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그리고 좀비 - 제1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백상준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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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황금가지' 출판사를 좋아한다. 장르문학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꾸준히 새로운 작품들을 내주고 또 신인들을 발굴하기 위해 힘쓴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데, 편집자의 인터뷰를 봤더니 사심을 채우기 위해 회사를 다녔던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는 걸 보고 "아, 이 분은 정말 진심으로 장르문학을 좋아하시는구나"는 생각을 했다.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색다른 공모전을 종종 하는데 이건 ZA(Zombie Apocalypse) 문학 공모전 1회 수상작들을 엮은 소설집이다. 현재 5회까지 진행되었고, 소설집은 1회, 2회, 3-4회(공통)으로 총 3권이 출간되었다.


  원래 세계대전Z(맥스 브룩스)를 읽어보려 했으나 한국에서 진행되는 좀비 이야기가 더 보고 싶어서 선택했다.




섬 - 백상준

대상 수상작이다. 갑자기 좀비가 창궐한 시대에서 아파트에 숨어 버티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좀비의 가죽을 벗겨 몸에 붙이고 좀비의 걸음걸이를 흉내내는 등 좀비인 척 하며 식량을 구해오곤 한다. 특징이라면 종말이 다가오는 세계임에도 담담하고 유쾌한 문체를 꼽을 수 있겠다. 모두가 좀비가 되어버리고, 생존자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주인공은 "소녀시대도 모두 좀비가 되어버렸을까?"라는 황당한 생각을 하기를 서슴치 않는다. 부족해지는 식량에 좀비보다 인간을 경계하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도 생각할 만한 거리를 던져주는 것 같다.


어둠의 맛 - 펭귄

갑자기 좀비가 되어버린 사람들, 그들로 인해 세상은 종말을 맞기는 커녕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흡사 외국인노동자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하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반전도 벌어진다.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가는 세상임에도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들과 쓰레기 처리하듯 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종말보다는 좀비라는 거대한 바이러스로도 변화할 수 없는 사회가 더 두드러진다.


잿빛 도시를 걷다 - 황희

여자가 주인공인데 여성적 감성을 표현하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섬과는 대비되는 태도다. 좀비로 변해버린 엄마가 이웃집 여자를 물어 뜯어 먹는 걸 봤는데도 집으로 들여보낸 다음 냉장고에 집어 넣고 잠근다. 근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매우 위험한데. 목숨 걸고 딸을 위해 거리로 나서지만 결국은 거리에서 죽게되는데 그럼에도 결말이 비극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인류를 구원해줄 희망의 인물들이 나타나기 때문인 것 같다.


도도 사피엔스 - 안치우

도도새에서 제목을 따온 이 작품은 말 그대로 인류 종말에 대해서 다루는데, 좀비 그 자체에 대해서 다룬다기보다는 좀비 바이러스, 그리고 그 백신을 개발하는 사람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좀비에 대항할 생물 혹은 백신을 발견했다고 생각하지만 어긋나버리고 만다. 특이하게 작품이 전개되는 과정에서는 계속 희망의 끈을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그 끈들은 모두 끊어져버리고 만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희망-절망의 반복되는 전개로 인해 결말에서 절망을 느낄지라도 또다른 희망의 곡선이 올라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 끝 어느 고군분투의 기록 - 박해로 (심사위원 추천작)

심사위원 추천작이라고 하는데 중편 소설의 분량이다. 교도소를 지키는 사람이었던 남자 주인공이 교도소가 유일하게 지켜주는 사람으로 변해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 작품의 뼈대다. 교도소라는 배경은 신선하게 느껴졌던 것 같은데 그 안에서의 상황이나 인물에 있어서 개연성이 부족해보였다. 그러니까 대표적으로 난 인물이 도대체 왜 '문어체'를 굳이 그런 식으로 사용하게 된 건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사람이 없고 대화를 하지 못하므로 '구어'가 퇴화되고 남은 것이라곤 도서들 뿐이므로 '문어'가 발달하게 되었다는 건가? 근데 그런 식의 설명이 없을 뿐더러 굳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주 오래된 책이 아닌 다음에야 소설이나 희곡집 같은 작품들은 사람의 대사는 '구어체'로 표기한다. 인물의 독백 부분을 보건데 문학 작품의 톤인데, 불편하게 느껴졌다.


총평

좀비를 막 좋아하지 않아서 워킹데드 같은 드라마도 챙겨 보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장르문학에 관심이 있고, 한국에서도 좀비를 다룬다는 게 호기심이 들기도 해서 읽었다. 좀 더 창의적인 작품을 발굴하는 데 힘을 써도 좋을 것 같다. 이게 단편과 중편을 묶은 소설집인데 어쨌든 주제가 '좀비 아포칼립스'라는 동일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보니 똑같은 이야기가 연달아 나오는 게 점점 흥미도 떨어지고 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비슷한 주제라도 각 하나하나의 개성이 느껴지고 힘과 활력과 재미가 느껴지는 작품들을 엮는다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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