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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발레리 통 쿠옹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0년 11월
절판

영화같고 사랑스럽고 또한 멋진 책을 만났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을꺼란 이야기를 들었기에 당장 읽고싶어진 책 이었다. 몇번을 보아도 질리지않는 멋진 영화로, 그리고 볼 수록 행복해지는 영화로 주저없이 러브 액츄얼리를 꼽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전 혹여나 내 기대심에 못미치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하기도 했는데 <운명>의 초반을 읽으며 '바로 내가 기대했던 책이 맞구나!' 하며 푹~ 빠져들어 읽어내려갔다.
책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기구한 운명에 맞닥드리게된다. 처음 등장하는 마릴루는 악덕사장의 비서로 최저임금만 받으며 근무한다. 그녀가 하는일은 온갖 잡다한 일들인데, 운명의 그날도 심부름으로 회사 반대편에 있는 머나먼 곳으로 복사를 하고오다 일어나게된다. 두번째 등장인물은 멋지고 풍요로운 노년을 꿈꾸는 알베르에게 청천벽력같은 암진단이 내려지면서 하나뿐인 여동생에게 재산상속을 해주기 위해 약속장소에 나갔는데 자신만 모르던 출생의 비밀을 알고부터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게 된다. 세번째 인물은 유능한 변호가 프루던스이다. 그녀는 흑인이란 이유로 언제나 차별을 당해왔는데 드디어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어줄 소송을 맡게되면서 밝은미래를 꿈꾸지만 무참히 짓밟히고 만다. 마지막 부분에 그녀의 멋진 활약과 사랑을 거머쥐는 이야기를 만난순간 난 환호했다! 멋져 프루던스~! 그리고 마지막 주인공 톰이 있다. 도도하고 까칠한 애인을 끔찍히 사랑하는 그는 드디어 그녀에게 청혼을 하기위해 꿈깥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개와 부디치며 저전거 사고를 일으키게되고 오히려 그의 인생을 구해줄 운명을 만난다.
이 네명의 주인공 이야기가 번갈아 등장하며 이야기는 펼쳐진다. 내가 가장 좋아한 등장인물은 마릴루의 아들 폴로였다. 너무 멋지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 아이를 꼭 실물로 만나보고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책의 후반부엔 폴로가 참 용감하고도 중요한 일을 하게되는데 용감하고 책임감강한 꼬마신사가 따로없다. 어느새 책 속에 푹~ 빠져 읽어내려가다 보면 드디어 이 주인공들이 교차하고 서로의 운명에 어떻게 맞서고 받아들이는지 놀랍고 재미있다. 작가인 발레리 통 쿠옹의 글솜씨가 유감없이 드러나는 멋진 소설이다.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든다. 이 여자를, 천사를, 천사의 얼굴을한 이 여자의 말을 듣고 있는데 공포가 밀려든다. 너무도 큰 행복이 걸린 일이다. 플랫폼과 지하철 사이에 낀 내가 죽기 직전 환영을 보고 있는건 아닌지, 뉴런들이 으깨지면서 정신착란이 온 건 아닌지 두렵다. 이 방이, 마릴루가, 알베르가, 간호사들이, 그리고 내가, 우리 모두가 한순간에 비눗방울처럼 터져 현실속으로 녹아들어 가는 건 아닐까? p.243]
책의 마지막엔 마지막 주인공 샤를리가 등장하면서 그로인해 다른 네명의 인생이 어떻게 바뀌게되었는지 알게되고, 자살을 시도한 그 덕분에 오히려 행복의 문턱으로 한발짝 내딛게된 네명은 고마움을 느낀다. 각각의 이야기와 인생을 엿보며 '역시 착하게~ 그리고 열심히 진실된 삶을 산 사람에겐 행운이 찾아오나보다.'라고 생각했다. 멋진 미래가 펼쳐진 그들앞에 또다른 운명의 순간은 매번 찾아오겠지? 그 때마다 그들은 또다른 방식으로 지혜롭게 운명을 받아들이고 바꾸어나갈 것이다. 나도 내게 다가올 운명을 기다리며 멋진 운명은 반갑게 반기고, 불행을 동반한 운명은 용감히 맞설 것이다. 올 겨울 행복하고 멋진 책을 만나 더없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세상도 가끔 딸꾹질을 하는 게 아닐까요? 어떤 식으로 흘러갈 거라고 정해져 있는데, 무언가가 혹은 누군가가 최후의 순간에 계획을 바꾸기로 결심한 거죠." p.243~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