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3.23
[두 편의 봄]
1.
봄, 파르티잔 | 서정춘, 캘린더 호수
꽃 그려 새 울려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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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춘의 봄은 꽝꽝 얼은 겨울이다. 싹 틔우기 미안하고, 꽃 피우기 죄스럽고, 열매 맺기가 피 흘리듯 아픈. 민들레 홀씨도 제 발등을 차마 벗어나지 못하는 참혹한 봄. 비쩍 마른 온기와 입을 틀어막은 신음 같은 봄. 살이 베인 듯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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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봄의 단장 | 신휘, 꽃이라는 말이 있다
이 봄에는 울타리를 칠 거야. 너무 높게는 말고 작은 키의 참새들이 단번에 톡톡 뛰어오를 수 있을 만큼의 높이, 이 지구의 중력이 새에게 미칠 원활함의 최대치만큼의 높이로 담장을 두를 거야. 그러면, 그 안에서, 나의 시계가 허용하는 내 눈의 최대한도의 편안함 안에서 새도, 나도 다 같이 마당을 갖게 될 거야.
오는 봄이 걸려 넘어지지 않고, 가는 겨울이 걸려 자빠지지 않도록 이 봄엔 너와 나, 나와 우리 사이에 튀어나온 벽을 허물고 높고 낮은 각의 편견도 없는 울타리를 두를 거야.
예쁜 나비들이 폴폴 날아오를 수 있는 최대한도의 편안함 안에서, 바람이 제 허리를 꺾지 않고도 넘을 수 있는 최소치의 높이 안에서 담장을 칠 거야. 그러면, 그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넘어다 볼 수 있는 그 담장 안에서, 이 봄엔 너도 나도 다 같이 저마다의 정원을 새로 하나씩 갖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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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휘의 봄은 아지랑이 간질간질 올라오는 들판이다. 참새가 날개를 접은 채 울타리를 홀짝 뛰어넘고, 몸을 움츠리지 않고 성긴 담장을 드나드는 새와 나비와 바람이 저마다의 정원을 꾸미며 봄을 틔우는 마당.
짧은 시간 나는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흙을 고르고 있었다. 봄인 줄 알았다. 읽고 또 읽다가 골짜기로 떠난 파르티잔이 꿈꾸었을 봄이라는 생각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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