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돌
문영심 지음 / 가즈토이(God'sToy)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아! 내가 이 책을 못 읽고 지나쳤더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그러나 처음 제목과 표지 그리고 온라인 서점들에 있는 간략한 줄거리를 보면 그닥 흥미를 끌진 못했다. 주인공에게 도스토예프스키의 돌 하나가 건네지면서 파릇했던 대학시절로 되돌아간다는 이야기에 약간의 호기심을 갖고 혹여나 '너무 무겁진 않겠지....'하는 우려와함께 책을 펼쳤다. 소설쓰기를 원했지만 방송작가가된 주인공. 그녀의 1970년대 대학시절은 마치 한편의 멋지고 진솔한 영화처럼 아련하면서도 파릇파릇 생생하게 펼쳐진다.
 

대학입학과 동시에 동기들 사이에서 기선제압에 나선 주인공 수영과 그녀만큼이나 특별한 친구 수옥과 희수는 곧 수자매로 불리며 나름 학교의 유명인사로 자리매김한다. 각자 멋진 소설, 기존 소설들과 차별된 특별한 자신만의 소설을 쓰겠다며 동분서주하고 방황의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강압적인 정권이 자리잡은 시대에 어지러운 세상속에 놓인 그들이지만 현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들보다 더욱 특별하고 찬란해 보이는 그들이었다. 이들이 보여주는 대학생활은 내가 늘 동경하던 모습이었다. 그 열정과 그들만의 자유로움 그리고 소통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져 더욱 내 맘을 사로잡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와 연극은 인생을 모방하는 거라고 했다. 그러데 스물한 살의 나는 문학을 모방하는 인생을 살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문학적인 사랑, 문학적인 삶이라는게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나는 그런 삶을 원했던 게 틀림없다. 물론 그런 생각은 한참이나 세월이 흐른 뒤에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때는 봄날이었고 피는 신선했으며 무슨 일인가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초조감으로 가슴은 터져나갈 것 같은 그런 날들이었다.   p.73]
  

수자매의 아지트 '작가폐업'역시 내가 상상속에 그려오던 멋진 곳이었다. 업 선배와 수영의 미묘한 관계에 가슴졸이기도 하고 업 선배의 부재는 내 가슴속까지 텅 비게 만들어버렸다. 그의 삶이 너무 무겁고 꽉 막힌듯하여 가슴을 조여왔지만 그래서 더욱 그의 존재가 매력적이고 신비롭게 다가왔다. 수영과 그의 친구들 외에도 책 속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치기와 패기로 똘똘뭉친 동기의 막나가는 소설쓰기와 쉼없는 노력으로 꾸준히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다져가는 친구도 있고 자신들의 꿈을 위해 뒷골목 어두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또한 지나칠 수 없다.
 

수영도 그렇고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고민으로 방황하고 아파하는 그들이지만 더없이 열정적이고 아름다워보였다. 그들의 지치고 고통에찬 삶 조차도 부러움에 몸서리쳐진건 청춘이란 이름이준 선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파릇한 그네들의 모습이 마냥부러워 오히려 슬퍼졌다. 이 책은 내가 누려보지못한 고민들과 고통의 시간을 맛보게 해주었다. 내가 느껴보고 경험해보지못했기에 그들의 모습이 마냥 이상적으로 여겨지고 떄론 사치스러운 고통이라고까지 생각되었다. 가끔 재미있는 책 그리고 매력적인 책을 만나 깊이 빠져읽다보면 책 속 주인공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고싶어진다.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은 그들과 함께하는 삶 보단 진실되고 열정적인 대화를 나누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깊은 대화말이다. 작가폐업의 구석진 자리를 차지하고앉아 업 선배 그리고 수자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픈 열망에 사로잡혔다. 

대학을 졸업한 수영과 친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때론 열정이 식어버린채 살아가고 있다. 소설쓰기의 한계를느껴 포기했던 수영은 다시 소설쓰기에 매달리지만 남편과의 불화로 벽에 부디치게 되고, 큰 상실감을 맞보기도한다. 이 책 속엔 소설속 주인공 수영이 대학생활을 하며 습작한 시며 소설들이 등장해 또다른 이야기를 만나는 재미가 있다. 책 내용 중간중간 등장하는 수영의 단편들은 책속의 책 이라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수영의 인생과 생각을 더욱 깊게 들여다볼 수 있어 참 좋았다. 또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꼬리에 꼬리물기식 책 읽기를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게 되서 정말 기뻤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돌>엔 유명하고 훌륭한작가들의 글이 인용되곤 한다. 또한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이야기 이기에 여러 세계문학가들의 이름과 책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 중 아주 여러번 언급되었던 카뮈의 <이방인>을 이번기회에 읽어보기로 했다. 올 해 초 특벽한 계기없이 고전문학에 빠져버려 가까이하려 노력해왔는데 부끄럽게도 아직 <이방인>은 읽어보질 못했다. 올 해의 마무리, 혹은 새 해의 시작을 카뮈의 작품과 함께하는 것도 근사할 것같다. 
 

[새로운 책은 우리에게 얼마나 신기한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인가! 매일같이 나는 젊은 이미지들을 말해 주는 책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 바구니 속에 가득 차 주었으면 좋겠다.이러한 기구는 자연스러운 욕망의 표현이다. 이러한 기적은 손쉽게 일어난다. 저 위 하늘나라에 있다는 천국은 엄청나게 큰 도서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가스통 바슐라르, 『몽상의 시학』-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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