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네 집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22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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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낭만을 말하기에 박완서는 지나치게 냉소적인가 하였다.

물론 그의 냉소는 공허한 치기가 아니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보는 인간의, 

'그럼에도 행복하고 싶은' 안간힘으로 느껴지곤 한다.

그 안간힘에 균열이 나는 순간 -

뻔히 보이는 불확실성에로 투신하게 만들고 마는 것이

사랑이라는 감정의 힘이 아닐까.  

<그 남자네 집>은 잊을 수 없는 사랑의 무게와 삶의 영원한 중력 사이의 교차를 그려낸

우리 시대 마지막 걸작이다.



종로 거리가 완전히 파괴되고 시민들은 거의 다 피난을 가서 주택가에도 사람 사는 집이 얼마 안되던 전시에 명동의 은성한 불빛은 비현실적이었다. 우리는 부나비처럼 불빛 안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서서히 내 눈에도 거미줄이 쳐지기 시작했다. 



그런 것들을 보고도 그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본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앞으로 보긴 보아도 아무것도 못 느낄 것 같았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무의미는 또 어찌 견딜 것인가. 



내가 못 받아들이겠는 건 그의 사과가 아니라 내 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현실 전체였다. 



우리의 포옹은 내가 꿈꾸던 포옹하고도 욕망하던 포옹하고도 달랐다. 우리의 포옹은 물처럼 담담하고 완벽했다.

우리의 결별은 그것으로 족했다.




굳게 닫힌 문이 일생에 단 한 번, 터져버리듯 열어젖혀져 

이내 저의 육중한 관성으로 결국 닫혀 버리더라도,

분명히 맞이한 빛의 열렬함이 눈을 감아도 떠오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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