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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자 Run with me ㅣ 노래를 그리다 1
선우정아 노래, 곽수진 그림 / 언제나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거기서는 우리 아무 생각 말자.
지난주 금요일은 유난히 힘든 날이었다. 친구가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어 마음이 무거울 대로 무거워진 상태로 퇴근을 했다. 마음이 심란해 동네를 한 바퀴 걷다 돌아와 집 앞에 오니, 선우정아 님의 책 <도망가자>가 놓여 있었다. 노래 가사와 잘 어울리는 따뜻한 그림체에 빨려 들듯 책장을 넘겼다. 수많은 글자들이 주는 위안이 도움이 되는 날도 있지만, 이날은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여백 가득한 책이 힘이 되어주었다.
많은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밤, 가사 한 글자 한 글자를 마음을 다해 더욱 천천히 읽을 수 있었다. 가사를 천천히 읽어보며 그림을 눈에 담았다. 긴 시간 동안 내가 그림 속에 들어간 듯 천천히 눈 속에 담으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을 가졌다.
힘이 들 때면 어디로든 멀리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나 그러한 곳은 대부분 아주 멀리! 지금 당장 갈 수 없는 곳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 속 그림들에 집중하다 보니, 내가 사랑하는 모든 순간들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바람과 함께 눈뜨는 아침의 상쾌한 기분, 힘이 들 때면 바로 찾을 수 있는 초록의 향이 가득한 공원, 바뀌는 계절마다 피어나는 색색의 아름다운 꽃들 속에 나의 삶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행복하다고 느꼈던 순간들은 지극히 소소한 순간들이었다. 날이 조금씩 선선해져 걷기 좋았던 여름밤 부모님과 함께 고향 집 주변을 걸었던 순간, 언니와 함께 배드민턴을 치며 서로의 실력을 탓하던 순간, 대학생 때 모두가 떠난 밤 룸메 언니와 텅 빈 학교를 걷던 순간, 친구와 공원에 텐트를 치고 음악을 들으며 누워서 낮잠을 자던 순간, 한강에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즐겼던 순간 등등 행복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든 순간들 속에서 크고 작은 행복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더불어 어디든 함께 도망가 줄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머리가 무겁고 힘이 들 때 함께 웃으러 가자고 약속할 상대가 있다는 것! 그리고 함께 도망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면, 다시 힘을 내서 평소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편 이 든든해졌다.
곽수진 작가님의 그림은 평화롭고 따뜻해서 보기만 해도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사랑하는 산, 노을, 바다, 푸른 하늘이 생동감 넘치게 담겨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에 큰 위안을 주는 동반자가 담겨 있다. 그림 속 동반자는 강아지다. 둘이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만 보아도 서로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 존재인지 느껴졌다.
특히 색색의 폭죽이 팡팡 터지는 장면을 함께 바라보는 그림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꿈만 같아서 넋을 놓고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을 마주할 날이 나에게도 올까?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그리고 늘 마주하는 침실의 풍경도 그림으로 보니 아주 색다르게 느껴졌다. 아침의 햇살이 집 안의 절반을 삼켰는데도 동반자와 함께 침대에 누워 뭉그적거리는 아침이 주는 여유로움이 나에게도 전해졌다. 익숙해져서 미처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내 집안의 풍경들에도 잠시 눈을 돌려 바라볼 수 있었다.
머릿속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요즘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행에 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기도 했다.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 밤, 지극히 혼자라는 생각이 드는 날마다 이 책을 펼쳐보면서 편안하게 쉬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삶의 템포를 늦춰서 아주 천천히 책장을 넘기며, 오랫동안 스스로의 행복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