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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가 정말 좋다 - 파리에서 보낸 꿈 같은 일주일
박정은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6월
평점 :
세계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로 손꼽히는 파리.
많은 사람들의 선망을 받는 도시이지만, 이상하게 나한테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도시였다.
에펠탑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는 열망도, 센강에서 유람선을 타보고 싶다는 욕망도 딱히 없었지만,
3년 전 떠났던
유럽여행에서 5일 동안 파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명색이 '유럽'여행인데 파리를 빼뜨린다면 너무 허전할 것 같다는 시시한
이유로.
별다른 기대감 없이 머물렀던 파리는 큰 감흥 없는 여행지로 내 기억 한구석에 자리 잡게 되었다.
도대체 나는 왜 파리에서 어떠한 감동도 느끼지 못했을까.
이제는 정말 희미해져버린 과거의 여행을 되짚어보면, 그때의 나는 파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에펠탑, 노트르담 대성당, 샹젤리제 거리, 몽마르트르, 오르세 미술관 등
유명한 파리의
관광지를 둘러보아도 특별한 새로움과 놀라움은 없었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화려한 관광지들과 대조되는 낡은 지하철, 더러운 거리,
시간이 멈춘 듯 스산했던 골목들의 부조화가 주는 기이함이 오히려 가장 신선하게 느껴졌을 정도다.
그런데 파리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느껴지는 <나는 파리가 정말 좋다>를 읽으면서 내가 파리에서 놓친 것들이 참 많다는 것과
파리에 대한 내 기억이 많이 왜곡되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호텔 조식의 뜨끈하고 부드러웠던 크루아상, 로댕 미술관 정원에서 보냈던 평화로운
시간, 길을 헤매며 우왕좌왕하는 내게 친절을 베풀어준 파리지앵, 화려한 오페라 가르니에 앞에서 열정적으로 독주를 이어가던
바이올리니스트...
책을 읽는 동안 파리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감동과 즐거웠던 순간들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만약 다시 파리를 가게
된다면, 박정은 작가가 경험했던 것만큼 진한 파리의 매력을 느끼고 오리라는 열망도 생겼다!
박정은 작가의 파리 여행은 미얀마에서 우연히 만났던 프랑스인 친구 소피와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미얀마 여행 이후 1년 만에 다시
소피는 파리에 있는 자신의 집 카우치를 빌려주고,
그렇게 박정은 작가는 일주일 동안 파리에 머물며 여행을 하게 된다.
첫째 날은
파리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시테섬과 그 주변을 여행하고, 또 다른 날은 혁명기의 프랑스를 느낄 수 있는 명소를,
또 어떤 날은
몽마르트르 도보 여행을 떠나는가 하면, 여행의 마지막 날인 일요일엔 마레를 방문한다.
책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7일 구성으로 날마다 하루 동안 경험했던 파리의 여행기가 담겨있다.
본격적인 여행기에 앞서 맨 앞
페이지에는 파리 시내 지도에 그날 방문한 여행지가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다.
자신이 직접 보고 둘러본 곳에 대한 감상, 그곳에서 겪은
에피소드, 여행지와 얽힌 역사와 문화까지
편안한 문체로 풀어내고 있어 친절한 가이드와 함께 파리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점심을 먹을 때나, 지친 다리를 위해 휴식이 필요할 때
부담 없이 찾기 좋은 장소가 바로
공원이다.
우리나라는 운동을 하거나 나들이를 갈 때 공원을 찾곤 하지만, 유럽의 공원 문화는 좀 더 일상과 밀착되어 있는
느낌이다.
파리의 뤽상부르 공원에 가면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햇볕을 쬐고 있거나
하는 식으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유를 즐기는 파리지앵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순교자의 산'이라는 뜻을 가진 몽마르트르는 언덕 아래와 언덕 위의 분위기가 사뭇 상반되는 여행지다.
언덕 아래의 피갈역과 앙베르역
라인 근처는 유흥가로,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카바레인 '물랭루주'가 있는 곳이다.
반면에 언덕 위에서는 많은 화가들의 화폭에 등장했던 풍차
'물랭 드 라갈레트', 반 고흐가 테오에게 얹혀살던 집,
벽을 뚫는 남자 동상 등 예술적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가 있다.
사크레쾨르 성당은 파리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기 때문에 시내 모습을 한눈에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테르트르
광장의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오면 멋진 아르누보 스타일의 아베스역이 나오는데,
메트로 옆에 있는 작은 공원에 세계 각국의 언어로
'사랑해'라는 말이 적혀 있는 '사랑해 벽'이 있다.
화려한 붉은빛의 물랭루주 거리와 새하얀 사크레쾨르 성당, 몽마르트의 화가들과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테르트르 광장,
아베스역 근처의 사랑해 벽까지 몽마르트르는 과거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파리의 예술적 정취를 감상하기 좋은
여행지다.
파리를 로맨틱한 도시로 만들어주는 건 도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예술가들의 몫이 크다고 생각한다.
나도 파리 여행을 했을 때
메트로 환승통로에서 아주 멋진 피아노 연주와 바이올린 연주를 감상한 적이 있었다.
연주가들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했고, 이런 훌륭한 연주를
일상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파리 시민들이 부럽다는 생각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점이 파리의 메트로 연주자들은 오디션을 거쳐 자격증을 받은 '메트로 예술가'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메트로 안으로
불쑥 들어와 연주를 펼치는 예술가들도 있긴 하지만,
어쩐지 환승통로에서 마주친 연주자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다 싶었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이런 예술가들이 파리를 더욱 반짝반짝 빛내주는 것 같다.
<비포 선라이즈>는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여행지에서의 로맨스 환상을 심어준 영화가 아닐까 싶다.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 남자 제시와 프랑스 남자 셀린느가 함께 오스트리아 빈을 하루 동안 여행하는 이야기를 담은
<비포 선라이즈>가 개봉된 지
9년 후, 속편으로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비포 선셋>이 나왔다.
<비포 선셋>은 제시와 셀린느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장소인 파리의 작은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시작해,
서점
옆으로 이어진 생 미셸 골목길, 생 폴 생 루이 교회가 보이는 길, 함께 차를 마시는 르 퓌르 카페 등
소박하지만 매력적인 파리의 모습들을
담고 있다.
좋아하는 영화의 스폿들을 찾아다니는 것 또한 즐거운 여행 테마 중 하나.
영화 속 낭만적인 배경과 장소를 직접 감상할 수
있는 <비포 선셋> 지도가 책에 실려있으니
<비포 선셋>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지도를 따라 여행하는 것도 특별한
추억이 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천카페'라는 단어가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테라스가 딸려있는 카페는 우리나라에도 많지만,
파리의 카페들처럼
외부에 천막이 둘러져 있고, 그 아래로 사람들이 빼곡하게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광경은 흔치 않다.
카페는 프랑스 관광청에서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요리와 함께 프랑스의 3대 문화로 손꼽을 정도로 중요한 문화요소 중 하나다.
파리의 카페는 그저 차를 마시고 이야기하는
공간이라기 보다, 활발하게 토론하고 다양한 창작물을 꽃피운 장소이기 때문이다.
파리 6구 생 제르맹 데 프레 교회 근처에 있는 오래된 카페 '레 되 마고'와 '카페 드 플로르'는 19세기 말과 20세기에 프랑스의
지성과 예술가들을 위한 아지트였다.
두 카페는 당대의 유명한 문학가들과 예술가, 정치인들의 활발한 토론의 장이었고, 파리의 카페 문화가
탄생한 곳이었다.
파리의 유서 깊은 카페들은 관광객들로 북적이기 때문에 테라스에 자리 잡는 것이 쉽지가 않겠지만,
한 번쯤 테라스에
앉아 파리의 카페 문화를 직접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