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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사회 -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김동춘 지음 / 돌베개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초등학교 시절, 언젠가부터 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6 * 25 기념 글짓기’ 혹은 ‘6 * 25 기념 웅변대회’였다. 이제야 생각이 났다. 그 시절엔 그저 지나치는 하루 행사였고, 초등학생인 그 누구도 거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확히 무엇을 썼고, 무엇을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는 사실은 빼놓지 않았다. 그 땐, 공산당이 무엇인줄도 몰랐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흡수 통일을 언급하곤 했다. 우리나라가 잘났으니 못난 북한을 감싸서 통일해야 한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담임선생님들은 그런 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 런지 궁금해진다. 그네들도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을까, 아니면 이런 식의 교육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꼈을까. 지금에서야 알 길이 없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어느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만들어내고 왜곡해버린 역사란 뜻이다. 이런 역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런 역사를 가르치고 배운다.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본다. 이런 말은 잘못된 역사를 알고 있는 이들에겐 해당되지 않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전쟁과 사회』는 그렇게 만들어진 역사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필자는 그 이상을 풀어놓지는 않는다. 다만, 책을 읽는 독자들이 그것을 스스로 깨달아 주길 바라고 있다. 왜곡된 역사를 부정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1장 즉, 서론의 옆에는 ‘또 다른 전쟁’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읽으면서 나는 왜 ‘6 * 25’라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보지 못했는지 내 스스로에게 물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답을 구하려 노력했다. 내가 나름대로 내릴 수 있던 답은 ‘국가 안보와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아주 철저하게 통제되어서 나로서는 그것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책에서 내리고 있는 이 결론은 나를 위로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듯 보였다. 그렇게 치부해버리기엔 내가 아직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만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사실을 말하지 못한 채, 숨겨야만 했고 혹여 알려질까 두려워했다는 사실이 나를 숨조차 쉴 수 없는 암흑으로 몰아넣었다. 그곳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그저 빛을 바라지도 못한 채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었다. 말하지 못하는 공포와 말해선 안 되는 현실이 그들을, 그리고 또 그들과 공유하기 시작한 나를 그렇게 둘러쌌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가치 판단이 섞여서도 안 되는 것들이다. 그것을 필자는 이때까지 쌓아 놓았던 탑을 무너뜨리면서 시작했다. “전쟁 중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러한 일들이 왜 일어났는가? 그러한 일들은 전쟁 후 한국정치에 어떻게 반복, 재생산되었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이들에게 말 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
필자는 너무나도 중립적인-어쩌면 사회학적인 의미의 6 * 25를 서술하다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태도로 전쟁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국가와 국민이 형성되는 토대로 존재하는 한국전쟁으로서, 새로운 정치사회의 질서를 구축하는 촉매제로서 말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료의 부족함을 언급한다. 그렇게 중립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고, 누군가에게서 언급되는 것도 막았으니 별로 놀라울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적은 자료에서 모순과 불일치 등을 찾고 사실을 재구성하면서 조금씩 깨진 파편에 불과하던 전쟁사를 끼워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충격과 놀라움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전구를 깨어버렸다. 아니, 필라멘트가 끊어져 버렸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전류는 꾸준히 통하고 있었음에도 빛을 낼 수는 없었다. 그 옆에 새로운 전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아직 모양을 알 수 없는.
피난사회에서는 모두 떠날 준비를 하고 있으며, 모두가 피난지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서로를 대하며, 권력자와 민중들 모두 어떤 질서와 규칙 속에 살아가기보다는 당장의 이익 추구와 목숨 보존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서로 버스를 먼저 타기 위해 다투고, 차를 앞질러 가기 위해 경적을 울리며 다투는 오늘날 한국인들의 행동은 서울발 마지막 열차를 타기 위해 아우성치거나, 1 * 4후퇴 당시 흥남부두에서 떠나는 배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던 50년 전 피난민들의 행동과 과연 얼마만큼이나 다른가? (본문, 65p.)
영화 한 편이 스쳐지나간다.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 속의 모습 그대로를 담은 것만 같은 구절이다. 서민들에게는 당장 살기 위해 택할 수 있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떠나느냐, 남느냐’ 사이에서 고민하던 사람들은 후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남한의 아무 준비도 되지 않은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휴전선 주위에서는 산발적인 전투가 끊이지 않고 있었고, 전면전이 발생할 가능성 역시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대규모의 인사이동이나 장병의 외출, 휴가, 장교클럽 개관식 등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믿을 수가 없었다.
군 수뇌부의 말도 안 되는 명령이나, 결의조차 지켜지지 않고, 이승만의 침착함을 지나친 무반응은 국가나 국민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는 나에게 경멸 이상의 감정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특히 책장을 넘길수록 이승만이 전쟁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려는 생각만 한 듯 했다. 자신에게 기회이자 위기인 그 순간을 그는 최대한 활용하려는 것만을 고려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험한 세파를 겪은 이들이 얻은 지혜는 강한 자의 편에 서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가슴 아픈 말이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강한 자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라니. 하지만 민중들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양 쪽 모두에게 적당히 동조해야 하고, 순간 마다 다른 판단을 해야 하는 민중들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최고 책임자인 이승만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쳤다. 그러면서도 국민들에게는 낙관적인 상황이라 거짓을 알려주었다. 나에게 유교적 군주관이 지나치게 확립되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승만이 혼자 무책임한 행동을 한 것은 국민의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것만 같다. 적어도 나는, 그가 대통령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이상 국민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주적으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미국에 기대어서 한강 다리를 폭파해가면서까지 자신의 안위를 지키려 했다는 사실은 그가 대통령의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게끔 만들었다.
국민들은 그렇게 자신의 지도자를 잃은 채로 어떤 것을 할 수 있었을까. 이승만을 비판하며 수도를 지키던 국회의원들도 있었다. 민중들은 더 이상 국가가 자신들의 보호자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피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이기주의적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었으며,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도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희생양의 정치. 이승만 대신 많은 관료들이 그 짐을 안고 죽어갔다. 그리고 모든 비난의 화살은 그네들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이승만은 북한의 남침과 미국의 늦은 원조가 전쟁의 피해를 크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제대로 국가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정권이었으므로 미국의 군사적 원조가 필요하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상황을 개선시키려는 국가 차원의 노력을 하지 않고, 미국의 원조에 일방적으로 기대기만 했다. 결국 이러한 과거는 현재까지 미국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만드는 데 한 몫을 하게 되었다. 도대체 근대 자주적 국가를 세우겠다는 목표는 어디로 간 것인가.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은 점령당했다. 약 3개월 동안 서울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인민민주주의’ 국가였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었다. 독립 직후에 생겼던 것처럼 인민위원회가 구성되기 시작하였고, 선거를 서둘렀다. 이 선거에 친일분자나 친미분자는 제외되었다. 남한의 선거보다 더 진보적인 것처럼 보이는 북한의 선거는 단일 입후보의 흑백함 선거였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고, 기권할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되면 ‘민주적’이라는 주장은 전혀 의미가 없다. 그저 형식상으로만 주권이 인민에게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남한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듯 보인다.
토지개혁도 시행되었다.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원칙에 의거하여, 경기도부터 시작된 토지개혁은 빈농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당 주도의 하향식 토지개혁과 무리한 계급 투쟁적 성격을 가졌기에 문제가 되기도 했다. 지주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농민들을 근대적 주체로 형성시키지는 못한 것이다.
고등학교 한국 근 * 현대사 수업 시간에 토지개혁에 대해 배웠던 부분이 생각났다. 남북한이 서로 다른 방법으로 토지개혁을 했고, 북한의 토지개혁이 좀 더 민중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 눈에 비친 현실은 비단 그렇지만은 못했다. 어느 쪽이 딱히 더 좋은 방향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서울이 점령되면서 북한은 반동분자를 숙청하기 시작했다. 인민재판이 곳곳에서 열렸고, 감금과 처벌이 이어졌다. 이런 과정에서 생과 사의 결정이 이념적 기준에서가 아니라, 사적이고 우연한 요소에 좌우되기도 했다.
남한 역시 서울 수복 후에 부역자를 처벌하였다. 피난을 갔던 사람이나, 가지 않았더라도 부역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간주되었고, 부역을 한 사람들은 빨갱이의 낙인이 찍힌 채, 피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연좌제 때문에 본인뿐만 아니라 자손들에게까지 화가 미쳤다.
전쟁은 군인을 지배자의 위치로 승격시킨다. 제정 집행의 절차는 무시되고 무조건적인 복종만 있을 뿐이다. 북한에서는 이러한 전시체제에 부합하는 기관으로서 군사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전시동원령’을 통해 수많은 의용군들이 반 자원 반 강제로 모였고, 뒤따라 인민군 원호 사업도 실시되었다. 이러한 전시 동원정책은 토지개혁에서 의도한 지지 기반의 확대정책과 상충되었다. ‘인민’을 위한다는 전쟁의 명분은 점점 퇴색되었으며, 많은 생명과 재산은 모두 한 쪽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남한 역시 많은 사람들을 징집하였으며, 전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관리들 때문에 징집된 이들조차 포로 취급을 받으며 죽어갔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가? 이전의 교육에선 당연히 ‘북한은 그르고, 남한만이 옳다’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어떤가. 양 쪽 모두 다수의 민중들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정립해야만 했는가? 그래서 그 전쟁이 끝난 후에 하나의 이데올로기는 정립되었는가? 결과를 위해 정당화될 수 있는 희생이었나? 이 모든 물음에 나는 아니라고 밖에 대답할 수 없다.
신격화된 국가는 과연 민중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무조건적인 신도가 되기를 요구하며, 그 믿음을 강요한다. 다른 신을 믿는다는 것은 허용되지 않으며, 이러한 이유로 죽음으로까지 내몬다. 민주주의. 형태가 어떠했건 간에 민주주의라면 과연 위와 같이 할 수 있는 것인가? 개인의 자유와 의지는 없고, 오로지 국가라는 신을 위한 일방적인 숭배 의무만 있을 따름인 이 전쟁에서 과연 민중들은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대량 학살이란 정당한 법적 절차나 재판 절차를 거치지 않고서 국가권력 및 그와 연관된 권력체가 정치적 이유에 의해 자신과 적대하는 비무장 민간인 집단을 일방적이고 의도적으로 살해하는 것” (본문, 205p.)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어떻게 ‘국가권력 및 그와 연관된 권력체’가 ‘자신과 적대적인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비무장 민간인’을 ‘집단’적으로 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전쟁이 학살이 발생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환경을 조성해준다고 해도 이러한 학살의 정의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제주 4 * 3 항쟁과 관련된 비디오를 시청하면서, 나는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잘은 모르지만, 그네들이 숨기고 살아야만 했던 세월의 아픔이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사상이 다르고, 국가가 원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사람도 있지만, 전혀 관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총살된 많은 사람들이 내 곁으로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지리산 주변에서는 유격대의 산발적인 공격과 우익의 살해에 맞선 보복작전으로 수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당했다. 이는 마치 그 지역의 모든 주민을 잠재적인 적으로 취급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느 국가가 자신의 국민을 신뢰하지 못한 채, 적으로 몰 수 있단 말인가.
남한에서는 좌익사범을 전향시켜 ‘국민보도연맹’에 가입하게 했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된 직후, 그들이 북한에 협력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보도연맹원들을 학살했다. 그네들은 모이라는 말을 듣고 단순한 사상교육 쯤으로 생각하고 의심을 갖지도 않았다. 그리고 모인 그 자리에서 죽어갔다. 보도연맹원들이 북한에 협력할지의 여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설사 협력한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될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향하고 있었던 총부리는 방향을 바꾸지 않았고, 그대로 방아쇠는 당겨졌다.
그 보도연맹원들 중에는 그저 주위의 권유나 강압으로 가입했던 사람도 있었고, 비료나 식량을 얻기 위해 손도장만 찍었던 사람도 있었다. 제대로 심사조차 하지 않고 가입시켜 놓고서는 마찬가지로 검토조차 하지 않고 죽였다. ‘살해’라는 단어의 무게가 이렇게 가볍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심지어 만화책을 볼 때도 느끼지 못했을 정도의 가벼움이었다.
‘국가 건설’을 위한 ‘빨갱이 청소’라. 그럼 한 번 다시 묻고 싶다. ‘빨갱이’라는 이름 아래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그 ‘국가’를 누릴 정도의 조건도 갖추기 못한 것인가. 그럼 가족이 ‘빨갱이’였던 더 많은 사람들에게도 역시 ‘국가’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인가. 그렇게 해서 건설된 ‘국가’는 과연 남은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사실 그 누구도 답해줄 수 없는 물음이다. 내가 이렇게 계속해서 묻는 물음들은 단지 역사에 거는 태클일 뿐이라는 사실은 내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대해 무수한 회의 밖에는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아직 감추어진 비밀들은 남은 당시에 그 상황을 지켜보던 사람들까지 옥죄어오고 있다. 벗어날 수 없는 과거의 기억이 되었고, 벗어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평화는 올 수 있는 것일까. ‘평화통일’은 장애물을 넘을 수 있을까. 어쩌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다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모두에게 알리고, 국민이 국가의 정체성을 바르게 확립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상대에 의해 대립 관계에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어야 하고, 상대를 일방적으로 무너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장애물은 조금씩 소실되어 갈 것이다.
보고서를 쓰기위해 중앙도서관에서 한 권의 책을 더 빌렸다. 『한국전쟁 :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저자는 이데올로기를 걷어내기 위해 ‘한국전쟁’이라고 명명한다고 말한다.
필자는 이 전쟁은 시작되어서는 안 될 전쟁이었지만 시작되었고, 끝나야 했는데도 끝나지 않은, 그러나 반드시 끝나야만 하는 전쟁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전쟁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고, 극복해야만 하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참고문헌, 9p.)
맞는 말이다. 저기에서 틀린 구절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내 성향 상 ‘단’ 한 군데 지적하고 싶다. ‘극복’ 물론, 고난과 시련으로 점철된 힘든 세월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극복이란 것은 무언가 부족하단 느낌이 든다.
한국전쟁 : 한반도는 외세의 힘에 의해서만 분단되었는가? 우리에게는 아무 책임도 없는가?
한국 현대사 : 한국군 전체의 5%를 동원한 5 * 16 쿠데타의 성공은 미국의 방조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의 잘못 때문인가?
현재의 한국 사회 : 한국의 대외관계를 앞으로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 것인가? 외세에 의해 분단되고 세계 냉전이 한국전쟁의 한 요인이 되었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 외세를 비난하고만 있으면 대외관계 문제가 모두 풀리는가? (참고문헌, 382p.)
수업시간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느 정도 학습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름대로의 관점을 만들고 다시 역사를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과제는 그 관점을 적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 같다.
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 모든 견고한 것은 공기 속에 사라지고. 막스 베버가 한 말이란다. 사회학 입문 시간에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근대 자본에 의해 고대, 중세의 것들은 사라졌다고. 나는 필기를 하다가, 순간 펜을 떨어뜨렸다. 견고한 것조차 공기 속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나를 엄습해오는 것을 느꼈다.
형체도 없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 이렇게 방관하고 있는 ‘한국전쟁’은 모든 사람의 기억 속에서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두려워졌다. 이제야 아주 일부분을 알았을 뿐인데. 아직 태클을 걸었던 ‘극복’조차 하지 못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맨 마지막 단계까지 다다르지도 못했는데.
내재화. 가장 필요한 것이다. 단정 짓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감히 단정 지으련다. 단지 ‘극복’해서 사라지게 만들 것이 아니라, ‘내재화’해서 영원히 안고가야 한다고.
황석영의 소설 『손님』을 꽤나 어릴 적에 읽었다. 그리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몇 번이고 포기했다. 이제야, 그 혼령들의 마음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것 같다. 그리고 그 소설 속의 모습을 실감할 수 있다. 나도 내재화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