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질문으로 길을 열고 경청으로 나라를 다스린 임금, 배하연의 『세종의 질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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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저자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흔들리는 순간, 다시 꺼내보는 판단의 기준.” 책의 표지에 새겨진 이 묵직한 부제는 이 책이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불확실성과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을 위한 실천적 나침반임을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세종대왕을 이야기할 때 언제나 눈부신 업적의 결과물들을 먼저 떠올린다. 훈민정음 창제, 집현전을 통한 학문 진흥,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 영토 확장과 아악 정리까지 그가 남긴 유산은 방대하다. 그 결과 후대의 위인전이나 대중매체 속 세종은 모든 문제의 정답을 미리 꿰뚫고 있던 고독하고 전지전능한 천재 군주로 박제되곤 했다. 그러나 역사 저술가 배하연의 『세종의 질문』은 이러한 고정관념의 틀을 명쾌하게 깨뜨린다. 저자는 세종 통치의 위대함이 홀로 완성해 낸 찬란한 정답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신하와 백성을 향해 쉼 없이 던졌던 ‘치열하고 집요한 질문’에 있었음을 실록의 생생한 기록을 토대로 설득력 있게 복원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들여다보면 세종의 어록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구절 중 하나는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가(汝等之意何如)”, “어찌하면 좋겠는가”라는 물음이다. 절대 권력을 손에 쥔 군주였음에도 세종은 결코 권위로 상대를 억누르거나 일방적인 명령을 하달하지 않았다. 그가 던진 질문은 신하의 능력을 시험해 굴복시키려는 덫이나 단순한 호기심의 표출이 아니었다. 집현전 학사와 조정 대신들의 지적 역량을 최고치로 끌어올리고, 조정 전체를 거대한 토론의 장으로 변모시키는 고도의 소통 전략이자 지적 자극제였다. 세종은 반대 의견에 부딪혔을 때도 화를 내거나 묵살하는 대신, “그대의 말에도 일리가 있으나 이러이러한 점은 어찌 헤아려야 하겠는가”라며 되물었다. 반대파 신하조차 자신의 논리를 스스로 검증하고 보완하여 마침내 국가적 합의와 최선의 해법에 도달하도록 이끌었던 것이다. 이러한 산파술적 대화법은 조정을 갈등과 반목이 아닌 상호 학습과 지적 생산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러한 물음의 지향점은 결코 궁궐 안의 탁상공론에 갇혀 있지 않았다. 세종의 질문이 향한 궁극적인 자리는 언제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백성의 구체적인 삶이었다. “극심한 가뭄과 흉년 속에서 백성들이 굶어 죽지 않게 하려면 구휼 제도를 어찌 고쳐야 하는가?”, “글을 몰라 억울하게 죄를 짓거나 누명을 쓰는 이들을 위해 무엇을 마련해야 하는가?”, “형벌을 다룸에 있어 단 한 사람의 무고한 목숨도 잃지 않게 하려면 사법 절차를 어떻게 삼심제로 엄격히 해야 하는가?” 등 그의 물음은 철저한 공감과 애민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관비(관청 노비)에게 100일간의 출산 휴가를 부여하고 그 남편에게도 30일의 돌봄 휴가를 지급한 파격적인 복지 정책이나, 전세 제도를 개혁하는 ‘공법(貢法)’을 제정하기 전 17만 명에 달하는 일반 백성과 관리를 대상으로 전례 없는 대규모 여론조사를 단행한 역사적 결단은 오늘날 보아도 경이롭다. 전국 각지의 찬반 여론을 꼼꼼히 기록한 이 대규모 조사는 백성을 단순히 통치의 수동적 대상이나 시혜의 객체가 아니라 국정의 엄연한 주체이자 동반자로 대우했음을 증명한다.
또한 책은 세종이 지닌 ‘정직한 질문’과 지적 겸손을 깊이 있게 조명한다. 세종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최고의 전문가에게 묻기를 주저하지 않았기에 장영실과 같은 천민 출신 기술자를 과감히 기용할 수 있었고, 음악과 천문학, 농업 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신분을 뛰어넘어 실력 있는 자에게 겸허히 묻는 태도야말로 세종을 성군으로 빚어낸 진정한 저력이었다.
다만, 이 책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균형 있게 수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역사적 맥락과 구조적 한계를 함께 짚어야 한다. 첫째, 군주와 신하 사이의 본질적인 권력 불평등 문제다. 세종은 생사여탈권을 쥔 전제군주였기에, 그의 집요한 질문은 신하들에게 지적 자극인 동시에 극심한 심리적 압박이나 사상 검증처럼 다가왔을 수 있다. 황희와 맹사성 등 당대 관료들의 만성적 과로와 격무가 이를 방증한다. 둘째, ‘답정너’식 전략적 유도 심문이다. 세종은 정책적 결론을 미리 정해둔 채 치밀한 논리로 신하들을 코너에 몰기도 했다. 이는 과업 관철에는 효율적이었으나 현대적 심리적 안정감과는 거리가 있다. 셋째, 세종 개인의 압도적인 학문적 깊이에 기댄 모델이라는 점이다. 지식 기반이 취약한 현대 리더가 질문만 남발하면 책임 회피나 무능으로 비칠 위험이 크다. 여기에 더해 현대 비즈니스 현장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경청·질문 실무 툴킷이 보완되었다면 실천적 지침서로서 완성도가 더욱 높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종의 질문』은 효율과 속도라는 미명 아래 일방적 지시와 독단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 묵직하고 실천적인 화두를 던진다. 오늘날 수많은 리더들은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구성원에게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하며, 이는 조직 내 침묵과 복지부동을 낳는다. 그러나 600년 전 세종은 혼자 모든 정답을 독점하는 영웅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협력하여 가장 지혜로운 답을 찾아내도록 질문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협업형 아키텍트’였다.
특히 이 책이 남다른 울림을 주는 이유는 질문을 단순한 화법이나 소통 기술의 차원에 가두지 않고, 국가 운영의 근본 철학이자 인간 존중의 실천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 있다. 리더가 던지는 질문 하나가 조직의 잠재력을 깨우는 불씨가 될 수도, 반대로 형식적인 심문이 되어 구성원을 위축시킬 수도 있음을 실록의 생생한 장면을 통해 준엄하게 경고한다.
배하연 작가가 복원해 낸 세종의 화법은 결국 리더십의 본질이 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경청하는 데 있으며, 지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묻는 데 있음을 웅변한다. 부제가 말해주듯,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리는 모든 순간에 이 책은 ‘과연 나는 제대로 묻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성찰하게 만든다. 소통의 단절로 고민하는 조직의 관리자, 타인의 마음에 닿는 성숙한 대화를 원하는 사람, 그리고 진정한 배움과 소통의 가치를 되새기고자 하는 독자 모두에게 이 책은 명쾌한 통찰과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