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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한 세상의 개 같은 나의 일 ㅣ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노칼라 1
맥스 애플 외 지음, 리차드 포드 엮음, 강주헌.하윤숙 옮김 / 홍시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는, 노동자의 구분을 뜻하는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노칼라’다. 이 밋밋한 원제를 번역하면서 제목을 ‘판타스틱‘과 ’개같은‘이라는 강렬한 단어를 넣어 만든 이유를 삽입된 이야기 한 두 개만으로 쉽게 알 수 있었다. 책에 수록된 단편들 속엔 인간의 자유롭고 판타스틱한 영혼과 다양한 삶의 개같은 모습이 담겨있다.
저자는 원래 자신이 살고 있는 미국 미시간 주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모은 단편소설집 정도로 생각하고 편집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글쓰는 사람’으로서 작가의 눈에 비친 삶의 모습들이 보다 근원적인 인간사의 본질에 다가섰다고 여겨, 세상으로 범위를 넓혀 책을 내놓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일’에 투영된 인간의 자유, 특정 환경에서 번창하는 인간정신의 소중한 연결고리로서 ‘일’이 차지하는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저자는 서문에서 전문작가로서 자신이 글을 지을 때 주인공의 직업(일)을 설정하는 이유를 간단히 밝힌다. ‘주인공이 만나는 주변 사람들, 특히 중요한 등장인물이 먹고 살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는지 확실하게 말하지 않으면 내가 그 인물에게 주려고 했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걸 알게 됐다.‘ 이렇듯 ’일‘은 주인공의 일부를 선명하게 창출한다.
책에 참여한 대부분의 작가들은 저명하고 연로하나 문화의 차이, 생활사의 차이가 주는 이질감에 당혹스러운 작품이 많다. 능숙함을 만났다기보다 신인작가의 풋 작품을 만나는 느낌. 인간본성의 일체감을 갖고자 한다면 먼저 그들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독서에 몰입해야 할 것 같다. 보안관, 타자기수리공, 가구배달원, 신문배달원 등 다양한 직업이 등장하며 이혼가정, 고아, 정신지체아 등 다양한 형태의 삶이 등장한다.
‘자파로스’의 주인공은 세관에 억류된 물품을 경매하러 나선다. 멋진 최고급 이탈리아제 구두가 모두 외짝으로 3만 개나 있다. 물건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고 주인공은 싼 가격으로 낙찰을 받는다. 외짝의 구두 3만 켤레로 무엇을 할까? 반전이 있다. 먼 곳 다른 세관에 반대짝의 구두가 또 3만 켤레 있었다. 주인공은 부자가 된다. 웃음이 절로 나는 설정을 보고 있자니 작가의 한마디가 환청이 되어 들린다. “상상이 돼?”
한때 직업 치료사로 일한 적이 있었다는 또다른 주인공은 매일 오후 2시면 그곳, “황금 기회 작업장”에 가서 정신지체가 있던 그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들의 ‘황금 기회‘가 관리자들과 입원자들의 인식의 차이였음을 증명하는 한마디 말에 실소를 터뜨린다. “저들이 오늘은 우리에게 뭘 하라고 시킵디까?”
단편중에는 ‘부당한 일’, ‘사각지대’, ‘가게’가 인상적이다. 성희롱으로 고소당한 번듯한 보안관이 가족들과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의 해프닝들. ‘나이 든 남자가 이렇게 말했는데 머리가 너무 많이 벗겨져서 머릿속 생각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다 읽힐 것 같았다’, ‘오트밀 상자 하나가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어찌나 세게 얻어맞았는지 내 후손 중에 누군가는 분명히 이 오트밀 상자 때문에 멍청이로 태어나는 아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밌는 단편이 많다.
대한민국은 대선정국의 태풍을 앞둔 시기, 시기의 절박함 때문인지 ‘조국은 자아와 같아 알면 알수록 부끄러워졌다’는 글이 눈에 확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