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 점프하다
권소정.권희돈 지음 / 작가와비평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쳐 온 아버지 ‘권희돈구더기’와, 디자인을 공부하고 인터넷 블로그에 앙증맞은 작품을 올리던 딸 ‘권소정구더기’가 공동으로 작업하여 펴낸 책, 구더기점프하다! 이 감수성 충만한 권씨부녀의 공동창작물이다.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은 유기농 호박을 깨는 순간 신선함을 과시하듯 톡톡 튀어 오른 구더기들에서 영감을 얻어 이 책의 제목을 삼았고, 차례를 정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동기로 삼았다. 점프하는 구더기는 두 부녀의 상징이다. 어디로 점프하고 싶은 것일까? 손 비비며 더러운 곳 찾아다니는 파리일지언정 날개 달고 날아오르는 어떤 도약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어느 동네의 파리가 되고 싶은 것일까?

 

  이 책을 엮기 위해 두 부녀가 세대간의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 이해와 사랑을 확인하는 모습이 독자의 눈에 흐믓한 여유로 비쳐진다. 희돈구더기가 머리글에서 밝혔듯, 이 책은 KTX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동안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쉽게 읽힐 법한, 연하고 달콤한 내용으로 실하게 차있다. 국문과 출신 노교수의 ‘지혜’와 디자인을 전공한 새 세대 밝은 딸의 ‘감수성’이 밀가루와 부침가루처럼 섞여 속 알찬 만두를 빚어내고 있다.

 

  딸 권소정의 삽화가 귀엽고 산뜻하며 전체적인 책의 색감이 좋다. 파스텔톤 빛깔이 곱고 수채화의 붓터치가 은은하며 형광처럼 빛난다. 은행나무잎이 나비처럼 날아오른다. 색과 이야기가 다양한 책이다. 책을 덮고 난 느낌은 ‘맑은 수채화’, 추억의 ‘동화’속에 푹 절었다 나온 기분이다. 아버지 권희돈의 품위와 온화함이 돋보인다.

 

  아버지는 가물치처럼 가물가물해지는 자신의 ‘건망증’을 안타까워한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장학금을 타 기쁜 소식을 어머니께 전하는데, 어머니가 뿌려주신 아카시아 잎의 흩뿌려짐은 가슴이 뭉클하고 숙연하다. 상가를 찾아주신 분들께 전하는 감사의 글, 그리고 청첩장과 혼서는 진정한 배려가 온전히 전해지는 한 편의 작품이다. 개인사 당했을 때 옮겨 보내도 좋은 듯한 좋은 문장들이다.

 

  살처분당하는 순간까지도 제 새끼에게 젖을 먹이고 죽어 간 어미젖소의 이야기와 그림이 심금을 울린다. 제 새끼 얼굴이 이지러지도록 혓바닥으로 핥고 있는 어미소 그림, 구제역으로 살처분되는 어미소가 투약후 1분도 못 버티는 독성강한 약물을 투여했음에도, 제 새끼가 젖을 물자 사선을 넘어 수 분을 버티고 버티다 쓰러졌다는 이야기. 젖소의 모정같은 그런 가슴뭉클함과 더불어 그녀 인생의 양념들, 인간숙성을 떠올리게 하는 자연숙성 간장, 누군가 내게 사과 해주길 바라는 사과식초의 양념통 그림들이 살갑게 되살아 난다.

 

  딸의 이야기 부분은 각 말미에 인터넷 블로그의 형식을 빌어 실제 사이트에서 나눴던 회원들과 브리(권소정의 아이디)의 대화형태로 수록하고 있는데, 그 내용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소정구더기의 진정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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