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하우스
피터 메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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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한 사내가 잔혹하게 살해된다.

에든버러에서 일어난 미제 사건과 MO가 유사한, 2000년대 들어 섬에서 처음 발생한 이 살인은 결국 이 지역 출신 경찰 핀 매클라우드를 18년 만에 귀향길에 오르게 한다. 그의 고향은 스코틀랜드 북서쪽에 위치한 루이스 섬이다.

아우터 헤브리디스 제도에 위치한 루이스 섬은 수백 년 동안 이어온 이천 마리의 구가 새 사냥과 수작업으로 직조한 '해리스 트위드'로 유명한, 게일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섬은 소문으로라도 이웃 소식을 전해듣는 작은 동네다.

모처럼 만에 고향에 돌아온 현재의 핀과 어린 시절부터 여기서 살아온 과거의 핀이 교차 서술되지만, 비중은 과거가 훨씬 높다. <올드보이>식으로 말하자면, '핀은 왜 18년 동안 고향을 등졌는가?'가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추억을 말하고, 회상에 젖는다. 그러나 추억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보통 괴롭고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기억은 추억의 이름에서 삭제하고, 그중 그나마 보랏빛으로 영롱한 것만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추억으로 편입되지 않는 봉인된 기억이 얼마나 많은가.

<블랙하우스>는 그 아픈 기억에 평생 사로잡힌 인간들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한다.

핀의 어린 시절, 그에게도 죽마고우가 있었고, 십자군이 있었으며 그를 평생 사랑한 여자가 있었고, 으레 그렇듯 악행을 일삼던 동네 골목대장이 있었고 이들의 밥이 되는 왕따 희생양도 있었다. 용모는 뭇 여성의 흠모의 대상인지 모르나, 핀 역시 한 여자 가슴에 대못을 박은 걸로 따지면 멍멍이 사촌 수준이다. 그가 마주쳐야 할 진실은 거친 파도와 세찬 비바람, 상륙을 불허하는 암초를 통과해야 하는 목숨을 건 항해 끝에 '안 스커'에 도착해야만 알 수 있다.

거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루이스 섬은 수백 년간 프로테스탄트 근본주의 교회 종파가 득세한 지역이다. 세속을 멀리하는 금욕적인 기운은 사람들을 숨죽이게 만들고, 그런 억압과 답답한 분위기는 급기야 괴물을 만들어낸다.

많은 추미스를 읽었지만, 이 소설처럼 검시를 전문적으로 묘사하는 수준은 접하지 못했다.

<블랙하우스>는 2021년 CWA 대거상을 수상한 피터 메이의 대표작으로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 그의 소설이다.

추미스도 편식을 해선 안 된다. 영미는 물론 일본, 북유럽까지... 다소 물린다 싶을 때 만나는, 남자끼리 포옹을 꺼려하는 거친 섬사람들의 서사 '스코틀랜드 스릴러'는 반가운 별미였다.

<블랙하우스>는 '루이스 섬' 3부작의 출발이다. 아마도 핀 매클라우드가 주인공일 텐데, 3부작의 다른 두 편 <루이스맨>과 <체스맨>도 읽을 수 있는 행운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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