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레져 > 말로 다할 수 없는 둘만의 사랑이었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날 내가 해주는 음식을 맛있게 먹던 남편이 이혼을 해야 겠다고 말한다. 스물 세 살 짜리 여자의 몸에서 자신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말도 건넨다. 그러면서 그는 배고프다고 밥을 해달라고 한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카메라는 서서히 이동하여 잘 나가는 인기 작가의 집에 머문다. 오래전 나를 버리고 떠났던 옛 연인이 나타난다. 마음이 들떠 있던 작가에게 옛연인이 건넨 말은, 자신의 파산을 소재로 하여 작품으로 써달라는 것, 소재를 제공하였으니 돈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는 그 말을 듣고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은?

또 다른 집에 도착한 카메라는 갑자기 결혼하겠다고 한 여동생이 남편감을 데리고 온다. 낡고 작은 집에 흘러들어온 남자의 기운에 황홀해져 문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언니. 마치 전생에서부터 어렴풋 알고 있었던 느낌에 사로잡혀 어쩔 줄을 몰라한다. 언니의 마음은 질투와 원망을 제치고 즐거움, 호기심, 흥분으로 가득차 버렸다. 사랑하는 이들은 그들만의 꿈을 꾼다. 또 다른 이들이 있다. 그 자리에 그들만의 사랑의 관을 묻고 그 사랑은 아무도 모르기를 바라는 이모와 조카. 그 위에 사람의 눈길을 끌지 않는 풀들이 자라난다면 더 좋을 것이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둘만의 사랑이었네
우리 누운 관 위에 풀이 피어나는 날에도
이 사랑 아는 이 없으리

조제... 영화 때문에 집어들긴 했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단편집이라는 것말고는 작가도 낯설었고 영화가 아니었다면, 누군가 권유 하지 않으면 읽어보지도 않았을 거다. 이런 생각을 하니 아찔하기 까지 하다. 안 읽었으면 큰일 날 뻔 했네, 하는 안심. 단편집 앞에서 나는 황홀경을 맛보기도 한다.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이 흐르는 단편은 한 곳으로 길게 흐르는 장편 보다 더 매력적이다.

아홉 개의 카메라가 머무는 아홉 개의 단편은 크게 놀랄 것도 없는 세상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 감동 받고, 무책임한 말에 상처 받고, 거짓말도 좀 하고, 폼 잡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 구겨진 셔츠를 그대로 입고 있어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구겨진 셔츠 조차도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말하는 그들은 너무 아름다웠다. 겨울의 얼굴이 비치는 즈음, 시시하게 첫눈이 사라진 날에 연애 소설이 읽고 싶다면, 이 소설이 제격이지 싶다.

세상을 좀 더 넓게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번번이 보수를 지켰고, 편견을 버리지 않았으며 이기와 개인주의를 품고 있었다. 그런데 세상은 나보다 확실히 넓긴 넓은 것이 한 가지의 길에서만 헤매고 있지 않다는 거다. 다나베 세이코의 연애 소설들은 남녀간의 사랑을 세상으로 확장시켜 놓았다. 그리고 일반적인 슬픔이나 결핍으로 분류되버린, 이혼이나 독신녀, 장애인들의 조금 다른 모양들이 아무런 문제꺼리도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불편할 테지만, 그게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 안에서 너의 기쁨을 찾으라고, 너에게 주어진 짐을 찾고 주어진 사랑을 찾으라고 말한다. 나는 그런 강요가 좋았다. 시큰둥하게 별 거 아니라고 말하는데 마음이 편안해졌다. 기대했던 감정을 단번에 허물기도 하면서 인생의 시간은 늘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며 그게 사는 재미일지도 모른다고 정에, 사랑에 연연하지 말라고도 한다. 그 짧은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와 은유에 마음을 빼앗긴 건 당연한 일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운명적인 사랑은 없다는 게 내 공식적인(?) 입장이다.

내가 지금 여기서 진정으로 이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혹시 이 사람을 못 만났더라면 또 다른 비슷한 사람을 만나

비슷한 방식과 전개로 사랑을 하고 있을 거란 얘기다.

물론 그 사람의 됨됨이의 모자라고 넘치는 차이에 따라

내가 만들로 쏟아부어야 될 환상의 함량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결국 그 아웃풋은 비슷하지 않겠는가, 하는게

나의 별 재미없고 현학적인 사랑관이다.

운명인 게 있다면 그것은 각자의 성격뿐이다.

 에로스적 사랑이란 기본적으로, 자족을 위한 자발적 정신병이라는 것도

내 공식적인 사랑관이다. 아니면 성욕의 세련된 발현이거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