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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재나 ㅣ 마르틴 베크 시리즈 1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2월
평점 :

"나는 당신을 돕고 싶어."
"어떻게요? 나를 돕는다고요? 어떻게 돕습니까? 이렇게 된 마당에?"
"당신이 기억을 되찾도록 돕고 싶어."
407쪽, 로재나.
마르틴 베크는 쉴 새 없이 그 남자를 생각했다.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릴 때도, 산타클로스 분장을 뒤집어쓰고 땀에 흠뻑 젖었을 때도.
349쪽, 로재나.
마르틴 베크는 목덜미에 땀이 났다.
남은 시간은 열 시간. 그녀는 정말 웃었을까?
245쪽, 로재나.
취조라면 지금껏 수천 번을 해봤는데도 어쩐지 속이 야릇하니 불쾌하고 왼쪽 가슴이 뻐근했다.
304쪽, 로재나.
100분의 1초가 될까 말까 한 시간이었지만 마르틴 베크의 뇌리에 그 광경이 속속들이 새겨져 영원히 기억되기에는 충분했다.
397쪽, 로재나.
따스한 산들바람이 불던 여름의 어느 날, 호수 위로 여성의 사체가 발견 됐다.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스톡홀름의 수사 전문가인 마르틴 베크가 파견됐다. 그는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들 정도로 집중력이 높거나 좀 더 기민한 경향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들 그 경향이 그의 무던한 성격을 특별하게 만들어주진 않았다. 택시비를 아까워하거나 수사 도중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 인간적인 면모도 돋보였다. 이런 담백함이 그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일반적인 추리소설 속 탐정들은 수사기관에서 일하지 않을 뿐더러 어딘가 명석하거나 독특한, 우리 같은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유형의 인간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마르틴 베크는 인내심을 갖고 지난한 수사 과정을 겪어 나간다. 범인은 또 어떤가. 일반적인 추리소설이었다면 여러 명의 범인을 등장시켜 독자에게 추론할 기회를 제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로재나 속 범인은 증인의 입을 통해 지목된 단 한 명의 남성이 유력한 용의자였다. 그 용의자가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만 있다면 수사와 이야기는 모두 종결되는 것이다.

입가의 미소를 지우지도 못한 채 그녀는 천천히 집안으로 물러섰다. 폴케 벵트손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집으로 들어와 등뒤로 문을 잠그고 체인을 걸었다.
390쪽, 로재나.
남자는 노점 앞에 서서 핫도그를 사서 노점에 기댄 채 먹으면서 쉴 새 없이 그녀의 창문을 올려보았다.
371쪽, 로재나.
폴케 벵트손을 범인으로 단정 짓기엔 너무도 평범해 보였다. 반듯한 그의 이면에는 치밀한 잔혹함이 숨어 있었다. 매일 밤 소냐의 창문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가 체인을 걸어 성큼성큼 집으로 들어왔을 때에는 독자들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기도 했다. 단조로워 보이는 이가 대담함을 발휘하는 순간이었기에 더욱 공포스러웠다. 로재나를 잔혹하게 살해했던 폴케가 소냐를 죽이려다 잡힌 순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신문 과정에서도 줄곧 흘러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누군가를 무참히 죽였음에도 자신의 범죄가 드러나자 한없이 나약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에겐 분명한 대의가 있었기에 억울함을 느낀 것인지도 모른다. 특정 대상에 대해서는 잔혹성을 띄지만 본인에게만큼은 여린 성격을 지닌 그의 생각을 더욱 파헤쳐 보고 싶었다. 카린이 그를 두려워하게 된 계기와 그의 유년기도 궁금했다. 하지만 로재나에서는 폴케라는 범인이 잡힌 이후 그를 필요 이상으로 분석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사건에 관련된 모든 단서들이 그러듯이 새로운 실마리는 실타래처럼 엉킨 물음표들과 의심스러운 증언들 속으로 금세 종적을 감췄다.
255쪽, 로재나.
1960년대에 범죄 증거를 수집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 승객 명단을 파악하여 범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추려나가거나 로재나 맥그로와 인사를 나눈 터키 대학생을 찾기 위해 대사관을 통해 정보를 주고 받아야 했다. 마르틴 베크는 폴케의 이전 연애관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전 여자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기다림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과정들로 인해 사건은 여름에 시작되어 겨울에 종결되었다. 사건을 추적하는 데에도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하기란 더욱 힘든 일이었다. 그의 죄를 입증하고자 수사팀은 함정 수사를 진행한다. 범인을 위한 미끼로 피해자와 닮은 여성을 투입하여 범죄에 노출시키고 함정수사의 결과로 이전 사건의 범죄 여부까지 판단한다는 점에서 함정 수사의 문제가 무엇인지 통감할 수 있었다.

페르와 나는 1960년대 초에 만났습니다. 한 출판사에서 내는 다른 잡지에서 각자 일하고 있었죠. 어느 날 식당에서 점심을 먹다가, 우리는 예전부터 품고 있었던 아이디어를 문득 꺼내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우리는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았죠.
7쪽, 로재나.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의 경찰 수사 소설이다. 그 둘은 연인이었다. 한 장을 발뢰가 쓰면 그 다음 장은 셰발이 썼다. 다 쓴 장은 서로 교차하여 고쳐나가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에 주인공과 이야기가 모두 담백한 분위기가 우러나온 게 아닐까 싶다. 범죄 수사 기자로 활약했던 발뢰는 수사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였다. 특히, 신문 과정에서 실제 녹취록을 보는듯한 글이 생동감을 높였다. 한 사건의 수사 과정과 사이클을 경험할 수 있는 것도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재밌는 특징 중 하나다.
그들은 기자 생활에서 얻은 통찰력과 철두철미한 조사 능력을 집필에 쏟아부었다. 범죄 현장의 모습은 물론이고 작중 인물들이 이동하는 거리와 시간까지 일일이 조사했다. 작은 에피소드까지 하나하나 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연을 어떻게 연출할지까지 포함해 모든 것을 결정한 후에야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자료 조사를 하고 시놉시스를 쓰는 데에만 일 년의 절반 이상을 할애했으나 본격적으로 집필에 들어가서는 한 권의 책을 완성하는 데 한 달에서 세 달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한 사람이 한 장씩 번갈아 쓰는 식이었다. 발뢰가 1장을 쓸 때 셰발은 동시에 2장을 쓰고, 한 장을 완성하면 서로 원고를 바꾸어 다듬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쓰기 때문에 누구의 문체도 아닌 공동의 문체를 만들었다. 또한 셰발은 이 소설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운 작품이기를 바라며 썼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는 어렵거나 복잡한 서술보다는 일상적인 대화가 주를 이루고, 경찰들의 일상이 사건을 진행시킨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429쪽, 로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