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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열대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31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지음, 박옥줄 옮김 / 한길사 / 1998년 6월
평점 :
레비스트로스는 그의 눈으로 그가 도착한 땅을 밟아나가며 보여주고, 어쩌면 열거하고 다행히도 생각한다. 나는 레비스트로스의 뒤를 열심히 쫓아간다. 그의 눈으로 인도와 브라질을 바라본다. 한 사람의 생각을, 기록을, 이렇게 덤벙덤벙 읽어내고 판단해도 되는 걸까? 그렇다고 꼼꼼하게 체크하고 생각하면 뭐가 달라질까? 그래도 참 미안하다.
아, 그래. 레비-스트로스와 같은 대단한 인류학자도 어쩔 수 없는 서구인이었다. 제목은 참 잘 지었다. 레비스트로스는 비서구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더럽고, 가난하고, 비참하다. 그의 눈으로 바라본 열대는 참 슬프다. 나라 이름만 바꾸면 50년 전의 한국인 것 같아 기분나쁘다. 하지만 레비스트로스가 보기에 서구도 별 거 없다. 세계는 단지 자연과 비자연으로 나누어지며, 인간세계는 다 거기서 거기다. 변화하는 모습만을 보일 뿐이다. 무엇이 야만이고 무엇이 문명인가? 문명이 아니라 문화라고 설명한다. 아니, 어쩌면레비스트로스에게 그것은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정도의 문제일 뿐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인도의 그 부랑자들, 아니 인도의 생활인들을 지긋지긋해할까? 안쓰러워할까? 그들에게는 당연하고 어쩌면 당당한 구걸. 그들은 종속되기를 원한다. 왜? 오랜 역사를 거쳐 인도의 모든 것은 소모되었다. 그들 스스로 영국의 착취 때문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영국의 착취에 의해서? 아니면 자연스러운 귀결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조금 더 빨리 찾아온 것 뿐. 레비스트로스는 아니라고 하지만 이것은 계급의 문제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긴장의 문제이다.
'살아가는 데는 아주 조금만으로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초자연과의 강인하고도 개인적인 유대를 외면한 결과가 제국주의인가? 우리가 '손수건 안의 인생'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혹시 자본주의는 인간본성일까? 레비스트로스는 그렇게 아시아를 통해 미래를 불안해하며 '인간이 자기 세계와 호흡을 같이하던 시대', '자유의 행사와 자유의 표상 사이에 적절한 관계가 존재하던 시대'를 그리워한다. 지금은 '영상'으로 남았을 뿐이더라도...
레비스트로스의 이 기행의 기록은 챠웅 사원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불교 사원에 대한 기록으로 끝을 맺기 때문이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 그가 의도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이 책 전체를 분석이 아니라 그가 슬프다고 이야기하는 열대를 통해서 인간 사회를 명상하려는 시도인 것 같이 보이게 한다. 그가 열대를 바라보며 느낀 슬픔이 힘.이.되.는.슬.픔.이었으면 한다. 레비스트로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되었고, 또 인간없이 끝나'겠지만 노예상태의 길과는 반대되는 길로 향한 아치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