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왔는가 - 사회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을 위한 빈곤의 인류학
조문영 엮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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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 2년 정도 일주일에 한두번 노숙자들에게 라면과 밥을 전해주던 봉사를 했다. 일종의 동아리에서 하던 행사였고 어린 나이에 남을 돕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 이후 그런 종류의 봉사는 많이 하지 못했지만 그때의 경험은 아직도 내게 나름의 놀람과 특별함으로 남아있다. 처음으로 노숙자들을 가까이서 보았고 대화를 주고받으며 잠깐이나마 그분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고 내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좁은 우물이었는지를 실감했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동안 내가 외면했던 가난들. 그들의 적나라한 삶을 직면하는 일이 고통스러워 눈을 감아야했던 나의 비겁함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 했다. 나 역시 심각한 가난으로 힘겨웠던 시간이 있었지만 책에 나오는 가난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런 저런 이유로 책을 읽으며 다시 그 가난에 눈을 부릅뜨고 그들의 삶과 함께 해야 함을 느꼈다. 책머리에서도 저자는 가난을 외면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그럼에도 끊임없이 소통하고 관심을 가지며 연대하기를 요청한다.

책을 전반적으로 기획하고 엮은 조문영 교수는 연세대에서 문화인류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빈곤의 인류학이란 타이틀로 강의를 했다. 그리고 그 강의에 참여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지금 대한민국에서 반 빈곤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한 내용이 이 책에 담겨있다.

책은 총 열명의 활동가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논골신용협동조합 유영우, 난곡사랑의집 배지용, 관악사회복지 은빛사랑방 김순복, 동자동 사랑방마을 주민협동회 선동수, 홈리스행동 이동현, 노들장애인야학 한명희,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최인기,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공기 등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활동 배경과 인터뷰를 담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무거워서 몇 번이고 책을 덮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 대해 무지했던 나 자신이 한심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여전히 바뀌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기도 했고 내가 뭘 할 수 있나 하는 자괴감 혹은 무기력함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책에 나오는 활동가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그럼에도 소신을 가지고 조금씩 소리를 내고 연대하며 더 나은 세상과 사회를 이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암울했던 독재시절보다는 나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세상은 자신의 것만 챙기는 이기주의로 가득하고 정부나 국회, 그리고 여론은 그들에게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 주기는커녕 자신의 잇속이나 인기를 얻기 위한 모션만 취할 때가 더 많다. 어찌하겠나. 한번도 그들은 달라진 적이 없는데. 어쩔 수 없이 한 명이라도 더 내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기대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열심히 뛰는 수밖에.

 

지금도 그렇지만 아주 오랫동안 대한민국에서는 조금만 사회문제, 인권, 노동, 빈민활동 등에 목소리를 높여도 좌익, 빨갱이라는 프레임을 뒤집어 씌어 막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이 어떻게 되는 나와 내가 속한 곳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가 무너지면 나도 곧 무너진다. 그를 살리는 길이 내가 사는 길이다. 따라서 가난한 이들을 돌아보는 것은 결국에는 나를 돌아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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