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텔 을유세계문학전집 18
프리드리히 폰 실러 지음, 이재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쉴러가 간디를 만난다면

빌헬름 텔

프리드리히 폰 쉴러/이재영 옮김

을유세계문학전집

 

 

“프랑스 혁명은 혁명인가 쿠데타인가?” 고등학교 1학년 사회 첫 시간, 우리반은 사회 선생님으로부터 그 질문을 받았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들었던 손이 나의 운명을 바꿔놓으리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혁명과 쿠데타의 길에서 서로 다른 의견의 학생 하나씩 선출되어 토론이라는 걸 했다. ‘자신의 주장을 상대에게 설득하는 법’을 해본 것이다. 흥분하고 엉망진창의 우기기로 시작된 일 년의 생활. 나는 매번 타깃이 되어 수없이 많은 주제 속에서 발표와 토론을 했다. 말싸움의 대한 중요성이 무엇보다 공격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수 없이 깨져가며 터득했다. 그 전까지 수업 시간에 조용했던 나였는데 그 이후로는 누구에게도 지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빈 토플러의 『제 3의 물결』이니 『권력 이동』이니 따위의 이해도 하기 어려운 인문․사회 서적을 읽었다. 말 그대로 읽는데 그친 것이다. 당시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었으니까. 어쨌든 난 대학생활 내내도 기고만장하게 살았다.

운명을 바꾼 프랑스 혁명에 대한 쉴러의 생각이 바로 『빌헬름 텔』에 담겨있다. 혁명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와 그리고 그 혁명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쉴러는 텔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카이사르에서 아우구스투스로 권력이동이 이루어지는 시대가 배경인 미국드라마 <Rome>에서 카이사르는 브루투스에게 어이없게 죽임을 당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심수봉의 품에서 김재규의 총에 의해 살해되는 장면이 나오는 <그때 그 사람들>의 장면 속에서도 독재를 향한 반대 세력들의 모습은 볼 수 있다.

괴테와 더불어 독일 고전문학의 쌍벽을 이루는 쉴러는 자신이 급성폐렴으로 죽기 1년 전쯤 바로 『빌헬름 텔』을 완성했다. 당시 빌헬름 텔에 대한 영웅적 일화는 지금 우리가 충분히 잘 알고 있는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맞추는 아버지’그 이상의 인물로 스위스를 지켜낸 인물로 우상시되어 있었다. 그가 이 작품을 써낼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유에 의한 열망 덕분이었다. 쉴러의 작품 속에서 텔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명궁의 인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위해 폭군의 목숨을 빼앗는 강인한 영웅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지금이야 별것 아닌 것같은 내용이지만 당시엔 굉장히 파격적인 내용이었으므로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빌헬름 텔』의 인기는 금지의 힘을 압도했다.

그러나 위에 이야기 했듯이 쉴러가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자유에 대한 방법은 바로 그의 작품에 나온 모습은 아닐 것이다. 그는 비폭력적인 자유를 원했다. 비폭력적인 운동으로 자신의 주권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눈에 비친 프랑스 혁명은 다소 과격하고 문제가 있어보였을 것이다.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고 권력의 지배계급을 처단하는 피지배계급들의 폭력성은 텔이 다른 인물들과 분리되는 이유다. 텔은 봉기의 연합에 속하지도 않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의 복수심 때문에 태수인 게슬러를 죽인다. 그러나 그를 죽이는데 앞서 정말 이상하리만큼 길게 쓴 텔의 독백은 바로 그 살인에 대한 죄책감과 고통에 대한 것이다. 텔의 살인이 악독한 태수를 처단하는 것으로도, 스위스를 오스트리아로부터 지켜내는 것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작품 속에서 그는 굉장한 영웅으로 칭송받고 그의 가정도 화목하게 이루어지지만 텔은 스스로 고통 속에 빠진다.

파리치다에 대한 용서를 추구하는 것 또한 쉴러가 『빌헬름 텔』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비폭력에 대한 주장이다. 파리치다는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했던 텔이 자신을 냉대하게 대함으로, 텔이 나라를 위해 스스로 살인자가 되어 희생한 것에 반해 자신은 결국 자기의 욕심을 위해 살인한 것으로 평가받는 장면을 통해 폭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권력에 반한 자유의 폭력은 결국 또 다른 욕심에 의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텔과 파리치다의 행동에서 만들어진 살인이란 도구는 쉴러의 눈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가 비록 군의관이지만 철저한 계급주의 속의 군인신분 속에서 받았을 폭력의 문제성과 자유의 열망은 아마 그가 죽기까지 간직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가 1세기 정도만 늦게 태어나서 간디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인도의 자유를 위해 물레를 돌렸던 그의 정신을 보고 쉴러는 감탄을 했을까? 아니면 생각을 바꾸고 폭력의 정당화를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