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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고 싶다는 말 - 공허한 마음에 관한 관찰보고서
전새벽 지음 / 김영사 / 2022년 7월
평점 :
이 서평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로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증정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마지막 서포터즈 책을 둘러보다가 ‘공허한 마음에 대한 관찰보고서’라는 홍보 문구가 나의 눈을 사로잡았다.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던 나는, 이제 우울증과 어느 정도 친해져서 나름의 루틴을 만들었다.
책장 한 칸을 우울이 찾아왔을 때 읽을 책들로 가득 채워놓는 것이다. 그곳에는 시집부터 만화책, 우울과 관련한 에세이와 자기계발서도 꽂혀 있다. 이 우울칸에는 그냥 예쁘기만 한 책도 있고 팩트폭력만 적혀 있는 책이랑 고전도 있다.
그리고 문득 오늘 내 방의 책장을 둘러보다가 나는 나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나는 책장을 테마별로 정리해두는 스타일인데, 그 수많은 책장 중에서 내가 우울칸을 가장 좋아한다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그 칸에 가장 많았다. 과연 이 책도 우울칸에 꽂을 수 있을까? 한번 펼쳐 보았다.
60p 살아보니 인생은 꽤 괜찮은 것이더군요. 그러니 너무 염려말고 즐겁게 살길 바랍니다. 별 걱정 없이 좋은 하루하루를 보내길 바랍니다.
110p 불안의 시기에서 덜 불안한 시기로 접어들며, 나는 사랑하기 좋은 때가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사랑하기 좋은 때는 극심하게 외로울 때가 아니었다. 사랑하기 좋은 때는 혼자 있어도 좋은 때다. 혼자서도 평온한 상태일 때 타인과 조화를 누릴 수 있다. 불안하고 심히 외로운 상태라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타인을 그저 이용할 소지가 높다. 일방적인 이용은 결코 사랑의 지향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모든 깨달음은 너무 늦게 온다.
114p 외삼촌은 어떤 대목에서 페이지를 접어두었을까? 나는 호기심에 그가 접어둔 페이지들을 골라 읽기 시작했다. 작가도 장르도 달랐지만, 그가 접어둔 페이지들에는 공통된 내용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텅 빈 마음에 관한 문장들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외삼촌이 지난 몇 개월간 해온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는 혼자서 울 공간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작가의 일상 속 에피소드나 깨달음들이 짧게 엮여 있는 책이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부담 갖지 않고 가볍게 펼쳐 읽어볼 수 있는 책이고 자기 전 꼭 누군가와 통화를 나누는 것 같기도 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피카소 에피소드였다. 평생 자신을 통제하려고 했던 피카소의 아버지, 어린 피카소에게 비둘기를 직접 박제하라고 명령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계획대로 아들을 키우려했지만 피카소는 성인이 되자마자 아버지를 떠났고, 애정결핍 상태로 평생 안정적인 가정을 이루지 못했다. 심지어 자신의 이름마저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어머니의 성을 따라 ‘파블로 피카소’로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그때 피카소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
그리고 훗날 피카소는 자신의 딸의 이름을 ‘비둘기’라는 뜻의 ‘팔로마’라고 짓게 된다. 이 부분이 가장 좋았다.
인간에게 증오는 사랑과 같아서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오래 남는 감정인가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막상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이런 책을 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웃기기도 했다. 나라도 알고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