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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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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라고 분류되던데, 수필보단 그냥 현실에 있을 법 하지만, 현재까지는 없는 판타지 미화소설. 그들만의 리그에 대한 철없고 무책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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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몽상
이진경 / 푸른숲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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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이라는 사람을 처음 접한것은 '철학과 굴뚝청소부' 라는 책에서 였다. 당시에는 단순히 그냥 논리정연하고 글 잘 쓰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여러분야에 이정도 전문지식을가지고 있다는것에 놀랐다. 사회/인문과학자가 쓴 수학에 관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여타 수학교양서와는 다르게 상당히 깔끔하면서도 논리정연하게 그러나 결코 딱딱하지 않게 수학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펴나가고 있는 책이다. 내용이 어렵지 않고 되도록 쉽게쉽게 이야기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이는책인듯 싶다.

하지만 초보자를 위한 이러한 배려는 자칫 수학전공자나 수학에 어느정도 지식이 쌓여있는 독자라면 오히려 글의 흐름을 느슨하게 느낄수도 있을성 싶다. 중간중간에 괴테의 '파우스트' 의 대화의 형식을 빌어서 유머스럽게 이야기한다는 발상은 초보자들을 겨냥한다는 관점에서는 상당히 올바른 방식 일지도 모르지만, 어느정도 수학 교양서를 많이 읽어본, 수학도들에게는 자칫 글의 흐름이 너무 느슨해 질수도 있고, 비전문적 이라는 인상을 받을수도 있다고 본다. 더군다나, 그 대화 형식 사이사이에 서술적인면은 표준말이 아닌, 사투리들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혹자는 너무 장난스럽지 않은가? 라고 생각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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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 최후의 새벽
쓰노다 후사코 지음, 김은숙 옮김 / 조선일보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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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말해서 글발없고 성격급한 사람이기때문에 결론부터 말씀드리겠다. '이 책은 아!니!다!'이미 시중에 풀린 수많은 명성황후에 관한 책들을 하나하나 다 읽어본것은 아니지만 감히 말씀드리자면이 책은 내가 읽어본 몇안되는 명성황후에 관한 책들중 가장 역사책으로서의 가치가 없다 .

저자는 튀고 싶었을까? 아니면 저자인 그녀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이런 결론을 내리고 싶었던 것일까? 언뜻 보기에 그녀는 나름대로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명성황후에 관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고 있는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적어도 본인이 보기에는 그녀의 글은 객관성을 유지 한다기보다는, 너무 자신이 없어 보인다.

역사적으로 볼때 한일관계는 민감한 주제인만큼 최대한 자신의 주관을 배제하기 위해서 애쓴 흔적은 보이지만, 역사책을 기술함에 있어서, 역사학자의 주관은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던가? 그녀는 철저히 자신의 주장을 배제함으로써,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결과론적으로 봤을때, 나는 이 책이 단순한 사건 나열식의 책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자 자신의 역사를 바라보는, 역사학자로서의 사상은 전혀 찾아 볼수가 없다.

더군다나, 내가 가장 어이가 없었던 부분은 객관적인 사실만 나열한후, 이 책의 결론은 더할나위 없이 황당하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 사건의 추이를 설명한후 그런 결론이 나올수 있을까? (그녀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본 정부의 비개입 아래 일부 극우세력들과 친일파의 합작품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한국 사람인 나로써는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었다.

물론 이러한 역사책으로서의 치명적인 단점 외에 장점이 없는것도 아니다. 굳이 장점을 언급하자면 일단 어떠한 사건을 서술하면서, 너무나도 짜임새 있게 일련의 사건을 정리해 나갔다. (역사책으로서 당연한 것이다.) 예를 들어 갑신정변을 서술하여 나갈땐 박진감이 넘칠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다. 책을 읽되 , 작가의 사상을 파악하며 읽기 하기 보다는, 사건과 사건 사이에 자신의 주관을 섞어서 읽기를 권하고 싶다. 그렇다면 이 책 역시,재밌게 읽혀질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절대이 책에 담겨있는 작가의 모든 논거는 받아드리지 말것을 간곡하게부탁드리는 바이다. 이런 책 읽을바에 티비 앞에 앉아서 유동근이랑 최명길 나오는 드라마 보는게 훨씬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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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 증보판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8
박영규 지음 / 들녘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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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이하 조선실록) 과 함께 박영규씨의 베스트 셀러 역사 교양서이다. 평소 박영규씨가 '조선실록' 보다 더욱 애착이 간다고 하여 강조하여 말하듯이 그의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아마도 조선왕조에 대한 사료는 이미 많이 나와있지만, 고려왕조에 대한 사료는 그다지 많이 나와 있지 않아서 더욱 책을 집필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본 책은 박영규씨의 역작 '조선실록' 과 같이 각각의 왕을 축으로 하여 그 시대에 관한 주요 사건 혹은 인물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전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사료의 부족 때문인지, 어떤 왕은 짧게 한 두 페이지만으로 이야기를 끝마치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최근 들어 TV드라마 '태조 왕건'으로 인하여 고려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고 왕건에 이어 혜종~광종 때까지의 사건을 다룬 '제국의 아침' 역시 '태조 왕건'의 맥을 이어 나가고 있다. 최근 이러한 고려사의 관심이 늘고 있는 가운데 조선시대로 인하여 잊혀진 우리 역사 최초의 자력 통일 왕국인 고려시대에 관한 이런 관심을 이 책에서 다시 한번 느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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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들녘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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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랍시고 올리던 책을 읽은 후의 일상적 푸념을 적어도 오늘만은 하지 않으련다. 다만 오늘은 책을 덮은 후에 느꼈던 아쉬운 부분들을 언급해 보고자 한다. 나는 왜 이 책을 읽고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가? 책을 다 읽은 후 곰곰이 생각해 본 다음 나는 나의 아쉬움에 대한 몇 가지 단서를 찾을 수 있었는데 , 일단 이 아쉬움은 작품 내적인 즉, 스토리의 아쉬움이 아닌 작품 외적인 아쉬움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아쉬움을 다음과 같은 예로써 이해할 수 있었다. 30년대 국내에서 발표된 소설 중 이효석 씨의 '메밀꽃 필 무렵' 이라는 소설이 있다. 한글 특유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표현들을 살린 멋진 소설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에 이 소설을 영어 혹은 불어 등 의 타 언어로 번역한다면 과연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릴 수 있을까? 나는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어떤 한 민족의 언어에 베어있는 민족 특유의 정서가 다른 언어로 바뀌면서 변질 혹은 제거되기 때문이다. 내가 '재즈' 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결론적으로 짧게 말하면 바 '번역의 아쉬움' 인 것이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 미리 밝혀두지만 이 '번역의 아쉬움'은 번역가의 잘못이 절대 아니다!)

본인이 여태까지 읽어본 외국 소설 작품을 종합하여 볼 때 이러한 '번역의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소설들은 두 가지로 분류 할 수 있다. (나의 주관적 분류이다.) 첫 번째는 원 작가 의 단어 선택 하나하나 가 너무 난해하여 국어로 번역하기에는 마땅한 단어가 없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본인이 읽어 본 작품 중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이 그런 경우라고 뽑아 볼 수 있겠고, 두 번째 경우는 원문의 단어 하나 하나를 우리말에 맞게 번역할 수는 있지만 막상 번역하여 보면 원문의 느낌이 살지 않는경우라고 볼 수 있다. 보통 외국 시와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할 것이며 엘리엇이나 릴케의 번역시를 백 날 읽어 봤자 우리가 느끼는 감동은 원문을 읽고 감동하는 이에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 바로 '재즈' 와 같은 경우가 소설로서의 그 경우일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한분도 이 책의 서면에 이와 같은 의견을 충분히 밝히고 있고 나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적지 않은 아쉬움을 표명하고 있다. 나 역시 이 분의 아쉬움을 십분 이해하며 , 더 나아가서 너무나 아름답고 마치 한편의 시를 듣고 풍경화를 보고 있는 듯한 토니 모리슨 특유의 문체를 느끼며 책을 읽는 순간 순간마다 원문을 이해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언어적 한계를 질책하기까지 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나는 그에게 축복을 내리는 그림자가 되어야 한다. 삶을 떠난 후에도 남아있는 죽은 자의 미소처럼 그를 위해서 또 다른 그를 위해서 아주 훌륭한 꿈을 꾸어줘야 한다. 깊이 생각하고 그럼으로써 그 고통을 덜어주고 줄여줘야 한다.

나는 그에게 축복을 빌어주고 그의 이름을 말하고 그가 눈을 떠야할 때 깨워주는 언어가 되고 싶다.' 어딘가 모르게 난해하기도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차라리 '김남조' 스러운 산문시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릴 만한 표현이다. 이런 토니 모리슨 특유의 문체는 이 소설 여기저기 만연하여 있다. 과연 이 문장을 번역문이 아닌 '해석' 이라는 개념 없이 원문을 보는 순간 한국사람이 국어를 보는 듯한 직관으로 접하게 되면 어떤 느낌일까? 나는 그 느낌을 원문을 본다고 해도 지금 당장 느낄 수 없을 것이며, 아마 평생가도 느낄 수 없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허탈함마저 든다 . 차라리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더 편할지 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여 수없이 '이 작가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에겐 크나큰 축복이요,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따위의 자기 긍정을 해보았지만, 아직도 원문을 느끼지 못하는 나의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이 책을 본지도 이미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아쉬움은 내 마음한구석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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