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웅진 모두의 그림책 6
이적 지음, 김승연 그림 / 웅진주니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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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가져온 책은 추운 이 계절,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줄 한 권의 그림책입니다. 바로 노래하는 음유시인, 가수 이적의 첫 번째 그림책 [어느 날,]입니다. 저는 이적의 담담한 목소리로 채워진 영상을 통해 이 책을 먼저 접했는데요, 책을 읽으면 슬픈 감정이 되살아날 것 같아서 책장을 넘기기까지 꽤 긴 호흡이 필요했습니다. 만질만질한 느낌의 겉표지를 한참 바라봤어요.

 

'어느 날', 이라고 적힌 표지를 넘기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요'라는 문장이 나타나는데요, "어느 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대요."라는 이 짧은 문장에서 예고도 없이 떠나신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 아이는 아마 부모님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라는 말을 전해들었기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가 아닌 "돌아가셨대요"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저 역시, 작년 여름 할머니를 보내드린 기억이 있기에 이 문장이 더 슬프게 와닿았습니다. 저도 부모님께 "할머니가 돌아가셨어"라는 말을 전해 들었거든요.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드리지 못 했다는 슬픔이 생각보다도 더욱 컸습니다.

 

아직 신발장엔 할아버지의 구두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금방이라도 약수터에 가자고 거칠거칠한 수염을 부비시며 깨울 것 같은데, 할아버진 계시지 않고, 할아버지의 냄새만이 희미하게 남아있어요.

 

어린 아이는 할아버지의 부재가 믿기지 않는 듯, 계속해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되풀이 합니다. 매일 곁에 계시던 할아버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겠지요.

 

할아버지는 예상치 못한 어느 날, 준비도 없이, 그렇게 떠나셨나봅니다. 사랑하는 손주에게 인사조차 남기지 못 하셨으니까요. 저 역시 할머니가 떠나시던 날, 곁에 있어드리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께 사랑한단 말도 전해드리지 못 했고, 할머니의 마지막 인사 또한 듣지 못 했어요. 그렇게 갑자기 떠나실 거라곤 생각하지 못 했거든요. 그래서 할머니가 계시지 않던 지난 여름께의 기억은 제게 아프고 희미하게만 남아있는 것 같아요.

 

할머니는 제 생일이면 으레 흰 봉투에 돈이나 문화 상품권을 넣어 주셨어요. 저는 그것들로 책이나 필기구 등을 사곤 했습니다. 제 생일은 늘 추운 겨울이기에, 목도리와 장갑은 덤으로 받는 선물이었지요. 더 이상 할머니가 계시지 않는 할머니 방의 서랍장 한 칸에는 선물 받았던 목도리와 장갑들이 여전히, 고요히 포개어져 있습니다. 알록달록 유치하고 조금은 알싸한 냄새가 나는 털뭉치들과, 할머니의 필체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흰 봉투는 제가 할머니께 사랑받고 자라온 세월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무엇 하나 쉽게 버리질 못 하는데, 올 가을 서랍장에서 이 오래된 봉투를 발견한 순간, 이것이 남아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엔 함께하지 못 했지만, 그 순간보다도 긴 시간 동안 저는 할머니와 사랑을 나누며 살아왔다는 생각에 약간은 안도감이 들어서였을까요..

 

할아버지는 멀리서 오셨기에,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조금은 일찍 세상을 떠나셨나봐요. 행성 위에 서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아이와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따뜻함이 묻어 나왔습니다.

 

결국 이 행성은 하나의 실로 연결이 되어 있거든요. 며칠 전, 어떤 연극의 한 배우님께서 "인간이 죽어 하나의 별이 된다면, 지금의 우리는 수많은 별가루로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요?" 하셨던 그 말씀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고 있는 요즘입니다. 연극의 한 장면에서도 우주에 표류된 두 남자가 지구에 있을 가족을 그리워하다 결국은 별이 되거든요. 할아버지도 오래 전 살고 계셨던 먼 우주로 돌아가 반짝이는 하나의 별이 되셨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책의 맨 마지막 장에는, 이적의 목소리로 [어느 날,]을 만나볼 수 있는 QR코드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차가운 이 계절, 담담하고도 단단한 가수 이적님의 목소리로 이 책을 접하신다면, 슬프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안이 되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자기 전에 밤하늘을 한 번 지그시 바라봐야겠습니다. 별이 보인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 곳으로 돌아가셨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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