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 도시소설가, 농부과학자를 만나다
김탁환 지음 / 해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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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안치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노래했다. 꽃의 아름다움은 고운 빛깔과 향기에 있다. 외관상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기는 어렵다. 예수는 영화로운 삶을 살았던 솔로몬 왕도 들판의 나리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람이 꽃의 아름다움을 흉내낼 수 있다면 바로 내면이다. 영하의 날씨와 눈보라, 땡볕과 비바람을 온몸으로 살아내는 꽃과 그를 닮은 사람. 김탁환의 생태에세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에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등장한다.
작가 김탁환은 등단 제도를 통하지 않고 첫 장편 <열두 마리 고래의 사랑이야기> 를 펴냈다. 뒤이어 네 권짜리 장편 <불멸의 이순신> 을 썼다. 십오 년 가까이 역사추리소설과 백탑파 시리즈를 꾸준히 발표하다가 2014년 세월호의 아픔을 보듬는 사회파소설 <거짓말이다> 를 출간했다. 세월호를 목격한 뒤 과거에서 당대로 시선을 옮긴 작가는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 <살아야겠다> 등을 잇달아 펴냈다. 그는 지금까지 29편의 장편소설과 3권의 단편집과 3편의 장편동화를 출간하며 소설가의 길을 올곧게 걷고 있다. 결코 녹록치 않은 여정이다.

‘인생에서 큰바람 한두 번 맞지 않은 이가 있을까. 큰바람에 낭떠러지까지 몰렸다가 겨우 살아나기도 했으리라. 절체절명의 순간, 어떤 이는 회생하고 어떤 이는 사라진다. 행운과 불운으로 치부하기엔 그 차이가 너무 크다. 한 사람이 평생 지켜온 원칙에 주목해야 한다.’(157쪽)


그가 말하는 ‘한 사람’의 면면을 떠올려본다. ‘농민이나 어부의 노동과 생활에는 근대식 공장노동자나 도시의 월급쟁이들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이 존재한다는 얘깁니다.’(89쪽)라고 말하던 생태사상가 김종철 선생이 있다. ‘2006년 5월 곡성에 들어간 후부터, 이 대표는 품이 많이 드는 또하나의 일에 착수했다. 쌀 연구자인 송동석 박사의 도움을 받아 278종의 볍씨를 고른 후, 섞이지 않도록 일일이 손 모내기를 한 것이다. 2006년에는 논 천 평에 품종마다 한 줄씩, 2007년에는 논 8천평에 네 줄씩 심었다.’(160쪽)는 농부과학자 이동현도 있다. 한 사람이 더 있다. ‘공동체 소멸 역시 각자도생이란 단어와 함께 주목받고 있다. 공동체의 안녕보다 개인의 성공을 최우선으로 두는 사회에서 실패한 자, 가난한 자, 병든 자, 약한 자를 어떻게 보듬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작가 김탁환이다.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 에는 도시소설가 김탁환이 농부과학자 이동현을 만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이동현은 순천대학교 농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규슈 대학교에서 ‘응용유전해충방제’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5년에 전라남도 곡성의 폐교를 얻어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을 설립했다. 이곳에서 발아현미를 연구하여 보급하고, 친환경농사로 지은 현미로 가공식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작은 들판 음악회를 열어 기업과 이웃이 상생하는 법을 찾아가고 있다. 작가 김탁환이 이동현의 삶을 한 권의 책에 담아낸 까닭은 자본을 거스르는 그의 행보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미실란이 어떻게 알려졌으면 좋겠느냐고 묻자 백부장이 답했다. “사람을 살리는 회사”로 소개되었으면 해요.’(245쪽)

도시소설가가 농부과학자에게 매혹된 이유가 또 있다. 이동현 대표는 새벽마다 논에서 벼를 비롯한 식물, 개를 비롯한 동물과 대화를 나눈다. ‘복돌아, 복실아! 너희들 생각은 어때? 논 사람들이 만족하는 것 같지?’(84쪽) ‘논 사람’이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몰라 잠깐 독서를 멈춘다. 다음 문장을 읽는다. ‘사내의 어법은 보통 사람과 달랐다. 나무를 숲 사람, 벼를 논 사람이라고 불렀다.’(85쪽) 머릿속이 환해진다. 나무와 벼는 숲 사람, 논 사람이고 우리는 그냥 사람(84쪽)인 것이다. 그냥 사람이 되고 나니 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미실란 밥카페 <飯하다>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적혀있다고 한다.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316쪽) 작가는 독자에게 꿈을 함께 꾸며 지방, 농촌, 벼농사, 공동체 등 네 가지 소멸에 맞서자고(13쪽) 손을 내민다.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죽비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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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남자 - 곽병창 희곡집
곽병창 지음 / 연극과인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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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창작소극장에서 연극 한 편을 보았다. 곽병창 작가가 각색, 연출한 ‘천사는 바이러스’였다. 말로만 듣던 전주 노송동 천사의 이야기가 무대에 올려졌다. 해마다 십이월 하순에 돈이 담긴 박스를 말없이 놓고 가는 얼굴 없는 천사는 과연 누구일까. 궁금해 하는 사람들과 돈을 노리는 일당과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시종일관 유쾌하게 펼쳐졌다. 그러나 웃음 끝에 남겨진 메시지는 묵직했다. “기억하세요. 당신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다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그들과 나누세요. 삭막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대들, 우리들의 따뜻한 마음뿐이랍니다.”

곽병창 작가가 세 번째 희곡집을 냈다. <억울한 남자> 라는 표제작을 비롯해 다섯 편의 희곡이 담겼다. ‘억울한 남자’는 의료사고 피해자인 복동이 해당 병원의 간호사를 인질로 잡고 수술 집도의인 최교수를 협박하는 이야기다. 분명 억울한 남자는 복동인데, 극의 결말에서 억울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최교수다. 최교수는 무엇이 억울했을까. 곰곰이 생각한 끝에 도달한 결론은 모두의 삶이 조금씩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 마음을 읽어내는 게 작가의 몫이다.

‘빨간 피터, 키스를 갈망하다’는 카프카의 원작소설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희곡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추송웅이라는 배우가 일인다역으로 명성을 얻었던 ‘빨간 피터의 고백’과 다른 점이 있다면 ‘순이’라는 한국인 입양아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인간으로 길러지는 원숭이 피터와 완벽한 독일인이 되고자하는 순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자유와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바로 여기, 우리의 현실로 가져온다.


‘대필병사 김막득’은 전쟁과 군대에 대한 이야기다. “전쟁은, 전쟁은 말이야. 군인에겐 여전히 최상의 무대야. 꿈의 무대라고.” 백대장의 입을 통해 군산복합체론이 슬쩍 드러나고, “아닙니다. 저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기 때문에….”라는 배달병의 말에서 합리적인 사고를 마비시키는 군대문화를 돌아보게 한다. 배우들은 “오오오, 제발 바꿔, 아무도 못 이긴 싸움, 이루지 못한 사랑. 오오오, 이제라도 돌아가야 해.”라고 이 땅의 평화를 노래한다.

‘귀신보다 무서운’에서는 삼례의 나라슈퍼 강도 사건을 다룬다. 경찰의 강압수사로 옥살이 한 이십대 청년들의 억울함을 작가는 조목조목 풀어나간다. 그리고 극중 인물 나라를 통해 속 시원히 외친다. “야 이 나쁜 놈들아. 얼른 나와서 빌어.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어. 그게 사랑이여.”


곽병창 작가의 희곡집을 읽다가 책꽂이에서 안톤 체호프의 책을 꺼낸다. ‘거짓과 모든 형태의 폭력을 증오한다’고 했던 체호프의 희곡집 <벚꽃동산> 을 나란히 펼쳐둔다. 어딘가 닮았고, 둘 다 훌륭하다. 두 권 모두 가슴에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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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밥 먹여준다 -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의 첫 고백
김하종 지음 / 마음산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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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짓는 일은 절실한 기도였다”

「사랑이 밥 먹여준다」는 김하종 신부가 한국에 온 지 30여 년 만에 쓴 삶의 고백서다. 이탈리아 태생으로 사제 서품을 받은 뒤 한국으로 온 그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노숙인들을 위해 밥을 짓고 있다.


김하종 신부는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를 읽는 일에 어려움을 느꼈다. 숙제를 해결하려면 친구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난독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난독증으로 인한 고통은 그의 영혼을 단련시켰고 주변의 나약함에 귀 기울이게 했으며 타인의 절망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사제가 되어 봉사의 길에 접어든 것도 아픔을 겪은 경험 때문이었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썼다.


“난독증으로 다른 아이들보다 늦되었던 어린 시절에도 ‘괜찮다’라고 했던 어머니, 사제의 길을 간다고 결심을 밝혔을 때도 ‘괜찮다’라고 했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나는 괜찮다’라고 했던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41쪽)

김하종 신부의 이탈리아 이름은 ‘빈첸조’다. 하종은 ‘하느님의 종’이라는 한국식 이름이다. 그는 성남시에서 ‘안나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성씨는 ‘성남 김씨’가 되었다.


1998년에 불어닥친 IMF는 이웃의 생존을 위협하고 200만 명에 가까운 실업자를 양산했다. 김하종 신부는 그해 7월 7일 실직자와 행려자를 위한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 문을 열고 수백 명분의 쌀과 반찬 재료를 구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었다. 리어카를 끌고 새벽 시장을 돌며 팔다 남은 야채를 얻었고 학교의 급식소를 찾아가 남은 반찬을 얻었으며 빵집과 결혼식장의 뷔페, 김장 김치를 나눠주는 절에도 찾아갔다.

앞치마를 두르고 밥을 짓는 동안 상처받은 일도 많았다. 하루는 음식을 만들고 있는데 밖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술에 취한 다섯 사람이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었다. 김하종 신부는 싸움을 말리다가 뺨을 맞았다. 상황이 종료되고 사무실에 들어간 그는 울기 시작했다. 매일 사랑을 주는 데도 폭력적인 행동으로 돌아온 것이 상처로 남았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야 했다.

“오늘 흘린 눈물은 어두운 땅에 소중한 씨로 뿌려질 것이다. 새로운 사랑과 평화를 탄생시킬 것이다.”(145쪽)

‘안나의 집’에는 무료급식소 외에 공동생활 가정인 ‘쉼터’가 있다. 춥고 위험한 거리를 떠도는 청소년들의 대피소다. ‘쉼터’에서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한편 상담, 의료 지원, 직업, 자활 교육 등을 하고 있다. 김하종 신부는 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안전한 장소와 따뜻한 환영, 순수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꽃을 볼 때 평화로움을 느낀다. 나눔의 길에서 피어난 꽃은 더욱 아름답다.

밭에서 키운 감자와 배추를 나눠주는 분, 거리에서 만난 노숙인에게 주머니의 용돈을 다 털어준 사람, 어렵게 모은 100만 원을 놓고 가신 낡은 코트의 할머니, 해마다 약을 기부하는 약사들, 돌잔치 대신 나눔을 택한 부부, 안나의 집에서 도움을 받다가 이제는 후원자가 된 사람……. 김하종 신부는 나눔의 꽃들을 끝없이 소개한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한다.

‘이 책을 읽어준 당신이 내게는 큰 응원이다.’(255쪽)

책 한 권을 읽어주는 것이 나눔의 길에 들어서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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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하이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86
탁경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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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운동에는 어느 정도 육체의 고통이 뒤따른다. 가장 무난해 보이는 걷기조차 오래 걸으면 발목이 아프고 발바닥이 당긴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할 때는 고통을 대신할 재미를 찾게 된다. 팀을 이루거나 짝을 지어서 하는 구기 종목은 서로 몸을 부딪고 말을 섞을 수 있어서 힘들지만 즐겁게 뛸 수 있다. 반면 달리기는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고독한 운동이라고 한다.

탁경은 작가의 청소년 장편소설 「러닝 하이」는 달리기를 통해 성장해 가는 두 소녀의 이야기다. 서하빈은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 날, 러닝크루를 검색한다. 충분히 사랑 받고 자랐지만 갑자기 외톨이가 된 듯했고, 자신을 버린 친부모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빈이 휴학하겠다고 했을 때 양부모는 사랑하는 딸의 결정을 존중했다. 하빈은 ‘러닝 하이’라는 러닝 크루에 가입하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러닝 크루는 주말마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모여 달린 다음 쿨하게 헤어지는 모임이었다. 하빈은 그곳에서 두 살 아래의 열다섯 살 권민희를 만났다. 민희는 스스로 존재감이 없다고 믿는 아이였다. 남자애들은 민희의 살찐 외모를 비하했고, 맞벌이하는 부모는 바쁜 엄마를 대신하여 살림을 도맡아 하는 민희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민희는 러닝 크루 첫날 겨우 2킬로미터를 달리고 주저앉았다.


두 소녀의 두 번째 만남은 마포대교 위였다. 답답함이 턱밑까지 차오르면 민희는 마포대교까지 걸었다. 대교 위에서 강물을 바라보면 마음이 트였다. 하빈은 매주 금요일마다 마포대교를 지켰다. 여섯 살 위의 오빠가 하던 일이었는데 하빈이 하겠다고 나섰다. 대교에는 투신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돕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그날 하빈과 민희는 조금 더 친해졌다. 마포대교는 두 소녀를 달리기 멘토와 멘티로 이어준 연대의 다리였다.


민희는 러닝 크루의 하빈, 설이 언니, 하나 언니를 만나며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했다. 민희의 특별한 미각과 요리 솜씨를 알아주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하빈은 입양아라는 충격에서 벗어나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함께 달렸던 사람들은 하빈의 상처가 아물도록 보듬었다.

“나 스스로에게 잘 대해 주기로 했어. 그래야 남들도 날 소중하게 대할 테니까.”(194쪽)


하빈의 다짐은 민희를 뜨끔하게 했다. 민희는 가족 안에서도, 하나뿐인 친구 시영이한테도, 선생님이나 선배 사이에서도 한 번도 1순위였던 적이 없어서 늘 불만이었다.(194쪽) 하빈의 말은 원망과 분노로 가득했던 민희의 마음을 움직였고 ‘아무도 날 칭찬해주지 않으면 스스로 칭찬해주면 된다.’는 답에 이르도록 했다.

두 소녀와 취업 준비생 설이 언니, 하나 언니는 앞으로도 계속 달릴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서 오래 달릴 수 있을 것이다. 탁경은 작가는, 공부라는 중압감에 짓눌려 날마다 자신의 존재를 지워가는 청소년들에게 함께 달리자고 연대의 손을 내밀고 있다. 독자들에게 아이들의 러닝 크루가 되어달라고 청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민희가 자신의 빛나는 가치를 깨닫도록, 아직 닿지 않은 미래가 설렘으로 다가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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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365
이시은 지음 / 북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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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은 작가의 소설집은 핫하다. ‘핫하다’의 사전적 의미처럼 ‘매력이 넘치고, 섹시하고, 열정적’이다. ‘hot’한 문제적 인간들이 매 작품마다 등장한다. 그래서일까, 같은 주제나 같은 인물로 작품을 잇달아 지은 연작소설처럼 읽힌다.

이시은 작가는 교도소 안 곳곳을 돋보기로 들여다본다. 미셀 푸코는 ‘개인이 처벌받는 것은 법률 위반 때문이 아니라 전체 사회와 대립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근대 이후 교도소는 ‘이런 개인을 처벌하거나 교정하는 공간’이 되었다. 삭막한 시멘트 담장으로 둘러싸인 교도소는 세상과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작가는 굳게 닫힌 철문 안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 처벌받는 개인과 교정하는 개인의 길항을 그려 낸다.


<도어> 의 상습절도 전과자 ‘산들’은 모범적인 수용 생활로 사소 자리를 꿰찬다. ‘야무지고 눈치가 빠르고 입이 무거운’ 그녀는 ‘덜렁이’로 통하는 유니폼의 빈틈을 노려 ‘문어’와 쪽지로 통방한다. ‘문어’는 그녀에게 정치범 ‘5’가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만 찌르라고 한다. 그에 대한 보상은 ‘산들’이 남의 집을 털며 평생 꿈꾸어온 ‘집’이다.

<고래 365> 의 ‘나’는 식품위생법 위반, 같은 방의 ‘365번’은 보건위생법 위반으로 수감된다. ‘나’는 고래를 보러 갈 날을 앞당기기 위해 성실히 조리장으로 일한다. 그러나 출소는 요원해 보인다. 타투 일인자를 꿈꾸는 ‘365번’은 도구함 속의 칼을 양잿물 항아리에 깊이 숨겨 놓는다. 칼을 찾지 못한 담당은 문책을 당한다. 깊은 밤 ‘나’는 ‘365번’을 깨워 고래 문신을 부탁하고, ‘365번’은 장미 가시로 땀을 뜬 자리에 칼날로 선명하게 선을 그려나간다.
<층> 의 유니폼 ‘나’는 교도관이다. 교정교화를 신뢰하지 않는 나와 달리 ‘팀장’은 수감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유해화학물질 흡입으로 교도소를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조진자’를 두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진자’의 동거남이 사망하자, ‘팀장’은 도리를 앞세워 휴가를 건의하고, 나는 믿을 수 없는 종이라며 반대한다. ‘진자’의 귀휴는 ‘나’의 의견으로 불허된다. 순찰을 돌던 ‘나’는 ‘진자’에게 고무장갑으로 목이 졸린다.

<달팽이 행로> 에는 한때 연인이었으나 사형수와 사형집행인으로 만난 두 남자가 나온다. 사형제가 국회를 통과하면서 오랫동안 집행이 미뤄진 사형수들은 사형집행장이 설치된 곳으로 이송된다. ‘나’는 순번제에 의해 ‘석기’의 형 집행자가 된다. ‘나’와 헤어진 뒤 ‘나’와 닮은 사람을 찾아다니다가 연쇄 살인자가 된 ‘석기’에게 ‘나’는 ‘석기’가 좋아하던 흰색 운동화를 선물한다. ‘석기’는 내게 편지를 남긴다. ‘운동화는 너무 깨끗해 신을 수 없었다. 운동화를 받는 순간 놀랍게도 내 모든 얽힌 감정들이 녹아내리더구나.’
그들은 왜 교도소로 갔을까? 작가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핍진한 묘사로 복원한다. ‘고아로 마리아집에서 태어나 소녀원과 교도소, 갱생보호소를 거쳐 시립공동묘지에 묻히는’ 인생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인생의 문’을 잘못 연 대가로 평생 미로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연민한다.

미덕이 하나 더 있다. 작가는 작품 곳곳에 나무를 식재한다. 산수유나무 감나무 장미 소철 라일락 철쭉 층층나무 엄나무 굴참나무 왕버들 사이프러스……. 땅을 가리지 않는 식물들은 어디서든 뿌리를 내린다. 소설 속 인물들의 욕망은 해를 향해 가지를 뻗는 나무들처럼 담박하다. 어쩌면 그들은 문제적 인간이 아니라 문제를 해체하는 사람들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은 강렬하고 ‘핫’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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