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주를 삼킨 소년 : 트렌트 돌턴 장편소설을 읽고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에 "네. 저는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그 이유는~~"하고 명확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주인공인 소년 엘리 벨은 끊임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어른들을 의심하고, 스스로를 의심한다.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 좋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하고 질문하면서 적극적인 태도로 인생을 배운다.


소년이 어른들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지 않는 삶의 이면에 궁금증을 가지고 세세히 관찰하며 성장하는 과정은 흥미롭지만 아주 위험하기도 하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10대 초반 소년의 일상에 마약, 범죄조직, 폭력이 난무하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 충격적이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험난한 배경 덕분인지 이야기가 더욱 극적으로 느껴졌다.


어릴 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알고 보니 나쁜 놈일 때, 그것도 내가 아주 사랑하는 부모님이 하필이면 아주 나쁜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13살이 된 소년이 추악한 어른의 세계에 가까워져 갈수록 나도 함께 상처를 받고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차라리 진실을 모르고 그 나이대 어린이들의 세계에 머물러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갔더라면, 소년은 더욱 행복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두렵지만 소년은 진실을 마주하고 나아지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였다.


엘리 벨이 만나는 어른들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고 질문하는 장면과 어른들의 답변은 아주 흥미로웠다. 만약 소년이 나에게 이 질문을 던졌더라면 난 무어라 대답할 수 있었을까? 나는 떳떳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답변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야."라고 답변하지 않았을까 싶다.


소년이 상처를 받을까 봐 나쁜 모습을 감추려 하는 어른들과 그런 어른들에 맞서 솔직하게 마음속 생각을 꺼내고 질문을 던지는 소년의 모습이 어른들에게 울림을 주기도 했다. "왜 마약을 팔아요?"라고 질문했을 때 어떤 어른도 제대로 된 답을 해주지 못하다가 "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한 마디가 들려왔을 때에는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다. 누군가의 삶은 명확하게 나쁘고 착하다고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나쁜 수단을 통해 돈을 버는 부모님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는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마약을 거래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를 나쁜 어른들이라 매도해 버려도 되는 걸까? 가족들의 삼시 세끼를 위해 열심히 돈을 벌고, 사랑을 주는 부모님인데도 그들을 미워하고 외면해야 하는 걸까? 정말 복잡했다.


내가 엘리 벨이었더라면 용기 있게 나서서 진실을 마주하고, 나아질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겁쟁이 어른인 나와는 달리, 엘리 벨은 살 떨리는 무서운 살인마 앞에서도 피하지 않고 진실을 마주하려는 용기가 있었다.


외로운 소년의 곁에서 베스트 프렌드가 되어준 슬림 할아버지는 책 속에서 소년에게 꾸준히 교훈을 던져준다. 세상에는 아주 유명한 범죄자이자 탈옥수로 알려져 있는 그도 누군가에게는 착한 사람일 수 있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이 아주 흥미로웠다.


누구나 손가락질하는 무시무시한 탈옥수는 살아서도 죽은 후에도 소년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나는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나쁜 사람일 수 있다. 항상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렵다. 흑백의 논리로 누군가를 정의하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 아주 공감이 갔던 문장이었다.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슬림 할아버지에게 한 수 배울 수 있었다. "시간에 당하기 전에 시간을 해치워 버릴 것." 내가 주도적으로 시간을 쓰는 것과 수동적으로 시간에 끌려다니는 삶은 엄연히 다르다. 교도소 안에 갇혀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시간을 주도적으로 잘 쓰지 못하고 있던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 지금은 햇볕 드는 좋은 때니까, 세세한 것들을 놓치지 않으면 그 시간을 영원히 지속시킬 수 있어. "라는 슬림 할아버지의 말씀은 나의 일상을 되돌아보게 했다.


내가 그냥 대충 넘겨버렸던 하루들이 떠올랐다. 하루 종일 아침 일찍 일어나 뜨는 해를 바라보며 마음을 정화하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길을 걷고, 내 몸에 들어갈 음식을 정성스럽게 조리해서 먹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일상의 소중함을 잊고 살지는 않았나 되돌아볼 수 있었다.


앞으로는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세세히 살펴보는 눈을 가지려고 노력해야겠다. 관찰할 것이 많은 하루는 할 것이 많아 바쁘고, 깨닫는 것이 많아 즐거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큰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조금 더 배포가 큰 어른으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미워하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을 좋아할 수는 없고, 진심으로 모두의 행복을 빌어줄 수는 없다. 특히 나에게 큰 상처를 준 사람의 행복은 더욱이 빌어줄 수가 없다.


그렇지만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다 보면 나 역시 아주 우울해지고 힘들어진다. 내가 행복하려면 나에게 큰 상처를 준 사람도 때로는 용서할 수 있어야 하고, 주변 사람들과 사랑을 하면서 다시 행복해질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내가 용서한 사람이 미안한 감정을 느끼며 나에게 다시 다가와서 행복을 주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소년이 미운 어른들을 용서하고 다시 포옹을 하고 웃으며 사랑하는 장면들은 아주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소년은 거지 같은 어른들에게 큰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또 다른 어른에게 도움을 받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심지어 도심의 빈민가 골목에 사는 배트맨이 되어버린 남자에게서도 용기를 얻는다. "그냥 계속 걸어가. 로빈" 처음 보는 남자 어른의 한마디가 확신이 없던 소년에게 확신을 심어주고 용기를 준다. 세상은 상처받을 것투성이에 나쁜 면면들을 속속 감추고 있지만, 힘을 잃지 않도록 격려해 주고 사랑해 주는 존재들이 곳곳에 있어 다시금 용기를 내어 살아갈 수 있기에 참 아름다운 것 같다.


19살이 된 엘리 벨이 그를 잘 보살펴준 라일을 해친 타이터스 브로즈를 다시 만나는 장면은 불안감에 두근거리면서도 '권선징악'의 결말을 기대하게 했다. 그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요?"라고 질문하는 장면은 특히 영화 속의 명장면 같았다. 연이어 첫 페이지에서부터 등장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던 문장이 비로소 이해가기 시작했다. "너의 마지막은 죽은 솔새" 다만, 이것이 타이터스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말인지 엘리 벨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말인지를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617페이지쯤부터는 끝 페이지를 먼저 넘겨서 결말을 볼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제발 엘리 벨을 죽이지 말아 달라고, 해피엔딩으로 이야기를 마쳐달라고 속으로 기도했던 것 같다.


엘리 벨이 오래전 타이터스에게 빼앗긴 검지와 라일의 머리를 찾아내면서 이야기는 더욱 빠르게 전개된다. 소년이 너무나도 사랑했던 어른이 죽은 것이 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고 슬펐다. 그렇지만 슬픔에 잠겨 있지 않고 범죄를 알리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강인했다.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니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 존경스러웠다.


두렵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타이터스에 의해 갇힌 소년 베번을 무사히 구출해내며, 멋진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엘리 벨의 독백도 인상 깊었다. "좋은 사람은 무모하고, 용감하고, 본능적인 선택으로 움직이죠. 쉬운 일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는 거죠." 누구나 두려운 순간에서는 옳은 일보다는 쉬운 일의 유혹에 강하게 흔들린다. 그러나 엘리 벨은 과거의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처한 어린 소년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책임지고 구해냈다. 피해자였지만 곧은 시선으로 세상을 꼼꼼하게 바라보며 용감하게 자라나, 불행에 처한 아이를 구해내는 모습은 너무 감동적이었다.


끝내 타이터스 브로즈의 범죄가 온 세상에 알려지면서 연설 무대에서 끌려나가는 결말은 아주 통쾌했다. 경찰도 손을 떼라고 할 정도로 혀를 내두르는 범죄 조직을 19살 소년이 무찌를 수 있을까? 그런 결말이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의심했었는데, 내가 원하던 통쾌한 '권선징악'의 결말을 보니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오히려 현실이었더라면 이런 결말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도 했다. 악한 사람들이 선한 사람들보다 더 편하게 부를 축적하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경우도 많이 보았기에,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 끝까지 조마조마했던 것 같다.


타이터스가 끌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한 결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완 크롤이 엘리 벨을 칼로 찔렀다. 칼에 찔린 엘리 벨이 이완 크롤을 피해 힘겹게 달아나는 장면을 읽으면서부터 다시 또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제발 살아서 가족들과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평범한 청년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계속 기도하면서 읽었다.


마지막에 엘리 벨의 형 오거스트가 던진 언제나처럼 던진 한마디 "괜찮을 거야. 넌 돌아와. 항상 돌아오니까."를 읽으니 안심이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이처럼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다니! 새삼 말과 사랑의 위력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참 다행스럽게도 병원에서 무사히 눈을 뜬 엘리 벨이 "다 같이 안아요."라는 말을 할 때에는 환한 햇살이 비치는 것처럼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의 힘이 느껴졌다. 이 가족들은 위기가 닥칠 때마다 늘 다 같이 안자는 말을 한다. 말의 힘은 참 위대한 것 같다. 나도 평소 나쁘고 거친 말보다는 따뜻한 사랑이 담긴 말을 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엘리 벨은 원하던 대로 케이틀린 스파이스와 범죄 기사를 쓰는 일을 시작한다. 세세한 눈으로 세상을 보던 소년이 기억하는 모든 것을 빠짐없이 기록할 수 있게 되면서 이야기가 끝난다. 권력과 돈에 의해 묻힐 것이라 생각했던 진실은 묻히지 않고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무모하다고도 볼 수 있었던 소년의 용기 있는 선택이 세상을 바꾸었다. 소설을 통해 함께 성장하고 통쾌한 결말을 맞이할 수 있어 읽는 나도 행복했다.


너무 두려워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상처 속에 빠져 한없이 밑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우주를 삼킨 소년 엘리 벨의 이야기를 읽는다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좋은 어른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얻으면서 동행하면 아주 든든한 인생이 될 것이다. 그러한 어른들이 없다면 '우주를 삼킨 소년'과 같은 책을 통해서라도 함께 성장하고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한 편의 영화를 본 듯 빠르고 짜임새 있는 전개에 감탄했던 소설이었다. 영화로도 제작되면 꽤 인기가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