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한국작가의 추리소설을 만났다. 왠지모를 뿌듯함과 함께 더욱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내려간 책. 첫 장부터 가볍게 넘어가는 책장과 순식간에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좋았다. 과연 그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것이고 무슨일이 벌어진 것일까 하는 궁금증과 기대감이 증폭되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후반부를 향해갈 수록 너무 많은 인물이 얽혀있고 또한 그 인물들마저 표면상 전부 드러난 것이 아니고 이런저런 여러가지 사건들이 맞물리며 이야기가 합쳐지다보니 다소 헷갈리기도 하고 속시원한 결말을 원한 나로서는 궁금증만 한 아름 남겨진 기분이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궁금증을 남기는 인물이나 이야기는 다음권(백용준 형사 시리즈 3부작 마지막권)에서 보다 확실하게 들려줄 듯해 기대된다.
좋아하는 추리/미스터리소설 작가? 라는 질문을 들으면 자동적으로 일본작가 몇몇이 떠오른다. 또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추리소설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이기도 하고. 그의 글은 추리에 'ㅊ'자도 관심없던 내게 추리소설만의 긴장감과 즐거움을 알게 해주었고, 장르소설이 이토록 매력적이면서도 오랜 여운을 안겨주기도 한다는걸 알았다. 한국에도 어서 멋진 추리/미스터리소설 작가가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는 1人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 날이 멀지 않았음을 알겠다.
『죽어야 사는 남자』는 아주 섬뜩하고 정교한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있다. 정말 대한민국 주민등록관리 시스템이 그토록 허술하고 범죄에 악용되고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걸 보면 이 책이 아주 사실적이면서도 실제 일어날 법한 사건이기에 더욱 두렵게 다가온 듯하다. 10년간 노숙자 생활을 해오던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새로운 시작을 결심하고 말소된 주민등록증을 살리려하지만 그 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졸지에 자신이 살인범이 되어버려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니, 그가 아무리 인생을 막 살고 거의 포기상태에 이르렀다지만 살인을 저지를만큼 절박하지도, 또한 악랄하지도 않다. 남자는 결심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누명을 벗고야 말겠다고....
10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살인범을 잡기위해 백용준과 여러형사가 사건의 뒤를 캐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캐내면 캐낼 수록 더욱 미궁으로 빠지게되고 이것이 단순 살인사건이 아닌 어마어마한 인물들이 연관된 깊이를 알 수 없을만큼 끔찍하고 정교한 살인사건임을 알게된다. 한 남자의 죽음으로 인해 시작된 살인사건이 수십구의 사체가 발견되고 동료들이 처참한 죽음을 당하고 사랑하는 연인들이 헤어지게되는 결과를 낳는다. 악당과 손잡은 형사가 등장하는가하면 형사들을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장난을 쳐대는 능구렁이같은 등장인물도 나온다. 반면 사건에 열혈정신으로 뛰어들어 두발벗고 나서는 귀여우면서도 황당한 인물이 등장하기도하고 악녀의 끝을 보여주는 미스터리한 여인도 나와 내 궁금증을 더욱 자아냈다. 과연 그녀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살아가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던져준 책. 남자와 여자, 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숨가쁘게 따라가다보니 결국엔 진정한 삶에대한 문제를 생각해보게된다. 『합작-살인을 위한 살인』에 이은 백용준형사 시리즈의 두번째 이야기인 『죽어야 사는 남자』에서 작가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무엇일까 곰곰히 되짚어본다. 단순히 즐기기만으로도 충분한 소설이지만 그 내면에 숨겨진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찾아내고싶다. 이제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를 하루라도 빨리 만나길 바라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