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 증보판 리라이팅 클래식 1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시작은 연암이었으나, 끝은 열하였던 이야기.

 

 

 수능을 치고 얼마 지나지않아 대형 서점을 갔을 때, 이 책을 봤었다. 열하일기라. 국사 수업시간에 박지원의 저서라는 것만 배웠고, 문학 수업시간에 일야구도하기 정도만 배웠다. 욕심이 생겼다. 열하일기를 모두 읽을 자신은 없었고, 출판사의 의도대로 리라이팅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갖고 싶은 맘을 억누르며 나는 서점을 그렇게 나왔다. 언젠간 저 책을 읽겠다는 다짐과 함께.

 

 한참 힘들었다. 대학이란 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방황하고 있었으니. 그 때, 머리도 식힐 겸 책이 읽고 싶어졌다. 무슨 배짱인지 4권을 질렀다. (책 값은 5만원 가량 되었다.) 그 때, 이 책이 떠올랐다. 기억 속을 헤집어 나는 이 책을 선택했다.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물론 읽기 시작한 시기가 시험 기간인 관계로 끝까지 읽을 순 없었지만,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이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었단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렇게 방학을 맞았다.

 

 집으로 돌아오고 난 뒤에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처음은 열하일기의 내용보다 인간 박지원을 더 배려한다. 어쩌면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이 그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으로서의 박지원. 단순히 열하일기의 내용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떠했는지, 그가 열하일기를 쓰면서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느꼈는지를 알고 싶었다.

 

 박지원의 초상화. 가늘게 뜬 눈, 우람한 풍채, 흰 수염. 난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청렴결백한 선비의 모습부터, 장난스럽기까지 한 어린 아이의 모습을. 연암 박지원은 그런 사람이었다.

 

 열하일기. 단지 쪼개져 배웠던 것이 싫어 도전한 책이었다. 그리고 나는 작가가 재구성한 열하일기를 따라 가면서 연암과 함께 걷고 있었다. 중국의 광활한 대륙과 수많은 강을. 그리고 연암과 함께 그 순간 순간을 느끼고 있었다. 새로운 문물과 새로운 사람들을.

 

 『 내가 이제야 도를 알았다. 마음이 텅 비어 고요한 사람은 귀와 눈이 탈이 되지 않고, 눈과 귀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더더욱 병통이 되는 것임을. 이제 내 마부가 말에게 발을 밟혀 뒷수레에 실리고 보니, 마침내 고삐를 놓고 강물 위에 떠서 안장 위에 무릎을 올려 발을 모두자, 한번 떨어지면 그대로 강물이었다. 강물로 땅을 삼고 강물로 옷을 삼고 강물로 몸을 삼고 강물로 성정을 삼아 마움에 한 번 떨어질 각오를 하고 나자, 내 귓속에 마침내 강물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무릇 아홉 번을 건넜으되 아무 걱정 없는 것이, 마치 앉은 자리 위에서 앉고 눕고 기거하는 것만 같았다. 』

 

 잘 아는 '일야구도하기'의 절정이자 대단원이다. 어쩌면 이것이 조선시대 선비가 갖춰야 할 가장 바람직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모든 것이 썩어갈 조선 말, 연암은 홀로 그것을 지키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그는 누구에게 채찍을 가하고 싶었던 것일까. 끝없이 이어지는 물음들을 해결하기엔 내가 너무 모르는 것이 많다고 느낀다. 이제 그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려고 노력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연암으로부터 시작해서 열하로 끝난 이야기는 나에게 하고 싶었던 것에 대한 열정과 현재에 대한 반성을 하게 해 주었고, 여기 있는 나 자신에게 만족할 수 없게 만들어 주었다. 그래, 연암은 나에게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멈추지 말라고.

 

  연암의 이야기가 다음 책의 리뷰에도 계속 등장할 것 같다. 분명 그는 내가 여기서 한 번으로 다 언급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그럴 욕심조차 없으니.

 

 행복했다. 연암의 여행을 따라가는 동안, 연암이 겪었을 위험천만한 일들을 보면서도 나는 그저 빙긋이 입가에 머무는 미소를 지을 수가 없었다. 이게 작가가 말하는 열하일기 속에서 범람하는 유머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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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미숙, 몸과 우주의 유쾌한 시공간 '동의보감'을 만나다
    from 그린비출판사 2011-10-20 16:59 
    리라이팅 클래식 15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출간!!! 병처럼 낯설고 병처럼 친숙한 존재가 있을까. 병이 없는 일상은 생각하기 어렵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 역시 살아오면서 수많은 병들을 앓았다. 봄가을로 찾아오는 심한 몸살, 알레르기 비염, 복숭아 알러지로 인한 토사곽란, 임파선 결핵 등등. 하지만 한번도 병에 대해 궁금한 적이 없었다. 다만 얼른 떠나보내기에만 급급해했을 뿐. 마치 어느 먼 곳에서 실수로 들이닥친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