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집에 머물다
박다비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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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집을 직접 짓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대부분 이미 만들어져 있는 집을 사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
바닥, 천장, 벽 등 시공이 끝난 집에 허용된 자유는 인테리어나 가구 배치 정도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살 집을 직접 설계하고 만드는 일은 꽤나 낭만적이고, 부럽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오래된 집을 고쳐 짓는 일은 어떨까?
완전히 허물고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집이 간직하고 있는 시간의 역사를 지키는 것.
그것은 낭만적이라기보다는 힘든 작업의 연속이고, 시간과 품이 굉장히 많이 든다.
온갖 수고로움과 고생을 겪어야 하겠지만, 세월의 흔적을 지켜낸 대가로
새 집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우라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
오래된 집을 고쳐 짓는 일의 매력이 아닐까.

 

 

 

 

 

 

왜인지 모르게 어려서부터 줄곧 제주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던 저자 박다비님.
스물다섯에 제주에 첫발을 디뎠고,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고 한다.
제주에 살고 싶다는 아내의 청을 따라 남편 J는 그들의 보금자리가 될 작고 오래된 집을 찾아냈다.

 

 

마당에는 무성하게 자란 풀이 있고,
100년 가까이 된 안채와 여러 개의 작은 건물이 함께 모여있는 낡은 집.
모두들 허물고 새로 건물을 올리라고 혀를 내두를 만큼 오래된 집이지만,
용감한 젊은 부부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이 오래된 집을 고쳐 짓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렇게 그들의 사서 고생이 시작되었다.

 

 

 

 

 

 

 

안채 공사에서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이 안채 지붕의 구조를 확인하기 위해 천장을 뜯어내는 일이었다.
천장에 붙은 벽지를 떼어내니 대들보와 서까래, 흙이 발라진 천장의 본 모습이 드러났다.
100년 가까운 세월을 버텨낸 나무들이라 과연 상태가 온전할까 하는 걱정이 무색할 만큼 견고한 상태였다.
오히려 얼마 되지 않은 나무보다 오래된 나무가 더 튼튼하다고 하니,
무작정 낡은 집을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일은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닌가 보다.

 


안채 벽을 떼어낼 때는 벽 속에서 작은 문이 나오기도 했다.
옛날에 작은방 문으로 사용하던 것인데 그 위를 벽으로 덮고 옆에 새 문을 내어 지내다가,
젊은 부부의 보수 공사로 숨어있던 문이 발견된 것이다.
100년 된 집이다 보니 구석구석에서 예기치 못한 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안채 한쪽 구석에 있던 반닫이장, 오래된 장식장에서 나온 꽃무늬 그릇, 나무 문살과 창호지로 만들어진 미닫이문 등
시간의 흔적으로 낡고 바랜 옛것들이지만, 새 물건에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귀중함이 깃들어있다.
누군가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기에 더욱 가치 있고 소중하다.

 

 

 

 

 

 

 

 

 

젊은 부부가 집을 고쳐짓는 과정은 말 그대로 '개고생'의 연속이었다.
글만으로도 그 고생과 힘듦이 온전히 느껴질 정도였으니...
천장을 보수하고, 보일러를 깔고, 벽돌을 쌓고, 벽체를 세우고, 창문을 내고, 타일도 붙이고,
벽지도 칠하고, 잔디도 깔고, 야외 세면대도 만들고, 변기도 설치하고,
심지어 싱크대, 조명, 침대까지 제작한다!

 


이쯤 되면 집짓기 '능력자' 부부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닐지.
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서툴더라도 자신들의 힘으로 하나하나 만들어간다는 게 참 대단했다.
특히 카페 공간으로 꾸민 창고 천장으로 삐져나온 넝쿨을 없애지 않고,
그대로 볼 수 있도록 아크릴 판으로 투명 천장을 만든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투명한 창 너머로 보이는 초록색 넝쿨은 천장의 독특한 포인트가 되었다.
비록 공사가 진행되면서 초록색 잎들이 시들었지만, 그 안에 조화와 탁구공으로 만든 조명을 채워놓으니
또 다른 매력의 개성 있고 운치 있는 카페 천장이 완성되었다.
이렇게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을 하나씩 실현하고, 힘겨운 공사의 대장정을 거쳐 완성된 집에서
부부는 신혼생활과 숙박업을 시작했다.

 

 

 

 

 

 

집이 완성된 이후로도 부부의 집 가꾸기는 끝나지 않는다.
흙화덕 만들기 워크숍을 기획해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맨발로 흙을 밟아 반죽하고,
둥글게 모양을 잡아주고, 불을 조금씩 때워 화덕을 말리고, 방수 코팅을 한 뒤 그림까지 그려 넣고 나니
작은 텃밭과 잘 어울리는 아기자기한 화덕이 완성되었다.

 


화덕피자 파티도 열고, 앞마당 텃밭에서 각종 채소도 심고, 옆집 할망들의 사랑도 듬뿍 받고,
부부는 자신들의 집을 찾는 손님들에게 따듯한 보금자리를 제공하며
낡고 오래된 집을 보금자리 삼아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공사를 마치고 고쳐진 집을 배경으로 웨딩사진을 다시 찍은 부부.
부부는 공사 전 허름한 모습의 오래된 집 앞에서 찍었던 흑백사진을 찍었을 때 입었던
웨딩드레스와 정장을 다시 입고, 함께 고쳐지은 단장된 집에서 다시 한 번 웨딩사진을 찍었다.
두 사진 모두 그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겠지만,
따뜻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거실에서 함께 찍은 부부의 사진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두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면서 부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제삼자인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부부의 대장정을 눈으로 함께 좇다 보니
그들의 용기 있는 선택과 소신 있는 삶을 마구 응원해주고픈 마음이 샘솟았다.

 

 

 

 

 

 

 

마지막 3장에는 여행 사진과 짤막한 글이 담긴 다비님의 여행일기가 실려있다.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아기자기한 문체를 갖고 있다.
일면식도 없지만, 글만으로도 참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구나 하는 게 느껴진다.
바다와 산이 만나는 송악산 둘레길 풍경을 보니 문득 제주로 떠나고 싶다.
자연 속에서 가장 안전하고, 자유롭다고 느낀다는 그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삶을 꾸려나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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