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
플로리안 아이그너 지음, 서유리 옮김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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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가 서른일곱 개의 숫자가 적힌 룰렛 휠을 돌린다.
룰렛 공은 그 안에서 힘차게 돌다가 결국 어떤 숫자 칸에 떨어져 멈춘다.
룰렛 휠 주변에 모여서 잔뜩 긴장하며 지켜보던 사람들은 이제 환호성을 지르거나 입술을 꽉 깨물고 화를 억눌러야 할 차례다.
그렇지만 카지노 입장에서는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없다.
장기적으로 보면 항상 카지노가 이기기 때문이다.
-p204

나의 친구 중에 카지노 딜러 일을 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녀가 했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다.
카지노에서 절대 딜러를 이길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카지노에서의 게임은커녕 트럼프 카드게임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나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어차피 카드 게임과 도박은 우연에 밑바탕을 둔 놀이이기 때문에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50대 50의 게임이 아닌가?


하지만 왜 그렇게도 카지노 도박장 앞에서는 돈을 다 읽은 노숙자들과 도박 중독자들이 삶을 탕진한 채로 거지 같은 몰골을 하고 잃은 돈을 따기 위해 다시 카지노를 발길을 돌리는 것인지 보통의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 책에서는 그 해답을 살짝 알려주었다.

우리는 인위적인 우연을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룰렛 테이블을 이용하는 것인데 룰렛공의 움직임을 측정하여 돌고 있는 룰렛 휠의 어떤 지점에서 공이 멈출지 계산하면 대략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970년 말에 캘리포니아의 물리학 전공 팀이 이를 분석했다고 한다. 결국 공의 궤도를 예측하는 전자기기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한 사람이 룰렛 휠 의 회전과 공의 궤도를 관찰하여 다른 사람의 셔츠 아래에 차고 있는 전동 기계에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도박도 룰렛 휠에 돌아가는 공의 포물선이 그려내는 모양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예측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등장하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다녔던 단어는 엔트로피였다.

고등학교 물리학 시간에 공부했던 에너지 용어인데 다시 한번 개념을 찾아보니, 엔트로피는 1865년 독일의 이론 물리학자 클라우지우스 (Rudolf Clausius)에 의해 이 용어가 제안되었고 "한 시스템에서 무질서 양의 척도이며 고립계에서 엔트로피는 항상 증가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열역학 제2법칙이다. 이는 바로 시간의 방향을 결정한다.

 

 



'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에서 첫 챕터로 시간의 가장 큰 특징이 나온다. 

시간은 앞으로만 가는 일정한 방향성과 반복성을 가지고 있다. 꼭 나선형 구조의 용수철 같은 모양을 생각하면 맞는데 바로 이 같은 모양이 엔트로피의 특징이다.

 

 

 

 

 

빨간 잉크가 물에 떨어지면 색이 퍼지면서 줄무늬가 생기다가 균일하게 붉은빛으로 물드는 것, 뜨거운 커피잔이 탁상에서 떨어지면서 깨지고 흘린 커피가 양탄자에 스며들면서 차갑게 변하는 것을 상상해보라. 그것들은 다시 빨간 잉크, 따뜻한 커피잔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것

이 바로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절대 거꾸로 되돌아가지 않는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엔트로피'보다는 나에게 더욱 기억하기 쉬운 것은 심심한 고양이의 설명이었다.
같이 살고 있으면서 먹이가 든 캔을 두 손을 열어주는 주인은 평소와 달리 집에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늦게서야 들어와서 고양이는 화를 내면서 야옹거렸지만 주인이 주는 큰 닭고기 조각을 받고는 금방 화가 풀린 듯 가르릉 거렸다. 주인이 늦게 집으로 돌아온 것은 고양이에게는 완전히 우연한 사건으로 고양이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다. 하지만 주인의 입장에서는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일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우연으로 받아들이는 사건들은 우리에게 제공된 정보의 종류와 양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연이라고 여기는 로또의 당첨번호, 그리고 동전의 앞과 뒤의 결과, 일기 예보를 뒤엎는 마른하늘의 우박, 우연히 먹은 약이 효과가 생겨서 병이 낫게 되는 경우 등의 사실은 우연이 아니라 정보를 조금만 더 알 수만 있다면 그것은 계획된 것, 또는 계획할 수도 있는 일인 경우가 될 수 있다는 말인 것이다.
 
물리는 항상 어렵다고 고등학생 때부터 생각했던 참이라 양자 물리학이란 단어는 계속해서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렵게 다가왔다. '엔트로피' 역시 내 머리 위에서 물음표와 함께 아리송 아리송하게 떠다녔다.  물리 학자인 저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쉬운 설명이었겠지만...

 이러한 나 같은 독자들이 양자 물리학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양자 치료를 한다며 자칭 기적의 치료사들이 자신의 고객들에게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질병을 낫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허튼소리를 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수작은 방금 위에서 말한 슈뢰딩거의 고양이에게 잡아먹힌 금붕어가 장대높이뛰기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딴 것만큼이나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며 설명할 때 나는 쿡쿡대면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저 저번 달에 읽은 책이 그런 비슷한 내용이었기에...

워낙에 물리학의 양자역학에 대한 부분이 많이 나와서 집중력이 저하되는 부분이 간혹 있어서 이 책은 한번 더 보면서 이해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한 가지 재미있게 기억나는 부분은 있다.
로또 당첨번호가 랜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고 나 역시 그래 왔다.
그리고 확률적으로도 다양한 숫자가 나와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로또 당첨번호를 분석해 보면 당첨번호들은 계속 당첨될 확률이 높았고 당첨되지 않는 번호들은 그렇지 않아서 두 숫자들 간의 편차가 날이 갈수록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재미있지 않는가? 이것도 우연일까?

 이러한 랜덤하게 뽑히는 숫자들에도 어떠한 물리적인 원칙이 숨어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삶에 알 수 없는 정보들이 숨겨진 우연이라고 느껴지는 일들이 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내가 공들여서 함에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있다. 누구나 근면, 성실, 노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성공의 가능성을  높여주겠지만 분명 이 세상에는 게으르고 멍청하고 사회성이 낮은 사람들이 더 승진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러한 우연은 어디에서나 불공평하게도 언제든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연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그것이 우리의 삶을 언제든지 새로운 방향으로 휘몰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어떠한 잘못된 일이 생겼을 때 모든 것이 반드시 우리 탓은 아니라는 자책을 조금은 덜 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우리가 다 해낼 수 있다는 자만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므로 조금 더 숙연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이 책을 마감할 수 있게 된다.

우연은 신의 영역이 아닐까 하는 마음도 함께 든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하겠지


"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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