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제국 - 결혼이 지배하는 사회 여자들의 성과 사랑
노부타 사요코 외 지음, 정선철 옮김 / 이매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80년대 말인가 90년대 쯤에 나온 책이다. 당시 일본에는 이미 결혼하지 않은 30대 여성들이 사회현상화 하던 때였던 듯. 그를 바라보는 두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와 노부타 사요코의 대담집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최근 페미니즘 이슈와 관련,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라는 저서가 재조명되면서 한국에서도 이름을 날리고 있는 사회학자인데, 이번에 도서관에서

 검색하니 우에노 치즈코 관련 서적이 이 책 밖에 없어서 일단 빌려 읽었다.

------

여성들을 돕는 심리상담센터를 오랜 시간 운영해 온 노부타 사요코와, 페미니즘 저서로 유명한 우에노 치즈코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을 둘러싼 사회현상에 대한 궁금증을 나누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방식. 

30대 비혼 여성들은 왜 비혼으로 남았는가, 성과 사랑에 대한 그들의 사고체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무엇이 그들을 비혼으로 이끄는가, 비정규직 비혼 30대 여성,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당시 일본에서) 그들을 끼고 사는 일본의 베이비부머들, 부모세대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그뿐만 아니라 결혼을 둘러싸고 사회에서는 어떤 성역할을 양성에게 밀어붙이고 있는가-여자들은 결혼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여성들을 혐오하는 남성들은 왜 나타나는가, 폭력적인 결혼생활을 접지 못하는 여자들은 왜 그런가, 등등에 대해 의논한다.

그런대로 흥미롭다. 

-----

이 책 이후에 읽은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겹쳐지는 감이 있기는 한데, 몇 가지 추려보면 이런 얘기들이 나옴. (나머지 주제들은 잘 기억이 안 나서 못 적겠다.)


-남성이 진정한 남성이 되려면? 연애 못하는 남성에 대한 이야기

남성들을 진정한 남성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실은 여성이 아니고 남성공동체이며, 남성공동체로부터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여성을 소유하는 것이 일종의 자격조건 같은 것으로 굳어져 왔음. 실상 오래 전부터 남성공동체의 서열에 맞춰 여성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이었고, 중매결혼이 있던 시기까지는 남성들이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대부분 결혼하여 아내를 소유하고, 번듯한 남성으로서 대우받을 수 있었음. /여성을 소유하지 못한 남성, 동성애자 남성들은 진정한 남성이 아닌, 여자 같은 존재로 배척당하며, 연애하지 못한 분노를 일부 남성들이 폭력이나 분노로 표출하는 것은 이런 연유. 그들은 여전히 여성을 일종의 배부받는 자원 정도로 여기고 있음./ 연애하지 못하는 남성들(경제적으로, 외모적으로 등등 경쟁에서 밀리는)을 사회적으로 배려해 주어야 한다는 일부 남성들의 주장이 일본에서도 수십년 전부터 이슈를 불러 일으킨 바 있었으나, 저자는 여성의 경우 이슈조차 되지 못하던 사안이지 않으냐, 아직 선택받는 것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탓이라며..커뮤니케이션 기술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지 않겠느냐고 제안.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의 여성혐오

남성에게는 여성 그 자체보다도 남성공동체의 인정이 더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또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여성이 불가피하게, 수단적으로 필요하다. 결국 여성을 남성과 대등한 관계로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여성혐오.


-30대 비혼, 비정규직 여성을 바라보는 대담자들의 시각 -부정적인 듯.

보수적인 성 관념과 자유로운 성 관념 사이에 낀 세대. 결혼이 꼭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는 세대. 30대 비혼 비정규직 여성의 경우 경제적으로 부를 쌓은 베이비 부머 부모와 함께 안락한 한 때를 보낼 수 있을는지 몰라도, 부모의 부가 끊기고 더 이상 비정규직 일자리에서 버틸 수 없게 되면 경제적으로 쪼들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일본에서는 비혼 자녀가 고령의 부모를 맡아 개호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복지의 하위계급으로서 배척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 일본의 비정규직 비혼 여성 30대(당시)들은 결혼 전의 유예로서 비혼을 택하는 경향이 있고,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 없는 상태이기에 위험. 베이비부머들은 이런 상태를 두고보고 있는데, 딸이 자신들의 뒷날을 개호해주기를 바라는 이기심 때문이기도 함(현 2,30대 한국의 비혼여성들과는 다른 듯)


-결혼에서 얻고자 하는 것들.

남성은 결혼을 통해 남성공동체로부터 번듯한 자격을 갖춘 진정한 남성으로서 인정받게 됨. 여성의 경우 남성으로부터 선택받음으로써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증명하게 됨. 어떤 조건의 남성과 결혼하였는가는 여성들 사이에서 일종의 척도로 분류되기도. 여성이 이런 '여성으로서의 가치증명'을 남성으로부터 수동적으로 부여받고자 하는 것에서 벗어나 진정 자유롭게 비혼을 택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 이야기 하고 있음.


-결혼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여성들의 이유

결혼을 '자신의 선택' 이라고 여기고, 남편을 '자신이 선택한 남자'로 '내가 없으면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음. 일종의 자존심. 이런 여성들의 경우 자신들의 불행한 결혼에서 벗어나면 결국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자립하지 못한 상태의, 초라한 중년 여성'으로 남는 것이 두려운 탓에, 가정을 책임지고 꾸려나가는 가정 주부로서의 모습을 유지하고 싶어함.

(학습된 무기력 이론과는 또 다른 이야기라 신선한 감도 있음.)

-----


20, 30대 비혼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싶었던 것도 컸는데, 대담에서 다룬 수십 년 전의 일본 상황은 현재와는 좀 맥락이 많이 다른 것 같아서 아쉬움이 컸다.

최근의 여성들은 이 대담집 속에서처럼 부모가 지닌 부의 그늘 아래서 평온한 나날을 보내며 미래에 대한 대책 없이 결혼 전의 유예로서 비혼을 한다기보다,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비혼이 더 낫다는 결론을 내리고 적극적으로 현재와 노후를 대비하고자 하는 흐름이 더 크다고 보는데 말이다. 

반면 결혼과 관련된 화두는 꽤 흥미롭게 읽었다. 연애나 결혼을 통해 두 성은 어떤 것을 노리는가-말이다. 진정한 남성이 되는 자격조건을 얻기 위해, 진정한 여성으로서 인정받기 위해서라는 것. 사회 속에 녹아들고, 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것. 두 대담자는 당시 그런 수동적인 인정받기는 필요없다고 외치는 비혼자가 참 드물거라고 아쉬워했지만, 요즘을 보면 인정따위 없어도 된다고 외치는 자유로운 비혼자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