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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인문학 - 미셸 파스투로가 들려주는 색의 비하인드 스토리
미셸 파스투로 지음, 고봉만 옮김, 도미니크 시모네 대담 / 미술문화 / 2020년 3월
평점 :
사람은 누구가 좋아하거나 선호하는 색깔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바뀔 수도 있지만 대체로 자신이 선호하는 색깔의 옷이나 가구, 가전제품 등 생활 전반에 걸쳐 자신의 취향이 반영된다. 나 역시 어릴 때는 녹색을 좋아했으나 나이가 들면서 빨강과 파랑이 좋아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좋아하는 색이 주는 기분 좋음과 안정감은 생각보다 영향력이 크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색깔의 역사와 그 색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의미에 대해 늘 궁금했었다.
저자인 미셸 파스투로는 중세 문장학의 대가이자 색채 분야에 관한 최초의 국제적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색체 전문가라. 그는 색의 역사를 1968년부터 연구하여 잇달아 논문을 발표하고 강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색의 역사에 대한 저작을 발표하여 대중들에게도 색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과 인문학적 지식들을 알리는데 힘쓰고 있다.
책의 구성은 이러하다. 파랑, 빨강, 하양, 초록, 노랑, 검정, 그리고 중간색으로 불리는 그레이, 주황, 핑크 등의 색깔을 차례대로 소개하며 색깔이 가지고 있는 역사들과 관련 자료(예술 작품, 주요 역사적 사진 등)을 다양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서평에서 한 가지씩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는 내내 우리가 아는 색깔에 이토록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랍고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파랑은 일반적으로 유순하고 순종적인 색으로 분류된다. 파랑은 경치 속으로 섞여 사라지며 주목받기를 원치 않는 매우 현명한 색이다. 유럽인들은 대체로 파랑을 좋아하는데 이런 온건하고 중립적인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경멸받는 색이기도 했다.
그에 비해 빨강은 소심한 파랑과 달리 오만하고 야심만만하며 권력 지향적이다. 한마디로 주목받고 싶은 색, 다른 모든 색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폭력과 분노, 범죄와 과오로 얼룩진 고약한 색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이중성을 띠고 있는 색이었다.
녹색은 어떠한가. 자연과 청결 등 건전한 이미지는 모두 녹색이다. 하지만 녹색은 겉보기와 달리 자신의 속내를 감춘 색이다. 흉계를 꾸미고 있고 음흉하고 물밑 협상을 선호하는 위선적이며 불안전한 색. 그래서 요즘 시대에 더 선호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화가 빈센트 반고흐의 색, 노랑은 사실 많은 이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노랑은 이방인이며 무국적자의 색깔이다. (유태인의 상징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노랑을 경계하며 불명예스럽게 여긴다.
이처럼 색은 시대마다 전혀 다른 대우를 받으며 변모해왔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가 선호하는 색을 관찰하다보면 이 시대의 사회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것 같다. 매일 접하는 다양한 색깔을 통해 인문학적인 지식과 역사의 흐름을 엿볼 수 있었던 좋은 양질의 책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