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왜 싸우는가? - 김영미 국제분쟁 전문 PD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전쟁과 평화 연대기
김영미 지음 / 김영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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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분쟁에 대한 전반들은 교양수업을 듣게 되면서 알게 되었다. 그 과목 이름이 국제정세의 이해, 였는데 세계사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주요 국제이슈, 분쟁을 다룬 수업이었다. 거기서 난 (세계경찰국가라는) 미국과 온갖 군데로 얽히고 섥힌 다양한 분쟁국가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반백년이 지나도 여전히 휴전중인 전시국가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전시상태에 대한 위기감 따위라곤 없었던 평범한 한국 국민으로서 끝없는 폭력에 노출된 상태란 아주 먼 나라, 다른 세계 같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잠깐이나마 정외과 복전을 했었고, 유엔평화유지군이 어느 나라들에 파견되고 있는지, 패권국가 미국이 어디까지 손을 벌리고 있는지, 얕게나마 알게 되었지만 그 뿐이다. 눈앞에 닥쳐온 광화문 시위와 계엄령 선포 위기라는 국내정세만으로도 불안해한다.

우리나라가 여타 지정학적 문제로 인해 (적어도 현재는) 폭력을 휘두르는 나라가 아니라 다행이었고, 그런 나라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우리들 대다수가 그런 표면적인 사실에 안심하며 외면하며 살고 있을 거다.

폭력과 비폭력 사이, 그 차이가 종이 한장 뒤집는 것 마냥 쉬운 일이라는 걸 몰랐다. 국내외 정치상황이든, 종교적 신념에 의한 '자발적'인 행동이든, 아니면 단순히 먹고 살기에 급급해서 저지른 행동이든, 그 이유가 뭐든 간에 우리는 아주 사소한 계기로 비폭력으로부터 추방당할 수 있다. 반대로 비폭력으로 회귀하는 일은 너무나 더디고 힘들어 보인다.

저자 김영미씨는 어떤 이집트 학생과의 대화로 아주 간단하게 민주주의를 정의해냈다.

"아줌마,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예요?"

"너는 어떤 나라가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니?"

"사람을 총으로 죽이는 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고 그렇지 않은 나라는 민주주의잖아요."

"아줌마 나라는 더 이상 총으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단다."

"아...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군요. 부러워요."

2011년, 아랍의 봄,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물론 그게 민주주의의 올바른 정의는 아니라고 인정했다. 그렇지만 아주 간단하게 사람을 죽이고 생명을 우롱할 수 있는 총과 칼이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미국같은 아주 대표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물론 총기허용국이지만)/ 대부분의 자유와 평등과 기타등등의 이상들을 추구해야할 가치로 삼는 나라들은 적어도 사람을 총 쏴 죽이는 일이 공공연하지 않다.

전쟁, 내란, 약탈, 납치, 온갖 살육의 현장에서 살아남고자 총을 든 사람들을 나무랄 수는 없겠지만 그래서야 반복되는 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도 없을 거다.

저자는 이 '희망마저 그을린 비극의 현장'을 몸소 방문해 취재하고, 인터뷰하고, 그것을 전세계와 한국에 알리기 위해 고난을 무릅쓰고 보도한다.

<세계는 왜 싸우는가>는 국제분쟁전문PD가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의 참상, 기원, 현황을 상당히 쉬운 눈높이에서 짚어준다.

애초에 서문에 적힌 것처럼, 이 책은 세계사 교과서가 될 수 있고, 세계각국의 아이들과의 대화거리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의 청소년(대학생)들은 그동안 수능 공부하느라 바빴기에 '그런 것'은 잘 모른다고 웃으며 말했다." 유럽 어느 게스트 하우스에서 듀랜드 라인 토론에 한마디도 거들지 못한 한국인 학생들에게 저자는 왜 토론에 참여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 대답이다.

수능공부에만 목맨 한국청년들에 대한 저자의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난 유럽여행씩이나 가서 멋진 관광지, 맛있는 음식에 더 관심이 가고, 남의 나라사정에 별 관심없는 그 청년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긴 했지만 .... 어쨌든 그 남의 나라에 관심없는 태도가 문제였겠지.

나 먹고 살기도 바쁜데 왜 상관도 없는 남의 나라를 둘러싸고 왈가왈부해야하느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세계는 왜 싸우는가>를 꼼꼼히 정독하길 바란다. 손석희대표의 추천사 말마따나 "김영미PD는 '왜 싸우는가'에 대한 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그 답은 그녀가 발로 뛰고 몸으로 구른 취재현장에 녹아들어 있다.

전쟁의 시대가 계속될 필요는 없잖은가?

우리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엔 소년병이 총을 쥐지 않아도 될 나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다고 그런 사실들을 죄다 묻어둔 채 사상적, 정치적으로만 갑론을박하는게 나을까?

아니다. 미래를 위해선 분쟁의 참상과 진실을 알고서 그런 짓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사는 것보다 중요한게 뭐란 말인가?

"레바논이 전쟁 중이라 해도 사람은 살아야지요. 나는 이스라엘이고 팔레스타인이고 따지고 싶지 않군요. 사람이 살아야 싸우기도 하는 것 아닙니까."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라는 것을 실천하는 그를 보며 아마도 레바논 전쟁의 해답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단다.

레바논내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의사 마하르

이 책은 치열하게 벌어지는 중동이슬람국가들과 미군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문제, 인도와 파키스탄 문제, 아프리카의 끝없는 내전상태, 이런 상황들을 전혀 몰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쓰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저자가 쓴 말투가 구어체인데다가 역사적 상황, 종교개념 등도 친절하게 하나하나 알려준다. 국제 뉴스에 관심을 가지고 보던 사람이라면 복습하는 기분으로 볼 수 있고, 그런 배경지식 없이 처음으로 읽기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가볍게 흥미있는 부분만 봐도 된다.

어차피 경험 위주의 취재담이라서 대부분 생동감 넘치는 묘사들이다. 경험들이 슬프고, 충격적이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

미군이 사건현장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17세 아프가니스탄 청년을 사살하는 일이 벌어졌지. 미군은 청년이 탈레반이라고 했지만, 청년의 가족은 우연히 구경하러 갔을 뿐이라고 항변했어.

진실이야 어쨌든, 청년의 장례식 날에 너무도 슬프게 우는 그의 동생을 보고 나는 마음이 아팠단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 슬피울던 열다섯 살 소년은 ... 형의 복수를 위해 미군을 죽이러 탈레반이 되었다는 거야.

이렇게 전쟁에서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동료가 희생되자 사건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복수의 굴레는 끝이 나기는 날까? 선제공격을 한 이가 누구이든 복수는 복수를 낳고, 또 다른 복수를 낳고 ... 끝이 보이지 않는 증오로 일평생을 보내는 사람들이 치유될 수 있을까? 가족을 잃은 탈레반이든, PTSD로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지 못하는 미군이든, 상처만 남는다.

나는 (이스라엘 아이인) 벤저민에게 "팔레스타인 아이들도 너랑 똑같은 아이인데, 그 아이들이 다치면 아프지 않겠니?"하고 말했더니, 벤저민이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라 괜찮아요."라고 대답해서 충격을 받았단다.

가족의 가족으로 대물림되는 복수. 아이들은 사랑과 평화와 공존과 그런 것을 배우기 이전에 상대에 대한 증오부터 배운다. 자신의 꿈과 진로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것보다 중요한 복수가 있다고 믿는다. 이런 세대들에 미래가 있을까?

이날 시위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의 공존을 원한다는 피켓이 있었단다.

사람들은"대다수 유대인, 아랍사회는 이에 동의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라고 소리쳤어.

이날 유대인 성직자들도 시위에 참가했는데 "유대인은 복수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언어가 아니다"라며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설교했어.

이렇게 평범한 시민은 팔레스타인이건 이스라엘이건 평화와 공존을 원한단다.

이스라엘인 아이가 죽자, 팔레스타인에서 어머니들이 위로를 위해 장례식에 참석하고, 반대로 팔레스타인인 아이가 (보복성으로) 죽게 되자, 이스라엘에서 어머니들이 위로를 위해 장례식에 나타났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위로하는 일에는 국경도, 전쟁도 아무 필요 없었어."

그래 맞다. 피의 복수는 서로의 파멸 밖에는 남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들은 정치문제나 국경문제나 그런 것보다도 가족들이 죽지 않고 잘 먹고 잘 살길 바란다. 이념과 사상과 내 나라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일단 사람이 살아야할 것 아닌가? 분쟁의 씨앗이 되는 것들은 제 몫이 좀 더 크길 바라는 욕심들이다. 천연자원이 많고, 광물이 많고, 석유가 많고, 그것들이 분쟁의 씨앗이라면 그걸 차지하려고 아귀다툼하는 욕심의 주체들이야말로 분쟁의 근원이다.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가 모두 고갈되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내 아들은 나 같은 소년병이 되지도 않을 거고요. 우리는 이 세상 다이아몬드가 다 없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년병 출신의 코바

이렇게 국가 원수 한사람의 욕심이 전쟁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그치만 정말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내란, 약탈, 납치를 일삼을 수도 있다.

"이 나라(소말리아) 사람들은 배가 고파서 미친 것뿐이야. 앉아서 굶어 죽거나, 아님 해적질이라도 해서 입에 무언가 넣고 목숨을 부지하거나 둘 중 하나지."

모가디슈에서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는 아하마드의 말

소말리아는 여러모로 충격적인 나라다. 기아 인구가 어마어마하고, 그래서 국제구호물품도 훔쳐가기 일쑤다. 식량을 뺏기 위해 국제연합도 공격하는 바람에 국제사회의 원조도 끊겼다.

저자는 중동-아프가니스탄이 중세 시대같았다면, 소말리아는 석기 시대 같았다고 했다. 30년 가까이 학교의 기능이 정지되어 해적질이 뭐가 나쁜지 모르고, 죽지 못한 사람들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라 했다.

종교, 사상, 이념, 국가, 국경, 자원. 고차원적인 욕심대상들이 없더라도 사람들이 사는 땅은 언제든지 총과 폭탄으로 유린될 수 있고, 짓밟힐 수 있다. 그냥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런거다. 근본적으론 정치가 문제겠지만 결국 국제사회로부터도 고립되고 국민 대다수가 기아상태 또는 사지 하나 둘씩 사라진 상태가 되어버렸다.

전쟁은 정말 싫다. 폭력에 휘둘리는 것도, 죽음의 공포에 떠는 것도, 주입된 사상에 목숨 바치는 것도 싫다.

그런데 전쟁이란게 "언제 어디로 불똥이 튈지 모"른다는 것도 끔찍하다.

<세계는 왜 싸우는가>는 왜 싸우게 되었는지 원인결과를 밝혀주면서, 동시에 와, 이 따위 것 때문에 여즉 싸우는 건가? 싶게 만든다. 특히 레바논이라던가, 체첸의 경우가 그랬다.

"지금 나는 안전한 나라에 사니가 나하고 상관없다고 언제까지 장담하지는 못해. 지금 시리아 전쟁은 그 불똥이 유럽으로까지 튀고 있어."

나는 요즘 전쟁의 시대가 지척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보다 긴 집권을 목적으로 전쟁 도발도 일삼는 큰 나라들이 주변에 산재해 있는 한반도 땅에서 태어났기 때문일까? 언제라도 집권자들이 들고 일어나 전쟁을 발의해버릴 것만 같다.

전쟁은, 그리고 그 여파는 나하고 상관없다고 장담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정말로 나와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그래도 우리는 세계가 왜 싸우는지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같은 지구에 살면서 슬픈 비극이 자꾸 되풀이되지 않게 해야 하잖아. 이제 또 다른 괴물이 안 나오게 우리가 다른 세상 소식에 관심을 좀 더 가져보자.

앗, 덧붙여 김영미 저 <세계는 왜 싸우는가>를 소개해보겠다.

이 책은 일단 취재담, 인터뷰내용 등을 각각의 파트에 살렸기 때문에 정말 생동감 넘친다.(그래 실은 재미보다는 슬프고, 감동적이고, 충격적이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이 책을 읽다보면 미국이 이 모든 원흉같이 느껴진다. 석유 욕심 많고, 천연자원 욕심 많고, 지정학적 이점에도 관심많고, 최대한 많은 우방국도 가지고 싶고, 사상적인(종교적인) 우월감도 모두모두 다 가지고 싶은 욕심많은 미국.......

솔직히 이렇게 느껴지긴 하지만 일단 뭐, 미국은 (아직) 원탑인 패권국가고(군사력이든 경제력이든 문화면에서든), 세계경찰국가로 자부하고 있잖은가?(트럼프는 몰라도)

미국이 서방세계수호자,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수호자로서 국제사회에 성과를 보여야한다는 그 체면은 알겠다. 그치만 가끔은 오지라퍼같은 생각이 든다.

세계 평화!라는 이상은 우리세대에 찾아올 수 있을까?

우리 세대는 몰라도 다음 세대엔 어린애들이 총칼을 들지 안항도 되는 세상이 될 수 있을까?

자세한 건 몰라도 나는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람이 살고 봐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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