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남자 - 곽병창 희곡집
곽병창 지음 / 연극과인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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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창작소극장에서 연극 한 편을 보았다. 곽병창 작가가 각색, 연출한 ‘천사는 바이러스’였다. 말로만 듣던 전주 노송동 천사의 이야기가 무대에 올려졌다. 해마다 십이월 하순에 돈이 담긴 박스를 말없이 놓고 가는 얼굴 없는 천사는 과연 누구일까. 궁금해 하는 사람들과 돈을 노리는 일당과의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이 시종일관 유쾌하게 펼쳐졌다. 그러나 웃음 끝에 남겨진 메시지는 묵직했다. “기억하세요. 당신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다는 것을 말이죠. 그리고 그들과 나누세요. 삭막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대들, 우리들의 따뜻한 마음뿐이랍니다.”

곽병창 작가가 세 번째 희곡집을 냈다. <억울한 남자> 라는 표제작을 비롯해 다섯 편의 희곡이 담겼다. ‘억울한 남자’는 의료사고 피해자인 복동이 해당 병원의 간호사를 인질로 잡고 수술 집도의인 최교수를 협박하는 이야기다. 분명 억울한 남자는 복동인데, 극의 결말에서 억울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최교수다. 최교수는 무엇이 억울했을까. 곰곰이 생각한 끝에 도달한 결론은 모두의 삶이 조금씩 억울하다는 것이다. 그 마음을 읽어내는 게 작가의 몫이다.

‘빨간 피터, 키스를 갈망하다’는 카프카의 원작소설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희곡으로 각색한 작품이다. 추송웅이라는 배우가 일인다역으로 명성을 얻었던 ‘빨간 피터의 고백’과 다른 점이 있다면 ‘순이’라는 한국인 입양아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인간으로 길러지는 원숭이 피터와 완벽한 독일인이 되고자하는 순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자유와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바로 여기, 우리의 현실로 가져온다.


‘대필병사 김막득’은 전쟁과 군대에 대한 이야기다. “전쟁은, 전쟁은 말이야. 군인에겐 여전히 최상의 무대야. 꿈의 무대라고.” 백대장의 입을 통해 군산복합체론이 슬쩍 드러나고, “아닙니다. 저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기 때문에….”라는 배달병의 말에서 합리적인 사고를 마비시키는 군대문화를 돌아보게 한다. 배우들은 “오오오, 제발 바꿔, 아무도 못 이긴 싸움, 이루지 못한 사랑. 오오오, 이제라도 돌아가야 해.”라고 이 땅의 평화를 노래한다.

‘귀신보다 무서운’에서는 삼례의 나라슈퍼 강도 사건을 다룬다. 경찰의 강압수사로 옥살이 한 이십대 청년들의 억울함을 작가는 조목조목 풀어나간다. 그리고 극중 인물 나라를 통해 속 시원히 외친다. “야 이 나쁜 놈들아. 얼른 나와서 빌어.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빌어. 그게 사랑이여.”


곽병창 작가의 희곡집을 읽다가 책꽂이에서 안톤 체호프의 책을 꺼낸다. ‘거짓과 모든 형태의 폭력을 증오한다’고 했던 체호프의 희곡집 <벚꽃동산> 을 나란히 펼쳐둔다. 어딘가 닮았고, 둘 다 훌륭하다. 두 권 모두 가슴에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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