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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ㅣ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평점 :
삼월 말의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부족한 일자리와 인구로 해가 지날 수록 점점 사라져가는 도시 베어타운. 옛 영화를 되새기게하는 아이스링크, 유일하게 사랑받는 스포츠 아이스 하키.그들은 도시 재건을 꿈꾸며 청소년 팀의 준결승전에 사활을 걸고 희망을 품는다. 때문에 베어타운의 하키는 그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도시에 활기를 불어주고 자존심을 세워주기도 하며 나아가 미래의 희망이었다. '탕-탕-탕-탕.' 아침에 들리는 하키 소리를 들으며 베어타운 사람들은 미소 짓는다. 추위를 물리치고 어둠을 밝힐 모닥불, 그들이 하이츠에 살건 베어타운 중심가에 살건 할로에 살건, 베어타운에 사는 누구나의 희망. 코치들은 긴장감에 토악질을 해대고 소년들의 어깨엔 기대가 내려앉는다. 소설은 중반까지 하이츠와 할로, 중심가를 가로지르며 베어타운에 자리잡은 하키의 뿌리를 끝없이 보여준다. 로비와 페테르, 각자의 선택으로 바뀐 운명을 통해 보여지기도 한다. 하키를 선택하느냐, 포기하느냐에 의해 양극단으로 나눠진 삶을 살아가는 두사람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기도 하며 하키팀의 코치로서 서로 다른 길을 추구하는 수네와 다비드를 통해 보여지기도 한다. "천장은 높고 벽은 두껍다." 하키의 승패가 곧 도시가 생존과 연관되어있기 때문에 일생을 하키에 바치고 아이들이 선수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가르치려한 수네지만 공공의 목표를 위해 해고되고 그 자리는 승리에 집착하는 이사진들에의해 승리만을 위한 훈련을 시키는 코치 다비드에게 돌아간다. '문화, 가치, 공동체'. 베어타운은 하키타운이다. 그 가운데 '그 일'이 일어난다.
하키타운의 에이스를 신고하고자 결심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실제로 마야는 여기는 하키타운이라며 모두에게 알리지 않기로 다짐하지만 아나의 설득과 창밖을 지나가는 세 여자아이를 보고서 마음을 바꾸어 케빈을 신고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청소년팀 결승전의 패배였다. 그 원인이 에이스의 부재였던 아니던 마을의 희망은 꺾였고 사람들은 희생양이 필요했다. 때문에 안데르손 가족들은 친절하고 다정한 이웃들의 가려진 얼굴을 마주보게 된다. 베어타운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곰이 살고 있다.
어려운 문제, 단순한 해답. 공동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들의 총합이다.
여기서 소름끼치는 문장 하나가 대두한다. 순간 머리속으로 여러 생각이 스쳐지나갔고 불길한 예감은 맞았다. 다음 순간 베어타운 사람들은 선택을 한다. 그들은 페테르를 추방하려한다. 베어타운 사람들의 마음 속엔 곰이 살고 있다. 그들은 눈을 가린 채 마치 겨울잠을 자고 있는 동굴을 습격당한 곰처럼 마야의 가족들에게 분노를 쏟아낸다. 오히려 피해자인 마야를 탓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잔인하게 일그러진 사회의 적나라한 면면을 보여준다. 케빈의 아빠인 에르달은 아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아집으로 마을 전체에 압력을 행사해 페테르를 해고하려 한다. 피해자를 가해자로, 가해자를 피해자로, 공동체라는 미명하에 이루어지는 보복은 돌멩이 테러와 마찬가지로 안데르손 가족들을 막다른 곳으로 내몰리게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불합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선택을 한 사람들도 있다. 케빈과 단짝 친구였지만 그런 행동을 한 케빈에게 실망해 마야를 위해 자신이 거울을 깬 척 정학을 받은 벤이,학교에 침입하여 나쁜 년이라는 마야를 향한 모욕을 지워낸 사카리아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모른 척 해준 예아네테. 술집을 두고 협박을 받았지만 오히려 역으로 회의장에서 부끄러운줄 알라며 마을사람들에게 호통쳤던 라모나.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 당한 아맛. 그리고 놀랍게도 보보. 또한 몇몇의 그러나 마야를 믿는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마야의 아버지 페테르는 해고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케빈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가 되었지만 마야는 케빈을 증오하는 것보다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을 더욱 사랑했기에 최선의 복수를 한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경기인데. 최고로 재미있는 경기, 배워볼래?"
이 일대 사람들은 곰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벚나무에서는 항상 벚나무 냄새가 풍긴다.
하키 타운에서는 늘 그렇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다비드는 헤드 하키팀으로 이전하면서 팀의 선수들을 데려갔고 베어타운 하키팀의 후원자는 이제 단 둘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키를 여전히 하키를 사랑하고 베어타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곰이 살고 있기에 마을은 다시 나아간다. 새로이, 조금 더 열린 방향으로.
소설을 읽고 마음에 담긴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다. 우선 주인공인 마야가 그렇다. 그녀는 언제나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 자기자신에게 가혹하지만 옳은 일을 행한다. 자신이 마을의 에이스인 케빈에게 성폭행 당한 사실을 알릴 때도 그렇지만 그에게 복수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둘 중 한 명이 죽을 것이다. 그녀는 그게 누가 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처음 문장을 읽었을때 소설의 첫 부분이 상기되었고 나는 마야가 숲속에서 자신 혹은 케빈 중 한명을 헤칠 것이라는 예감에 불안했다. 그러나 마야는 실탄을 장착하지 않은채 방아쇠를 당긴다. 어쩌면 대신 사과하러왔던 케빈의 엄마를 생각했을 수도 있고 가족들과 친구 아나, 그리고 마야 그 자신을 위해서 일 수도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 어떤 방식으로도 자기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아서, 그리고 십년 후의 그녀가 행복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야의 엄마인 미라도 눈에 들어왔다. 작가는 미라를 통해서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적 시선을 보여준다. 대도시 출신인 미라는 십년이 지났어도 베어타운의 외지인이다. 그녀는 베어타운의 사람들이 하키 경기에만 몰두하는 걸 이해할 수 없고 오로지 그녀가 그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코치의 부인상이 아닌 그녀의 직업과 삶에 집중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무례를 지적한 것만으로 내던져지는 익숙지 못한 모욕에도 참아넘기며 그저 그들과 유리된 채 살아갈 뿐이다. 오직 남편을 사랑하기에. 그녀는 변호사라는 자신의 직업 또한 사랑한다. 하지만 그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능력보다 못한 로펌에서 일하고 타인의 나무라는 시선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 부족이 아닌가하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때문에 더이상 '커리어 우먼'이라는 단어를 좋아할 수 없게되고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지만 가족들에 죄책감과 타인의 시선, 그리고 회사의 성차별적 승진 불이익 등의 여러가지 복합적인 고통받는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고 가족을, 아이들을, 그리고 마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아맛과 보보가 마음에 남는다. 허름한 할로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청소부인 엄마와 단 둘이 사는 아맛은 하키를 통해 빈곤한 삶에서 자신이 하키로 성공하여 탈출하기만을 고대했다. 더도 덜도 아닌 하루라도 엄마가 하루 편히 쉴 수 있는 날을 위하여. 그러나, 오천크로나. 소년은 선택을 강요당한다. 양심과 꿈꾸던 성공에의 갈래길에서 한쪽 길을 선택해야했다. 그는 흔들렸지만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양심을 선택했고 결국 회의장에서 모든것을 폭로한 결과로 배신자로 몰려 아이들에게 보복을 받는다. 그러나 아맛의 위기에 늘 아맛과 친구들을 괴롭혔던 보보가 그를 도와주고 소년은 자신이 버렸던 꾸깃꾸깃한, 그러나 새로운 의미로 바뀐 오천크로네를 되돌려받는다. 그리고 그 돈으로 마야를 위한 기타를 산다. 양심과 이익 사이에서 양심을 선택하는 건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아맛과 같이 오히려 불이익이 올 수도 있는 막다른 길에선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올바른 선택을 한 아맛이 대단하고 파티마는 자랑스러웠을 것 같다. 보보는 처음에 아맛을 괴롭히던 무리의 주동자였는데 어느순간 아맛의 친구 사카리아스를 도와주더니 결국 배신자로 몰려 함께 린치 당할 것을 알면서도 아맛을 구해 그의 말대로 진면목을 보여준다. 얼마나 의리있고 용감하며 헌신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끝에 보보가 아빠와 대화하면서 자신이 숫총각임을 밝히고 혼전순결을 지키고 싶다고 말하는 고백까지 읽으니 그저 귀엽고 어쩌면 사랑스럽기까지하다. 십년후 프로선수가 되도 좋고 아빠가 되도 좋을 것 같다. 프로선수로서 아맛과 함께 경기를 뛰고 있거나 혹은 사랑에 빠진 아내와 결혼을 해서 따뜻한 가정을 가졌거나 어느 쪽이든 잘 어울린다.
마지막으로 벤이가 베이스 연주자와 함께 떠났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기에 한명의 죽음이 그가 아니길 바란다. 어쩌면 십년 뒤 벤이와 베이스 연주자가 다시 만날 수 있었기를. 그 무덤의 주인이 그가 아니길. 적어도 하키팀에서 우스개소리 동성애 소재를 웃어넘길 수 밖에 없었고 그 누구에게도, 아버지처럼 따랐던 코치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숨기고 살았던 그가 행복한 삶을 살았길.
베어타운은 단적으로 공동체와 사회의 이익에 반대되는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이기심에 대해 여과없이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대해왔던 결승전의 승리를 마야에게 빼앗긴듯 분노하며 피해자인 그녀를 오히려 짖밟고 뭉개버리려한다. 비록 베어타운의 일만은 아니다. 현실에서도 세상은 피해자에게는 가혹하고 가해자에게는 놀랄만큼 관대롭다. 베어타운은 몰락해가는 도시이고 그렇기 때문에 마을의 옛 영광을 되돌려놓을 하키팀에게 권리를 부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문제는 베어 타운의 사회 현실에 있다. 교실 안에서 교사를 말을 듣지 않고 놀려도 벌하나 받지 않는 허용적 분위기 속에서, 그리고 음습하게 깔려있는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시선 아래에서 아이들은 학습한다. 남자에게 허용되고 여자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오직 남자아이들만의 전유물로서의 하키, 그리고 같이 관계를 했어도 남자애는 내기의 승리자가 되고, 여자애는 '걸레'라고 칭해진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마야는 피해자였지만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마을의 네트워크에서 쳐내진 것이다. 다행이도 소설의 끝에서 베어타운은 여자 하키팀을 결성한다. 보다 나은 사회로 한발짝 내딛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이에 뒤쳐져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