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한 선진국 -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통계로 보다
박재용 지음 / 북루덴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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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 나라의 경제 수준을 평가하는 지표인 GDP 기준으로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이고, OECD 내 국제적인 위상도 그 정도 회의에 초대받을 만큼 올라섰다. IT 강국답게 노동자 1만 명당 산업용 로봇 사용량으로 따지는 로봇 밀집도는 세계 1위다.(107쪽) 비단 경제력뿐 아니라 최근에는 BTS, 오징어 게임, 기생충 등 한국 대중문화의 인기도 전 세계를 강타하여 국민의 자부심을 높였다.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 사회 전반적인 도덕 지수는 그만큼은 아니라고 보지만, 어쨌든 전쟁의 포화속에서 탄생한 분단국인 점을 감안하면 분명 대단한 성취라 하겠다.

박재용이 쓴 <불평등한 선진국>(부제 :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통계로 보다)은 그러한 경제 성장의 어둠을 통계로 톺아보는 책이다. 통계는 가장 객관적인 잣대로 활용되어야 마땅하지만,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제시하느냐에 따라 오차도 많을 수 있다. 정치적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단 이야기다.

이 책에 제시된 통계의 오류 몇 가지를 살펴보자.

1) 업무상 사고 재해율 0.5% - 우리나라는 산재보험에 따라 보상을 신청하고 승인을 받은 사람을 기준으로 통계를 낸다. 따라서 특수고용 노동자처럼 애초에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노동자는 여기에서 누락된다.

2) 2020년 제외하고 지난 5년간 자영업 폐업률 11% 내외 - 폐업률은 가동사업자 수로 폐업사업자 수를 나눈 것인데, 비교적 오래 자영업을 하는 이들은 계속 버티고 있으니 전체 폐업률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확연히 낮게 나타난다.

3) 장애 출현율(장애인 수/전체 인구) 5.39% - OECD 국가 중 가장 작은 편.

이는 장애 판정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으로, OECD 대부분의 국가 기준으로는 장애로 판정받아 공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에선 장애를 인정받지 못한다.

실업률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이쯤 되면 '눈 뜨고 코 베어 가는' 통계라고 할만하다.

 

우리는 악명 높은 통계를 익히 알고 있다. 낮은 출산율과 높은 자살률.

이 책을 통해, 보다 세부적으로 OECD 불명예 1위가 속출한다.

노인 자살률, 노령층의 상대적 빈곤율, 내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격차, 국회의원 중 여성의원의 비율(이건 일본이 1위), GDP 대비 장애인에 대한 공적 지출, 낮은 조세 부담률...

'아! 대한민국'이란 유행가가 허망하고, 세계 10위권 국가라는 한국의 민낯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책을 정독할수록 읽기가 곤혹스러울 지경이다.

저자는 기밀이 아닌,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계청 통계포털사이트를 비롯한 정부 자료에 근거해 <불평등한 선진국>을 완성했다. 여기 적시된 통계에도 오차가 생길 수 있음은 앞서 언급했고, 저자는 이런 통계만 잘 살펴봐도 대한민국의 현재 문제점을 적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취지로 이 책을 집필했다.

저자가 보기에 이미 대한민국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전 세계 어디나 소득 불평등 심화가 화두긴 하지만 대한민국은 거기에 대한 정책적인 대비가 매우 부족하다.

박재용의 시선이 머무는 항목인 노동 / 청년 / 가족 해체 · 노인 · 지방 소멸 / 소수자(이주 노동자와 이주 여성, 장애인, 여성차별 등)로 나누어 본문을 구성하고 안타까운 통계를 제시하고 거기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특이하게 매 챕터나 부(部)가 끝날 때 '팩트 토론을 위한 간단 퀴즈'를 넣어 내용을 되새김질하는데, 무슨 교재도 아니고 왜 이런 편집을 했는지 좀 의아하다.

구성된 내용이 5부로 구분은 되어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모두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부모의 부는 자식에게 당연히 이전된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주거환경에서 남보다 앞선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아 야구로 보면 이미 2, 3루에 위치해 있다. 좋은 대학교를 거쳐, (부모 찬스를 쓰든 안 쓰든) 좋은 직장을 잡고 비교적 풍족한 생활을 이어 나간다. 계약금이 없어 당첨된 분양권마저 포기해야 하는 서민들과는 다르게, 내 집 마련을 할 때도 든든한 부모의 지원을 받는다.

부가 세습된다면 같은 논리로 가난도 대물림된다. 이들이 상대적으로 고소득 일자리를 차지할 확률은 드물다. 오죽하면 '개천에서 용이 나는 시대는 지났다'라는 말을 하겠나. 치열한 취업 전쟁에 나서야 하고, 설사 일자리를 구한다 한들 임금 격차는 피할 수 없고, 열심히 살아도 나이 들면 노인 빈곤이란 현실에 처한다.

여기에 대한 부수적인 작용으로 1인 가구 증가와 출산율 저하는 운명이다.」

"이들의 노동은 경력이 되지 못하고 그저 소비될 뿐입니다." - 163쪽

너무 비관적인가?

책에 나온 무수히 많은 통계가 이런 라이프 사이클을 반영한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많이 알려진 핵심적인 팩트(소득 불평등, 외국인 증가, 지방 소멸, 노인 빈곤, 청년 실업 등)를 입증하는 무수히 많은 통계를 반복해서 확인하고, 그 숫자들을 나열하며 설명하는 내용이 다소 지루하고, 중언부언의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했다. 너무 많은 통계가 제시되다 보니 오히려 '뭣이 중한디?'란 생각도 들고.

방식을 살짝 달리해서 각 챕터의 가장 핵심적인 지표를 보여주는 대표 통계 A를 설정해 설명하고, 필요하면 A1, A2 정도 예시하는 방식이면 어땠을까? '팩트 토론을 위한 간단 퀴즈'보다는 간결하게 독자의 기억에 어필하지 않을까.

 

저자의 취지는 잘 알겠다. 그래서 이 나라의 선장을 뽑는 대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단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통계로 보면서 수치스럽다 느끼기보다는 실행 가능한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아마도 이런 정책은 포퓰리즘이 아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행위가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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