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4 세트 - 전4권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이야기는 러시아의 한 귀족 사교계에서 시작한다. 드루베츠카야 공작부인은 자신의 외아들을 근위대에 넣기 위해 바실리 공작에게 애원하고 야회에 모인 사람들은 나폴레옹과 앙기앵 공의 처형에 대해 논하면서 그들의 작은 세계를 침투하는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안드레이와 피예르, 그리고 나타샤를 주축으로  셀 수 없는 인물들이 나오고 전쟁의 시대에서 각자의 선택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살아간다. 

 

 피예르와 안드레이는 여러모로 대칭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이는 소설의 첫부분인 안나 파블로브나의 연회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여제 시대때 고관으로 활동한 베주호프 백작의 아들로서 명문가의 혈통임에도 불구하고 다소 뚱뚱하고 묵직한 몸집의 피예르는 외적으로도 매력적이지 않으며 더욱이 백작의 서자, 즉 적자로 인정 받지 못하는 사생아라는 신분은 그의 사교계에서의 매력을 더욱 반감시킨다. 때문에 야회 주최자인 안나 파블로브나는 살롱의 가장 낮은 계급의 인사로 그를 맞이하고 그가 무례한 행동을 할까 두려워하며 감시한다. 반면에 안드레이는 이미 작위를 물려받은  젊은 공작으로서 자신이 만족하지 못할지언정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으며 동시에 그 자신의 외견도 훌륭하고 귀족적이다. 그는 야회에서 앙기앵공을 처형한 나폴레옹을 칭송하여 곤란을 겪고 있는 피예르를 두둔하고 옹호하며 논란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외모와 사교계의 영향력이 극과 극인 이 두 사람은 친구이며 시대의 영웅 '나폴레옹'을 동경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결국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전쟁터로 향한다.


" 이  드높고 끝없는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은 전혀 다르다. 왜 나는 전에 이 드높은 하늘을 보지 못했을끼? 그러나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그렇다! 모두 허무하다. 모두 거짓이다. 이 끝없는 하늘 외에는. 그러나 이 하늘마저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정적과 평안 외에는.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사령관의 부관으로서 전쟁에 참여한 안드레이는 오히려 전쟁속에서 활기를 되찾는다. 러시아 군에게 위험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그는 과거 툴롱에서의 나폴레옹처럼 오히려 그 자신이 그런 아군을 구출하는 사명을 받은 영웅을 꿈꾸나 전장의 실상과 마주하고 기대와 동떨어진 현실에 우울해한다. 그는 오랫동안 툴롱, 그가 영웅이 되어 얻을 승리에 대해 열망하고 고대했으나 결국 부상을 입고 전장의 한복판에서 쓰러진 채 오직 머리 위의 드높은 하늘을 보며 전쟁의 허무와 거짓에 대해 깨닫는다. 프랑스의 포로가 된 안드레이는 이전까지 그가 영웅으로 추앙했던 나폴레옹의 눈을 보며 위대함의 부질없음을 깨닫고 그의 마음을 온통 불태웠던 오만과 허영된 공명심을 내려놓고서 과거의 조용했던 생활과 평온한 가정의 행복을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하고싶지 않은 사람들이 결행한 무서운 살인을 본 순간부터 피예르의 마음 속에서는 모든 것을 지탱하고 살아 있다고 여겨지게 하던 용수철이 갑자기 빠져나가 모든 것이 무의미한 쓰레깃더미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 자신은 뚜렷이 의식하진 못했지만 세상의 개선에 대한 믿음도, 인간도, 자신의 영혼도, 신도 붕괴되어버렸다.


 군인으로 곧바로 전장으로 향한 안드레이와 달리 개인으로서 늦은 전장을 경험한다. 유언장의 개봉과 동시에 갑작스레 적자로 인정 받아 부친의 막대한 유산을 얻게된 피예르는 화제의 중심에 서게되고 귀족들은 예전의 얼굴을 바꾸어 그를 환영한다. 그 중에도 특히 바실리 백작은 그의 딸인 옐렌과 그를 결혼시켜 그에게 돈을 빌리려는 획책을 도모하고 피예르는 오로지 교묘한 상황과 옐렌의 미모에 이끌려 그녀와 결혼한다. 그러나 그의 끝없이 펼쳐질 것 같은 장미빛 미래는 아내의 부정한 소문에 잠시도 머무르지 않고 스쳐간다. 비탄과 증오에 잠식된 그는 격분하여 그 소문의 상대자인 돌로호프에게 결투를 청하고 피예르는 그를 쏘는 것에 성공하여 승리하지만 곧 후회한다. 그는 아내의 정부를 죽인 것에 괴로워하며 아내에 대한 미움과 그 자신의 기만에 대해 고뇌하다 그녀를 떠난다. 그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사랑과 미움, 삶과 죽음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던지며 프리메이슨의 형제단에 가담하나 곧 그에도 실망하고 보르디노 전장으로 향한다. 그는 실제 전장의 참혹함, 쏟아지는 총탄과 포화 속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고 그 모든 것들에 압도당한다. 지금까지 우상시해왔던 나폴레옹에 대해 분노를 느껴 그를 암살하려 마음 먹지만 결국 모스크바에서 방화범으로 체포되어 수용소에 포로로 수감되게 된다. 그 수용소에서 선량한 농민 플라톤 카라타예프와 만난 피예르는 러시아 민중의 힘을 느낀다.


 잎이 지고 떨어지듯 들뜬 젊은 열정은 전쟁의 포화 속에 으스러지고 오만했던 안드레이와 우둔했던 피예르는 그들이 영웅으로 숭배하던 나폴레옹과 전장에의 명예가 그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설은 이 두 사람을 통해 나폴레옹과 플라톤 카라파예프를 대비하면서 나폴레옹을 무조건적인 악으로서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영웅으로 추앙되고 전쟁의 승리자로서 명예를 얻을려는 행위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전쟁의 참혹성과 허무함을 설파한다. 

 

  두 사람이 전쟁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면 나타샤는 전쟁 속에서도 일그러지지 않는 평화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녀는 어린시절 보리스와의 풋사랑을 하기도하고 어느 순간 절대 결혼하지 않고 무용가가 될 것이라며 호언장담하기도 하는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주는 발랄하고 철없는 소녀이다. 천성적으로 활발한 그녀의 영혼은 안드레이와 아나톨, 그리고 다시 피예르와 사랑을 하면서 성숙하고 충만한 영혼으로 피어난다. 안드레이가 전쟁에서 돌아오는 순간 운명은 얄궂게도 그가 이전까지 쫒아왔던 허영된 전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그의 소중했던 가정을 되찾으려하자 그에게서 아내를 앗아간다. 그는 돌일킬수 없는 죄에 슬퍼하며 아무것도 없는 삶을 살아가려하나 곧 나타샤와 만나게되고 쾌활하고 생기있는 그녀를 통해 생의 희망을 느끼고 동시에 사랑에 빠진다. 나타샤 또한 여러 연회에서 그와 만나며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안드레이의 아버지가 시작하는 연인들에게 명한 일년간의 유예는 아직 무르고 순진하기 그지없는 나타샤로 하여금 동요하게 만든다. 초조한 마음은 감상적인 마음으로 이어지고 결국 그녀는 아나톨의 유혹에 흔들려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와 사랑의 도피를 하려다 실패한다. 잘못된 선택의 결과로 안드레이와 나타샤, 두 연인은 깨어진다. 이때까지의 나탸샤는 그저 미성숙한 영혼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부평초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이후 피난길에서 부상으로 죽어가는 안드레이를 외면하지 않고 용기있는 선택으로 그를 찾아간다. 그에게 간절한 용서를 빌면서 진심으로 간호하는 나타샤는 그전과는 다른 성숙한 영혼으로 변모하고 그녀는 사랑과 기도로서 안드레이를 마지막까지 배웅하고 안드레이는 그런 그녀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깨달으며 진실된 용서를 한다. 그리고 나타샤는 다시 만난 피예르와 함께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의 새로운 시작을 한다. 새롭고 좋은 것,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의 행복을 위하여 나타샤는 풍만한 생명력으로 아이들 낳고 화목한 가정을, 새로운 평화를 이룬다. 

 

 처절하고 비참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그곳을 살아가는 인간이 있다. 그리고 시대의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끝없이 선택을 한다. <전쟁과 평화>는 그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서사시이다.  백작부인이 그녀의 친구인 안나 미하일로브나에게 돈을 건네며 서로를 끌어안고 돈에 구애받는 현실에 그리고 서로의 지나간 청춘과 우정을 떠올리며 울고, 자신을 무시하고 차별했던 아버지로 벗어난 것에 기쁨과 동시에 자기혐오를 느끼던 마리야는 자신을 구출해준 니콜라이와 사랑에 빠지며, 죽어가는 안드레이와 재회한 나타샤는 용서와 화해 속에서 따뜻한 이별을 하고 피예르와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낳아 기른다. 이처럼 사람은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선택하고 지나간 선택에 울기도 하며 그 선택들의 갈림길 속에서 깨달음을 얻어 새로이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전쟁이 스쳐지나간 상처 위로 아픔을 딛고 또다시 평화를 이루어내며 살아간다.

 

 러시아 문학에는 다수의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그들의 다양한 삶의 지향점을 보여주는데 <전쟁과 평화>도 그 예이다. 첫장에서부터 시작되는 이름들의 나열에 책을 덮어 도망가거나 문장이 길어 지루하고 어렵다는 이유로 <전쟁과 평화>뿐만 아니라 러시아 문학 자체를 기피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러나 한장 한장 사람들의 물결에 따라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가여운 공포증은 부지불식간에 해결되고 책 속의 흐름에 빠져 그들의 '삶'을 읽어낼 수 있다. 고정된 인물이 아니라 살아숨쉬며 변화하고 약동하는 인물의 면면이다. 일명 나폴레옹 전투라 불려지는 1805년의 아우스터리츠 전투부터 1812년의 조국전쟁을 거쳐 1820년까지의 거의 15년에 걸친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매몰된 인간 개개인을 주목함으로서 역으로 당대 러시아와 시대의 고통,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의 의미를 담아내었다. 나는 그래서 오늘도 또다시 <전쟁과 평화>의 페이지를 넘기며  그들의 충만한 영혼의 기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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