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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미 오브 갓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2 ㅣ 아서 왕 연대기 2
버나드 콘웰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처음 아서왕 연대기 1권에 해당하는 『윈터킹』을 읽을적엔 생경한 이름들과 장소에 애를 먹었다. 몇번씩 앞장으로 돌아가 등장인물을 살피고 지도의 그림도 뚫어져라 쳐다봤다. 덕분에 2권인 『에너미 오브 갓』에서는 보다 수월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여전히 헷갈리는 인물들이 등장해 날 괴롭혔지만 몰입엔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이야기는 더욱 깊이있어지고 맛깔스러워졌다. 여전히 아서의 우둔함에 혀를 차기도 하고 이 책이 아서왕의 이야기 인지 그의 친구 데르벨 카다른 장군의 무용담인지 다소 헷갈리기도 하였다.
[우리는 전투에서 이겼다.
이그레인은 더 자세한 얘기를 원할 것이다. 그녀는 위대한 영웅담을 좋아한다. 물론 그곳에도 영웅들은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겁쟁이들도 있고 두려움에 바지를 적시면서도 끝내 방패벽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적의 목숨을 빼앗지는 못했으나 제 목숨을 걸고 방어한 이도 있으며, 시인들에게 무용을 표현할 새로운 과제를 던져준 이들도 있었다. 간단히 말해, 그건 전투였다. 친구들이 죽었다. (........) 친구들이 부상했다. 퀼후흐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리고 갤러해드, 트리스탄, 아서처럼 상처 하나 없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도끼에 왼쪽 어깨를 맞았다. p. 265]
여전히 전투신에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을만큼 흥미진진하고, 아서의 전사들이 용맹스러운 모습을 보일때면 덩달아 희열을 느낀다. 브리튼 전우회가 모여 원탁의 서약이 맺어짐으로써 평화를 약속하고 친분을 다지는 모습에 더없이 흐뭇해하고 기뻐하는 아서를 보며 씁쓸한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후 몇년간 황금시대와도 같은 시간이 이어지지만 그것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숨고르기 같은 전조전에 불과했다.
책의 재미와 매력을 한층 끓어올려주는 것은 바로 유머러스한 문장력에 있다. 어느순간 쿡쿡 거리는 웃음을 자아내는 대사들이 있어 반복해 읽기도 한다. 이야기 곳곳에 신들의 숨겨진 의도와 능력이 비추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신들이 아닌 인간들의 이야기로 꾸며지고있다. 그러하기에 허왕되지도 않고 미심쩍은 부분도 없으며 과장되게 여겨지는 부분도 미미하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나 신들이 함께 하지만 정작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으니 멀린이 솥을 찾고 13가지 보물을 모두 모아도 브리튼으로 신들을 불러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드루이드인 멀린과 니무에를 비롯한 수많은 존재들이 마법과 주술을 부리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보여주는 대부분은 지혜로운 꾀에 지나지 않을 경우가 많다. 예로, 색슨족 앨레와의 전투에서 색슨족 전투견들을 물리진 멀린과 니무에의 기막힌 방법엔 빙그레 미소가 지어질 따름이었다.
아서는 기존 이미지와는 달랐다. 전설적 영웅 이미지가 강했던 예전의 아서는 잊어라!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막막함 앞에서 고뇌하고 자신의 부하들을 구해내지 못하는가 하면, 사랑앞에 한없이 나약해지기도 한다. 물론 탁월한 전술과 용맹스러움,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자신의 사람을 가려내고 그를 끝까지 믿음으로써 신의를 저버리는 않는 우직함을 갖췄음을 물론이다. 인간적인 아서, 신적인 존재가 아닌 우리와 똑같이 고민하고 좌절하며 사랑하는 이들과의 평화를 꿈꾸는 아서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