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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당신이 살았던 날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보통은 외면하며 살아간다. 삶이 중요하다 생각하지만 정말 삶이 중요한 사람은 죽음도 깊이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이 없는 듯 살아간다.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현실에 집착한다. 그러다 막상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당황한다. 너무 갑자기 찾아온 죽음에 대해 준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후회하며.
얼마나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 죽음을 알 수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삶을 알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안다. 죽음을 통해 깨달은 사람은, 죽음을 통해 삶을 본 이들은 다르다. 이 책에 나오는 이들처럼. 그리고 저자처럼.
저자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유대인이며 의학도였다. 그러다 프랑스로 가서 언론인이 되었고 또 미국으로 가서 랍비가 되었다. 그녀는 이 세 가지 일이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돕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너무 의미 있고 공감되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책에 나온 에피소드처럼 일반적인 종교인이 아닌 타인의 말과 삶을 깊이 공감하며 이해하고 글로 풀어내는 능력을 보여준다.
책이 쉽지는 않았다. 문장이나 내용이 어려웠다기보다는 한번에 와닿지 않았다. 죽음에 대해,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던 나의 무심함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책을 읽다말고 몇 번을 곱씹으며 생각해봤다. 그리고 다시 읽어봤다. 그리고 그 속에 드러난 삶과 죽음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을 세속적인 랍비라고 표현했다. 세속주의는 신앙과 무신앙을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는 이런 것과 무관하다고 말했다.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세속주의는 하늘이 비어있다는 확신이나 하늘에 누군가 있다는 확신에 기반하지 않고 결코 들어간 적이 없는 땅의 보호, 이 땅에 우리의 것에 속하지 않는 믿음을 위한 자리가 항상 남아있다는 의식에 기반한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프랑스에 살고 있지만 프랑스에 속하지 않은, 세속적이지만 세속적이지만은 않은 그녀의 삶에서 진정한 살아있는 종교인이자 인간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녀의 친구 아리안과의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다. 아리안은 죽음을 앞두고 그녀에게 랍비와 친구 두 역할을 동시에 부탁했다. 지극히 어렵고 불가능한 일임에도 그녀는 그 역할을 감당했다. 그리고 친구의 죽음이 가까워질 때마다 기꺼이 두 역할을 감당했다. 그 과정을 자세히 그리며 죽음을 다시 한번 간접적으로나마 보게 되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운 죽음인가. 랍비라는 존재는(혹은 종교인은) 무너진 세상의 혼돈 속에서 안정의 가능성을, 지속의 약속을 나타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만 살 수 없다. 친구가 필요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내 삶의 추억을 공유하며 아파하며 기억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늘 그랬지만 좋은 책을 만나는 건 행운이면서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삶을 조금 더 전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