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는 이름 - 부모의 뇌를 치유해야 아이의 뇌가 달라진다
도모다 아케미 지음, 김경인 옮김 / 마인더브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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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뉴스는 잊을만하면 등장해서 사람들을 비분강개하게 만든다. 어제도 이모에게 맡겨진 10세 여아가 학대로 사망했다는 신문 기사를 접했다.

친부모든 양부모든, 아무런 저항 능력이 없는 어린이를 학대해서 '아무도 구하지 못한 생명'으로 만드는 과정은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는 천인공노할 범죄다. 이는 일본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한데, <부모라는 이름>은 아동학대에 관한 다수의 서적을 낸 바 있는 소아정신과 의사인 도모다 아케미 박사가 집필한 책이다. 아동학대 예방모델을 학술영역에서 심화하기 위해 꾸준히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아 저자는 2020년도 「문부과학대신 표창 과학기술상(연구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자는 벌어진 불행의 불씨부터 살펴보자고 하는데, 그 불씨는 바로 학대아동의 부모가 가지고 있기에 '우선적으로 부모를 치유해야 한다'는 주제가 핵심이다. 그래서 책의 부제는 '부모의 뇌를 치유해야 아이의 뇌가 달라진다'이다.

 

저자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아동학대를 당한 사람들이 부모가 되어 자녀에게 학대를 대물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섬뜩한 본문 몇 가지를 인용한다.

"부모 중 어느 한쪽의 폭언보다 양쪽 모두의 폭언이, 아빠의 폭언보다 평소 아이와 접하는 시간이 많은 엄마의 폭언이 아이의 뇌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 또 폭언의 정도가 심각할수록, 빈번할수록 뇌에 가해지는 손상은 커진다." - P 34

"유아기에 부모로부터 폭력을 당하거나 심한 욕과 꾸지람을 들으면서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알고 자란 사람은, 자신보다 연약한 사람을 신체적 혹은 심리적 폭력으로 괴롭히게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 P 61

"내가 치료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어린 시절에 멀트리트먼트를 경험한 사람은 멀트리트먼트 가해자가 되기 쉬운 상대와 교제하거나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멀트리트먼트를 당한 사람이 폭력적인 상대에게 끌리게 된다면, 그 배후에는 애착장애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일그러진 애착관계가 '표준'이 되어 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관계를 맺기 쉬운 상대방을 고르게 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가정에 항상 긴장감이 감돌고 언제 폭력적인 언동이 분출하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 P 69~70

☞ 애착장애 : 일그러진 애착관계 때문에 나타나는 온갖 부정적인 증상

본문을 통해 저자는 어떻게 부모의 아동학대 경험이 자녀에게 대물림되고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거기에 대한 부모 트레이닝(Parent Training, PT)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는지 입증하고 관련된 실험 결과를 제시한다.

저자의 경험상 아이 문제로 병원을 찾았다가 부모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게 된 경우가 많단다. 상처받은 아이의 치료도 물론 중요하지만, 부모의 상태를 확인한 후 병행치료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 대목에서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이런 치료의 문턱(접근성, 비용 등)이 높으면 형편이 녹록지 않으리라 예상되는 대부분 가정에선 쉽게 이용하기 어려우리란 점이다.

책의 후반부, 저자의 스승 격인 스기야마 선생과 대담을 통해, 일본 멀트리트먼트의 근원을 찾은 결과, '전쟁'의 영향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스기야마 : 요즘 부모 세대는 대부분 전후(戰後) 세대에 해당하지요. (···)

그런데 대체 왜 전후세대가 이렇게 황폐한 것인지 원인을 찾아보니 결국 '전쟁'에 도달하더란 말입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전쟁에 나갔잖아요. 전쟁의 트라우마를 안고 산 부모님 밑에서 자란 결과, 그들의 자녀는 온갖 문제를 물려받을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도모다 :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전후세대 중 일부는 마음의 상처가 깊은 부모로부터 멀트리트먼트를 받으며 자랐고, 이제는 그것이 그들의 트라우마가 되어 표출된다는 말씀이군요. - P 175~176

 

"모유로 자식을 키우는 포유류 중에서 갓 태어난 새끼를 양육하지 않는 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진화과정 중 뇌 속에는 '모성적 양육행위를 하는 데 필요한 신경회로'가 존재하다고 할 수 있다. (···) 그 때문에 대부분의 포유류 부모는 자식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 즉 학대는 하지 않는다." - P 24

어렸을 때 사랑과 보살핌 대신 학대를 받고 자라 어른이 되어 자식에게 또다시 학대를 한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도 아니고 참 안타까운 인생유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범죄 영화 많이 본다고 다 범죄자가 되지 않는 것처럼, 학대받는다 해서 다 비정상으로 크는 건 아니다. 멀트리트먼트를 경험하고도 발달단계에서 정신적인 질환을 앓지 않고 성장하는 아이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게 바로 리질리언스(resilience),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하거나 만성적인 스트레스를 안고 생활하더라도 잘 순응하는 능력 혹은 그 과정이나 결과를 일컫는 단어다. 우리 말로는 '정신적 회복력', '정신적 탄력성'이다.

리질리언스가 강한 아이들은 3가지 특성을 지닌다.(P 90)

『1. 개인의 특성 - 지능이 높다, 자기긍정감이 강하다, 자아가 유연하다, 자제력이 있다, 필요에 따라 타인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상황 판단력이 뛰어나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 등

2. 가정의 특성 - 따뜻하고 안심할 수 있는 가정환경과 부모와의 건전한 애착 형성 등

3. 사회적 특성 - 가족 이외의 어른이나 친구와의 안정된 관계, 학습장소의 탄탄함, 지역 사람들과의 관계, 공적기관의 지원 등을 포함한 사회적 네트워크의 충실도 등』

"멀트리트먼트가 심할수록 아이의 리질리언스는 훨씬 더 '사회적 특성'에 의존한다." - 구보다 마리 교수, 도요에이와여대, P 90

결론적으로 아이에게 리질리언스라는 보호막을 입히기 위해서는 개인과 가정은 기본이요, 사회적 특성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니 비극이 벌어지면 조건반사적으로 분노하기보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특성을 되돌아봐야 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도 있지 않나. 스웨덴은 1979년에 자녀 양육 관련법을 개정하여 세계 최초로 아이에게 어떤 체벌도 심리적 학대도 할 수 없도록 법률로써 금지한 나라가 되었고, 일본도 2020년부터 법이 시행되어 이제 가정 내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되었다는데, 이런 다른 나라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아동학대라는 사회 문제에 대해 <부모라는 이름>은 적잖은 시사점을 주고, 근본적인 치유 방안을 제시하는 책이다. 문제 해결에 관심이 많은 분들의 세심한 독서를 제안한다. '부모'라는 이름은 엄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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