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탐구하는 미술관 - 이탈리아 복원사의 매혹적인 회화 수업
이다(윤성희)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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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탐구하는 미술관을 읽고

저자 : 이다 / 출판사 : 브라이트

다양한 작품들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기록된다. 기록 방식은 다양하다. 책이 될 수도 있고, 사진이 될 수도 있고, 음악이 될 수도 있으며 이 책처럼 미술로 기록될 수도 있다. 나는 평소 책이나 음악으로 세상사를 관찰하기를 좋아했지만, 미술과 사진은 안목이 뛰어난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분야라 생각했다. 항상 어렵게 느껴졌고, 안목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올해 가 본 앙리 마티스 그림 전시회, 우연히 웨스 앤더슨 사진 전시회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함에 있어 정해진 답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작자가 남긴 이야기들과 작품을 보면서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소통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마음이 한결 다채롭고 풍성해지는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어보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무궁무진하다. 아름다움에는 정답이 없고, 살아가면서 내가 느끼는 사사로운 감정들까지 모두 예술 작품이 될 수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서 발견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삶의 면면들을 캐치하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한 것임을 깨닫고 싶었다. 그냥 예술작품들만 진부하게 소개한 책으로는 부족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작품 속에 투영된 인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시간을 살아갔던 과거의 인물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러한 그림을 그렸는지, 작품 속에 녹여낸 감정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이 책은 아주 섬세했고, 날 것 그대로의 감정들이 가득해서 지루하지 않았다. 만일 이전에 읽었던 미술 책들처럼 작품에 대한 소개만 주야장천 작은 글씨로 늘어놓았더라면, 책을 펼치자마자 바로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아주 화려한 이력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만을 엄선하여 소개하였다 할지라도, 그 속에 인간의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글이 잘 읽히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글자를 읽고 그림을 보고 있으나, 마음 깊이 와닿지 않은 글자와 이미지는 머릿속에서 아주 빠르게 휘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달랐다. 당대 유행하였거나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기법 등 미술사에 대해서도 알아갈 수 있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서 더욱 깊이 있게 알아갈 수 있어 흥미로웠다. 멋진 작품들을 비롯하여 해당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화가들이 느꼈던 감정들, 그들의 작품을 바라보는 현대인들의 시각까지 모두 담겨 있어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느꼈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은 종교적인 느낌이 강해서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영혼과 이성만큼 인간 개인의 행복 또한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았던 작가들이 있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행복 추구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사람을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는 힘은 결국 행복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장 인상 깊게 보았던 그림이 바로 플리니오 노멜리니의 첫 번째 생일이라는 작품이었다. 종교적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가족의 행복한 순간을 담은 그림 그 자체로 이해해도 충분하다. 행복의 순간은 비록 찰나였을지 몰라도, 쉽게 잊히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은 찬란한 분위기와 감정들이 있다. 모두의 감정의 온도가 섬세하게 기록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짐을 느낀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시간 동안, 나를 웃게 하고 울게 하는 것들도 이런 찰나의 행복한 순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온 가족이 함께 하고 있어 마음이 안정되기도 했다.


그림을 바라보며 순수한 감정을 느끼고, 작가의 이야기를 읽은 후에 다시 한번 유심히 그림을 관찰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쳤다. 그리고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맨 처음 그림을 보았을 때 미처 눈에 띄지 않았던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답도 없고, 한계도 없는 것이 꼭 우리 삶과 닮았다.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그림은 매번 다르게 보인다. 그래서 늘 어렵다고 느껴졌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부담 없이 이해할 수 있어 편했다.


모습은 아름답지만, 향기가 나지 않는 조화는 사람을 끌어당기지 못한다. 특히 나처럼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아서 어렵다고 느껴온 사람들에게, 그저 감탄을 자아내는 매력적인 그림만 모아서 줄줄이 소개해놓은 책은 향기 없는 꽃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그렇지 않다. 풍부한 향기를 머금은 생화처럼 생동감 넘치고 지루할 틈이 없다. 그저 작품만 무미건조하게 소개한 글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바라보는 인간의 이야기에 집중하였기에 사람을 끌어당긴다. 작품을 그린 사람과 작품이 가진 감정들에 집중하다 보면, 삶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굳건한 다짐을 하게 되기도 한다. 미술을 통해 인간을 탐구하면서 나의 마음속에 견고하게 자리하게 된 키워드는 바로 행복이다. 무엇이 되었건 행복한 삶을 살자. 모두가 긍정하지 않더라도, 확신이 서지 않는 선택이라 할지라도 당당하게 행복할 수 있는 권리는 나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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