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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예보
차인표 지음 / 해냄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가슴찡한 책 한권을 만났다. 고되고 힘든 절망의 끝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이렇게 재밌게 풀어낼 수 있다니, 작가의 글솜씨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세 남자의 각기 다르지만, 어깨위에 짊어진 인생의 무게만큼은 천근만근 똑같은 인생사를 들여다보며, 마지막엔 '그래도 이 세상은 한번 살아볼 만 하지 않은가!' 하는 위안을 얻게된다.
노숙자의 인생을 살고있는 첫번째 주인공 나고단 씨. 그의 이름만큼이나 그의 인생길은 고난의 연속이니 고단한 인생을 이제그만 마감하려한다. 그러나 자살마저 뜻대로 되지않는 이놈의 세상. 누구하나 위로해주는 이 없고 그의 말을 들어주려는 이 또한 있을리 만무하다. 아무도 슬퍼해줄이가 없는데 더 살아서 무엇하리.... "나고단 씨, 그러지 말아요. 이 책을 통해 당신을 알게된 수 많은 독자들이 슬퍼할 꺼예요."
두번째 주인공은 드라마 보조출연자로 근근히 살아가고있는 이보출 씨. 사정이 힘들어 어린 아들을 친척집에 맡기고 하루일당 4만원의 엑스트라 인생에 전부를 건 남자이다.
[화적들이 한 줄로 서자, 첫 번째 여자아이가 호주머니에서 붓을 꺼내 스피리트 검을 듬뿍 묻히더니, 인중과 턱 밑에 페인트칠하듯 척척 바른다. 혹자는 묻는다. 본드 냄새가 괴롭지 않냐고. 아니, 안 괴롭다. 오히려 향기롭다. 이것을 바르는 날, 이 냄새를 맡는 날은 일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p.96]
그마저도 매일같이 일당 4만원을 벌 수 있는게 아니기에 그는 어떡해서든지 윗사람에게 잘보여 다음 드라마에 보조출연자로 합류하길 간절히 바란다. 그래야만 아들과 살 수 있는 단칸방이로도 얻을 수 있을테니까. 윗사람 눈에 띄려는 이보출 씨의 사투는 눈물겹도록 재미있다. 절대 웃으며 바라볼 수 없는 그의 인생사를 빙그레 미소지으며 바라볼 수 있게 만들다니. "차인표씨, 당신은 진정 능력자 이시군요!"
마지막 세번째 주인공은 하루하루 목숨이 위태로운 딸 봉봉이의 아버지 박대수 씨. 어둠의 세계에서 손 털고 사랑하는 아내와 만지기도 아까워 잘 쓰다듬지도 못하는 딸과 함께 제대로 살아보고자 결심한 대수. 김밥집을 차리려 갖고있던 돈을 몽땅 후배에게 사기당하고 설상가상 봉봉이는 희귀병을 앓게된다. 떼인돈을 받기위해 날마다 후배를 찾아다니는 그의 희망은 단 하나, 봉봉이의 골수이식이다. 의리파 후배 김 부장과 나누는 대화는 큭큭큭 끊임없는 웃음을 자아낸다. 대수의 뒤를 걱정하는 김 부장의 마음 씀씀이에 안타까운 감정이 생겨나는건 왜일까? "그래도 대수 씨, 태평이에겐 나중에 꼭 사과 하셔야 해요~"
[다름이 아니라 나고단 씨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된 거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 혹은 자신이 말을 걸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 가득, 치열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내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거지. 분명 예전에는 안 보였는데 딱 한 발자국 더 다가가는 순간, 보이기 시작했대. 먼저 다가가는 그 순간, 멀리서는 안 보이던 진실이 보이기 시작한 거지. p.231]
이 우울한 인생들의 뒷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가? 나고단 씨는 정말 자살에 성공했을지, 보출 씨는 다음 드라마에 무사히 캐스팅 되었을지, 대수 씨의 딸 봉봉이는 어떻게 되었고 후배를 잡아 떼인돈을 받아내기는 했는지 말이다. 단 하나 분명한건, 이들의 인생에도 쨍~! 하고 해뜰날이 돌아오리란 믿음이다. 내가 응원하고, 또한 이들을 만난 많은 독자들이 힘을 팍팍 불어넣어 주었을 것이기에. "나고단 씨, 이보출 씨, 박대수 씨~ 당신들의 오늘 예보는 맑음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