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기가 우리한테 해 준 게 뭔데? - 절박하고도 유쾌한 생물 다양성 보고서
프라우케 피셔.힐케 오버한스베르크 지음, 추미란 옮김 / 북트리거 / 2022년 8월
평점 :
날씨는 가을이 다 되어가는데 불쑥 불청객이 찾아왔다. 어디서 날아들어온 건지 위잉 위잉 아주 정신이 사납게 굴더니 결국 부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의 팔을 잔뜩 물어뜯고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아잇, 이놈의 모기! 엄마의 짜증서린 외침에 파리채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내 다리 옆에는 하필 딱 이 책이 있었다.
잠든 엄마를 등 뒤에 두고 스탠드 조명을 켜둔 채 읽기 시작한 책은 순식간에 밤을 새워 새벽까지 다 읽어버렸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런 책이다. 도발적인 제목으로 "허, 모기 네까짓 게 어디 뭐가 잘났다고?" 라는 마음을 먹고 책을 펼치게 만든 다음 '생물 다양성' 팬클럽에 가입하게 만드는 그런 책.
사람들은 흔히 모기는 없어져도 되는 생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일까? 모기과의 좀모기가 없으면 현대인에게 절대 없어서는 안 될 필수식품의 원재료인 '카카오'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꽃의 입구가 좁아 오직 좀모기만이 수분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생태계 최하위에 위치한 모기를 충분한 먹이로 섭취하지 못하면 다양한 벌레와 조류종은 살아가는데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고 있는 인간계에까지 당연히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반대로 물어보자. 생태계 최상위에 있는 인간은 최하위에 있는 모기가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움직이는 동안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다양한 연맹과 환경운동가들은 지금도 열심히 생물 다양성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환경을 파괴하는 속도와 비율에 비례하면 아주 미비할 뿐이다.
산호초는 지구 전체 바다의 0.1%에 불과한 좁은 지역에서 해양 생물의 4분의 1에게 집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백화현상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인간종에 따른 멸종과 위협을 겪고 있는 수많은 생물종의 예시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인간이 인간 외의 생물에게만 영향을 끼치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인간의 멸종위협은 마찬가지로 포유류인 인간 역시 포함한다.
기후재난으로 인해 집을 잃은 피해민만 2017년에 1800만명에 달했고, 기후위기가 계속되는 한 늘면 늘었지 결코 줄지 않을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폭우로 인한 수재민이 대량 발생하였는데 거리가 포장되지 않고 적당한 토지와 나무가 거리에 심겨져 있었다면 땅과 나무의 뿌리는 최선을 다해 빗물을 받아들여 하수도의 물이 넘치는 최악의 상태를 막아줬을지 모른다.
물론, 이 책은 생물 다양성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제성'을 내세운다. 인간은 다양한 생물종에게서 도움을 얻는다. 연잎을 통해 방수의 방법을 알아내고, 펭귄을 모티브로 갈고리를 만드는 등의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어떤 생물종에게서는 진통제를, 에이즈와 암의 치료제를, 비-노화의 원인을, 불필요한 미세조직을 걸러내는 기술 등을 배우고 연구한다. 인간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다양한 생물종을 통해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만약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그 모든 무궁한 자연의 지혜를 잃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훼손한 생물 다양성을 인간이 다시 복원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소요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미 우리는 그만한 짐을 지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엄마와 친구와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부자 나라의 편의를 위해 고통받는 가난한 나라에 대해, 세계적 이슈인 기후위기와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와 그 책임에 대해, 소수의 자연유지 국가 (열대 우림 등을 포함한 국가)에 세계인으로서 갖게 되는 시각 등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 권의 좋은 책은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바로 이 책 <모기가 우리한테 해 준 게 뭔데?>가 그런 책이라고 감히 말한다. 책을 완독한 후 바로 지인들에게 모두 추천했을 정도로 모두가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환경에 관심은 있지만 깊이 있는 접근은 어려운 초심자에게도, 다양한 정보를 정확한 예시를 통해 최신 정보로 접하고 싶은 비초심자에게도 모두 추천한다. 더불어 독일인인 저자들이 곳곳에서 언급하는 독일의 현황이 참 부러웠던 한국인으로서 DMZ를 품고 있는 현 한국의 상황에서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보게 만들어주었다.
치열하고 아름답게 지구를 살리는 생물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연대자로서의 인간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나는 인간이 마지막으로 멸종시키는 최후의 포유류가 인간이 아니길 바란다. 인간이 사라지면 많은 것들이 해결될 것 같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인간이라는 포유류이기에, 우리의 삶 역시 포기하지 말고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