회의 적나라한 면면을 보여준다. 케빈의 아빠인 에르달은 아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아집으로 마을 전체에 압력을 행사해 페테르를 해고하려 한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가해자를 피해자로, 공동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지는 보복은 돌멩이 테러와 마찬가지로  안데르손 가족들을 막다른 곳으로 내몰리게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불합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선택을 한 사람들도 있다. 케빈과 단짝 친구였지만 그런 행동을 한 케빈에게 실망해 마야를 위해 자신이 거울을 깬 척 정학을 받은 벤이,학교에 침입하여 나쁜 년이라는 마야를 향한 모욕을 지워낸 사카리아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모른 척 해준 예아네테. 술집을 두고 협박을 받았지만 오히려 역으로 회의장에서 부끄러운줄 알라며 마을사람들에게 호통쳤던 라모나.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 당한 아맛. 그리고 놀랍게도 보보. 또한 몇몇의 그러나 마야를 믿는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마야의 아버지 페테르는 해고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케빈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되었지만 마야는 케빈을 증오하는 것보다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더욱 사랑했기에 최선의 복수를 한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경기인데. 최고로 재미있는 경기, 배워볼래?"


이 일대 사람들은 곰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벚나무에서는 항상 벚나무 냄새가 풍긴다.


하키 타운에서는 늘 그렇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다비드는 헤드 하키팀으로 이전하면서 팀의 선수들을 데려갔고 베어타운 하키팀의 후원자는 이제 단 둘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키를 여전히 하키를 사랑하고 베어타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곰이 살고 있기에 마을은 다시 나아간다. 새로이, 조금 더 열린 방향으로. 
 

소설을 읽고 마음에 담긴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다. 우선 주인공인 마야가 그렇다. 그녀는 언제나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 자기자신에게 가혹하지만 옳은 일을 행한다. 자신이 마을의 에이스인 케빈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알릴 때도 그렇지만 그에게 복수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둘 중 한 명이 죽을 것이다. 그녀는 그게 누가 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처음 문장을 읽었을때 소설의 첫 부분이 상기되었고 나는 마야가 숲속에서 자신 혹은 케빈 중 한명을 헤칠 것이라는 예감에 불안했다. 그러나 마야는 실탄을 장착하지 않은채 방아쇠를 당긴다. 어쩌면 대신 사과하러왔던 케빈의 엄마를 생각했을 수도 있고 가족들과 친구 아나, 그리고 마야 그 자신을 위해서 일 수도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어떤 방식으로도 자기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아서, 그리고 십년 후의 그녀가 행복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야의 엄마인 미라도 눈에 들어왔다. 작가는 미라를 통해서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적 시선을 보여준다. 대도시 출신인 미라는 십년이 지났어도 베어타운의 외지인이다. 그녀는 베어타운의 사람들이 하키 경기에만 몰두하는 걸 이해할 수 없고 오로지 그녀가 그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코치의 부인상이 아닌 그녀의 직업과 삶에 집중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무례를 지적한 것만으로 내던져지는 익숙지 못한 모욕에도 참아넘기며 그저 그들과 유리된 채 살아갈 뿐이다. 오직 남편을 사랑하기에. 그녀는 변호사라는 자신의 직업 또한 사랑한다. 하지만 그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능력보다 못한 로펌에서 일하고 타인의 나무라는 시선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 부족이 아닌가하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때문에 더이상 '커리어 우먼'이라는 단어를 좋아할 수 없게되고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지만 가족들에 죄책감과 타인의 시선, 그리고 회사의 성차별적 승진 불이익 등의 여러가지 복합적인 고통받는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고 가족을, 아이들을, 그리고 마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아맛과 보보가 마음에 남는다. 허름한 할로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청소부인 엄마와 단 둘이 사는 아맛은 하키를 통해 빈곤한 삶에서 자신이 하키로 성공하여 탈출하기만을 고대했다. 더도 덜도 아닌 하루라도 엄마가 하루 편히 쉴 수 있는 날을 위하여. 그러나, 오천크로나. 소년은 선택을 강요당한다. 양심과 꿈꾸던 성공에의 갈래길에서 한쪽 길을 선택해야했다. 그는 흔들렸지만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양심을 선택했고 결국 회의장에서 모든것을 폭로한 결과로 배신자로 몰려 아이들에게 보복을 받는다. 그러나 아맛의 위기에 늘 아맛과 친구들을 괴롭혔던 보보가 그를 도와주고 소년은 자신이 버렸던 꾸깃꾸깃한, 그러나 새로운 의미로 바뀐 오천크로네를 되돌려받는다. 그리고 그 돈으로 마야를 위한 기타를 산다. 양심과 이익 사이에서 양심을 선택하는 건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아맛과 같이 오히려 불이익이 올 수도 있는 막다른 길에선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올바른 선택을 한 아맛이 대단하고 파티마는 자랑스러웠을 것 같다. 보보는 처음에 아맛을 괴롭히던 무리의 주동자였는데 어느순간 아맛의 친구 사카리아스를 도와주더니 결국 배신자로 몰려 함께 린치 당할 것을 알면서도 아맛을 구해 그의 말대로 진면목을 보여준다. 얼마나 의리있고 용감하며 헌신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끝에 보보가 아빠와 대화하면서 자신이 숫총각임을 밝히고 혼전순결을 지키고 싶다고 말하는 고백까지 읽으니 그저 귀엽고 어쩌면 사랑스럽기까지하다. 십년후 프로선수가 되도 좋고 아빠가 되도 좋을 것 같다. 프로선수로서 아맛과 함께 경기를 뛰고 있거나 혹은 사랑에 빠진 아내와 결혼을 해서 따뜻한 가정을 가졌거나 어느 쪽이든 잘 어울린다.  


마지막으로 벤이가 베이스 연주자와 함께 떠났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기에 한명의 죽음이 그가 아니길 바란다. 어쩌면 십년 뒤 벤이와 베이스 연주자가 다시 만날 수 있었기를. 그 무덤의 주인이 그가 아니길. 적어도 하키팀에서 우스개소리 동성애 소재를 웃어넘길 수 밖에 없었고 그 누구에게도, 아버지처럼 따랐던 코치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숨기고 살았던 그가 행복한 삶을 살았길.


 베어타운은 단적으로 공동체와 사회의 이익에 반대되는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이기심에 대해 여과없이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대해왔던 결승전의 승리를 마야에게 빼앗긴듯 분노하며 피해자인 그녀를 오히려 짖밟고 뭉개버리려한다. 비록 베어타운의 일만은 아니다. 현실에서도 세상은 피해자에게는 가혹하고 가해자에게는 놀랄만큼 관대롭다. 베어타운은 몰락해가는 도시이고 그렇기 때문에 마을의 옛 영광을 되돌려놓을 하키팀에게 권리를 부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문제는 베어 타운의 사회 현실에 있다. 교실 안에서 교사를 말을 듣지 않고 놀려도 벌하나 받지 않는 허용적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음습하게 깔려있는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시선 아래에서 아이들은 학습한다. 남자에게 허용되고 여자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오직 남자아이들만의 전유물로서의 하키, 그리고 같이 관계를 했어도 남자애는 내기의 승리자가 되고, 여자애는 '걸레'라고 칭해진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마야는 피해자였지만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마을의 네트워크에서 쳐내진 것이다. 다행이도 소설의 끝에서 베어타운은 여자 하키팀을 결성한다. 보다 나은 사회로 한발짝 내딛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이에 뒤쳐져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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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세트] [BL] 입술 - BL the Classics (총2권/완결)
뾰족가시 지음 / 더클북컴퍼니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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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에 들리는 평도 좋고 공이 다른 소설에서는 보기 쉽지않은 타입이라는 얘기에 혹해서 읽었어요.

생각보다 술술 넘어가는 소설이 아니라 천천히 읽고 있는데 왜 하선연이 공주공이라는지 이해는 가지만 생각했던 것처럼 새침떼기 공주님은 아니라 아쉬워요. 상상했던거에서 새침함은 -50 얄미움은 +90정도로 읽으면서 조금씩 짜증나네요 ㅋㅋㅋ 다행이 택승이가 무덤덤한 편이라 공감성 수치는 적어서 편하게 읽었습니다. 라면이나 자판기 커피라던가 통감자 구이, 맥반석 오징어 같은 휴게소 음식들, 돼지국밥 같이 택승이가 평범하게 먹던 음식을 질색하는 것처럼하다가 나중에는 자기가 더 잘 먹는 모습 같은게 귀엽기도하고요. 그리고 전혀 생각 못했던 조연이었던 매니저가 마음을 훅치고 가네요! 택승이가 다니는 가게 매니저인 강유형이 택승이를 좋아하는 것 같고 사람이 참 배려깊고 다정해요. 사근사근한 다정함이 아니라 무심한 척 택승이를 배려하고 무심한 척 다정하게 아껴줘요. 읽다가  선연이 짜증날때는 그가 택승이랑 잘 됬으면 했지만 전혀 여지를 주지 않아서 실패한 주식이 되었네요ㅠㅠ 대충의 스포를 알고 구매했던지라 처음 택승이가 편지를 건네던 것이 그 자신의 고백편지가 아니라 친구의 고백편지라는 걸 알고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와 엇갈리며 나오는 회상에서 과거를 볼 때마다 택승이가 선연이을 좋아했던 것처럼 읽혀집니다. 택승이의 무채색 학교 생활에 반짝이는 선연이와의 추억이 한겹씩 한겹씩 색을 얹어 쌓여 있는데 어쩌면 학생시절 택승이는 아주 옅어 자기도 몰랐던 사랑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기대가 컸던지 조금 아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괜찮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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