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희정 옮김 / 지혜정원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어쩌면, 인간의 내면을 이토록 지독하게 파헤쳐 들어갈 수가 있을까. 읽는내내 심장이 조여오고 한없이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에 휩싸였다. 책이 중반을 넘어갈 수록 머리도 지끈거리고 마치 내가 그녀가 된양 힘겨운 느낌이 밀려왔다. 어느날 갑자기, 느닷없이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 무책임하고 자기중심적인 남편에게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어린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직업도 없는 아내에게 모든걸 떠넘긴채 그렇게 가버렸다. 
 

["나는 지쳤고, 지쳤고, 지쳤다." 큰소리로 외쳤지만 목소리는 금방 사그라졌다. 목구멍에서만 울리는 것 같았고 내가 발음하자마자 소멸하여 버렸다. 아주 멀리서 일라리아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엄마, 돌아와! 엄마!" 불안에 떠는 작은 인간의 목소리였다.  (........)  아이는 허공에 펼쳐진 길쭉한 난간이 무서웠을 것이다. 밖으로 튕겨 나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진심으로 나를 애타게 찾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유가 불 위에서 타버렸거나 모카포트가 폭발했거나 가스가 온 집 안에 찼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서둘러 가야 하지? 아이들에겐 내가 필요하겠지만, 나는 아이에대한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데 말이지. 마리오도 그랬다. 일라리아와 잔니가 필요하지 않기에 카를라와 살러 간 것이다.   p.140~141]
버림받은 여인의 내면적 심리묘사가 처절하게 다가온다. 남편에 대한 배신감, 분노, 미련, 사랑, 기대, 절망, 체념 등의 모든 감정이 그녀를 휘몰아쳤다. 자신이 온전히 책임져야할 아이들을 외면한채(엄마를 찾는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걸 알면서도 어떻게 해야하는지 방법을 잊어버린 그녀의 모습이 슬프다.) 아픔을 추스를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모습이 너무도 선연하게 다가온다. 예고도 없이 닥쳐온 불행앞에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심각한 정신적 혼란을 겪는 주인공은 공황장애에 빠져든 듯하다.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중요한 순서가 무엇인지, 아이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죽어가는 개를 살릴 방법은 없는지, 아래층 남자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한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길, 그래서 돌아선 남편에게 평온한 일상을 보여주길 바랐다. 아슬아슬 위태로운 그녀의 모습들에서 심한 불안감을 느꼈다. 툭 하고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만같았다. 벌써 모든것이 무너져버린 그녀가 더이상은 일어설 수 없을 것같은 그런기분.... 가만히 손을 잡고 어깨를 감싸안아주고싶은 기분. 그녀의 삶이 다시 제자리를 찾길 바라고 또 바랐다.
 

한 생명의 죽음으로 인해 서서히 일상으로 회복되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들의 새로운 삶에대한 이기적인 적응력을 함께하면서 '그래, 이런게 일상이구나. 이렇게 헤쳐나오면 되는거야.'하며 나를 위로했다. 끝없는 슬픔에 휩싸였을때 그곳에서 발을 빼내고 다시 몸을 일으키기란 여간 힘든것이 아니다. 믿고 의지하며 평생을 함께하리라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아픔은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듯하다. 가정은 내 소중한 하나의 세계이며 그것을 깨뜨린 사람에 대한 용서는 또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것인가. 주인공의 모습을 따라가면서 힘겨운 마음도 들었지만, 마지막엔 그녀로 인해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이같은 슬픔이 절대 찾아오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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