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김계영 외 옮김 / 레모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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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어머니를 전시회며 중세의 시가지로, 느긋하게, 밖으로 나가게 하는 걸까? 왜 어머니는 가난하고 불구인 사람들을 방문하는 자원 봉사 노릇을 할까? 여자로서 남편과 아이들 사이에 조용히 머무르기만 하면 안 되는 걸까? 내게 던지는 질문이라도 되는 듯, 나는 어머니가 완벽했다고 결론내렸다. 세상이란 거기에 뛰어들고 즐기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그 무엇도 우리를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어머니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42p.

작가인 아니 에르노 자신과 주위 여러 여성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묘사한 자전적 이야기. 여성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그러나 별달리 인식하지는 못하고 자연스레 지나쳤을 법한 삶의 단면들을 잡아내어 공유한다.

주인공이 다니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희생하고 눈물짓는” 어머니에 관한 도상학은 주인공이 실제로 곁에서 보고 겪은 어머니의 모습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러나 가부장적 사회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이처럼 고착화된 여성상들을 반복해서 접하며 내재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녀의 삶 전체가 잘 보여준다. 특히 학창시절에 정숙한 소녀답지 못한 욕망을 가지고 유모차를 미는 여성들을 보며 거부감을 느끼던 화자가 결혼한 후 일반적인 주부의 삶을 영위하게 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는 어떤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

어떤 형태의 욕망이건 그것을 좇는 과정에서 여성 개인이 얻는 행복과 가치는 분명 존재할 것이고 그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외모로 남성에게 선택받고 싶어 하거나 현모양처가 되고 싶어 하는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욕망의 많은 부분이 사회의 가부장 질서에 의해 억압되거나 만들어졌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때문에 내가 가진 욕망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 그저 그렇게 믿도록 학습된 것인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을 테지만, 그걸 혼자서 깨닫기는 어려워 보인다.

작가가 “소녀의 자서전” 이라고 설명하는 <얼어붙은 여자>의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주인공과 그녀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만의 감정과 고민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생각보다 보편적인 것이었음을, 나와 작가는 세대도 국가도 다르지만 여자라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비슷한 경험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옮긴이가 적었듯 비슷한 경험은 힘이 세고, 그 힘은 우리가 겪어온 일들의 부당함을 인식하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표지를 한번 더 들여다봤다. 빨강과 은색 박을 입힌 무늬들이 사회에 의해 얼어붙은 동시에 내면은 뜨겁게 끓어오르는 여자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도,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삶을 바꿔놓기 시작할 균열을 의미하는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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