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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이라는 스캔들
나이토 치즈코 지음, 고영란 외 옮김 / 역사비평사 / 2011년 7월
평점 :
오늘날 언론들은 '명품'을 쫓는 '된장녀'의 어리석음을 질타한다. 커피전문점에서 돈을 쓰는 그녀들을 놓고 입방아를 찧는다. 하지만 자동차, 카메라, IT기기, 오디오 등을 선호하는 남성들을 '된장남'이라고 지칭하고 그네들의 빈약한 놀이문화를 조롱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행동을 설명해야 하는 것은 여성이지, 남성이 아니다. 남성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회적 언어는 이미 남성의 언어이다. 따라서 쌍방 혹은 다수 관계에 대한 해석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것은 권력의 중요한 요소이다. 여성들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며, 그러한 서사구조의 이상함을 우리는 깨달아야 남성 권력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 문명을 이룩하고자 하는 욕망이 꿈틀대고 있었다. 그러한 욕망들은 미디어에 의해서 특정한 방향으로 표출되는데, 저자는 병과 피, 여성과 식민지, 암살이라는 키워드로 당시 신문들을 독해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을 일본판 신문읽기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젠더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신문읽기혁명보다는 각 방송사의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중 '여성민우회의 방송다시보기' 코너와 꽤 흡사하다고 하겠다.
오늘날 페미니즘이 지적했던 젠더에 관한 진부한 인식들은 그대로 당시 신문들에서 재현된다. 생리하는 존재, 히스테리를 가지고 있는 존재인 여성들은 건강한 남성과 대비된다. 이 시선을 밖으로 향하면 문명국인 일본과 불결한 지나, 대만, 아이누, 조선이 대비된다. 이런 논리구조에서는 식민지가 곧 여성으로 표상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논리구조는 완전한 거짓이기 때문에, 그것의 '예외'-이것을 예외라고 부르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왜냐하면 그 논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기 때문이다-들은 미디어의 서사를 배반한다. 전염병이 이슈이던 때는 아이누와 지나인의 피의 불결함에 대해서 떠들고, 민비 시해사건에서는 그 암살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던 신문들이 이제는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에 답해야 한다. 그러나 이전까지의 논리구조에서는 내부로는 치유가 안 되는 식민지와 외부로서 도움을 주는 일본의 이미지가 완벽하게 대응을 했지만,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이토의 모습을 마찬가지 논리로는 서술할 수 없었다. 피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의 개인의 병약을 상징하는 바, 급기야 신문들은 총은 맞았지만 피가 흘러나오지 않았다고 쓰기에 이른다. 이러한 이야기들의 모순들은 천황의 죽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책을 보면 당시 일본 언론들이 대한제국의 황실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비의 시해에서는 일본인의 역할을 애써 축소하려 하고, 조선 왕실을 암투와 모략이 판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일본에 온 영친왕은 문명의 개화 속에 올바르게 자라는 것으로 쓰여진다. 이 서사구조는 식민지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저자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젠더,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지적한다. 민비는 정신적 문제가 있는 불안한 여성이다라는 서술은 여성과 병에 대한 기존의 서사가 반복되고 있고, 민비가 침실에서 죽었다는 것은 일본 내 여학생과 창기, 간노 스카코(무정부주의자)의 문란함을 지적하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서술들은 어떤 상상을 의도한다. 그리고 거기에 바로 남성의 시선이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이 책이 지적하는 여성, 그리고 다른 약자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은 오늘날도 반복되고 있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많은 해석들이 너무 자연스럽게 쓰여지고 말해지고 있기 때문에 진실처럼 느껴진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가난한 자들은 건강에 신경쓰지 않고 끼니를 거른다고 서술할 때, 우리는 가난한 자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경제적 여건이 안 되기 때문임을 안다. 하지만 '강남 엄마'들이 자식 교육에 목매는 것을 여성의 사회진출장벽과 꿈의 부재에서 찾지는 않는다. 더 우월한 자식을 낳기 위해 화장을 해야 하고, 부인병을 앓는 모든 여성들에게 이 약을 먹으라고 하는 신문의 광고를 보고 독자들은 그 괴악한 논리에 혀를 차면서도, 우울한 여성들에게 우울증 치료제인 프로작을 권한다.
우리는 이야기에 전염되어 있다. 그 이야기들은 평등하게 말해지지 않는다. 이제 그것은 단지 미디어에 의해서만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사람들에게 말해진다. 이 책을 통해 비슷한 논리구조의 다른 이야기를 보고 그 괴이함을 알았다면, 우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암살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